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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Sep 10. 2021

갭투자의 성지, 염창동에 입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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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한 번도 소유자가 산적이 없는 아파트에 우린 입주를 했다. 

갭투자의 성지에 들어서기 위해서 넘어야 할 마지막 관문은 대출이었다. 

전세자금대출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복잡함을 넘어서야 비로소 내 집이 된다. 



우야 간 나는 집을 샀다. 가계약금을 보내고도 내가 수억 대의 쇼핑을 했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했다. 계약서 작성에 앞서 중도금과 잔금 일정을 정리했다. 잔금은 어차피 유동적이니 중도금만 적당한 선에서 정하자고 했다. 아차 싶었다. 중도금이라니. 나의 자금계획엔 없던 돈이었다. 


계약금을 묻고 만약 매도인이 의지를 갖고 계약을 파기하고자 하면, 계약금의 2배를 주고 계약 파기를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중도금이 들어가면 그 계약을 무를 수 없어진다. 중도금의 위력이 그런 것이라는 건 꽤 늦게 알게 되었다. 여하튼 계약금까지는 어찌 해결했는데, 중도금도 필요했다니. 전혀 예상치 못했던 포인트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다는 것은 많은 것을 의미했다. 계약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중도금 금액, 시기까지 조율해야 한다. 중개사와의 몇 번의 전화 덕분에 빠르게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 


중도금을 위해 퇴직연금을 받는 시기를 당겨야 했다. 우리는 계약금 외의 금액은 ‘대출 + 전세보증금 + 퇴직연금’으로 해결하기로 한 상태였다. 물론, 잔금 외에도 취득세, 양쪽 집의 중개비, 이사비용, 법무사 비용 등까지 모두 포함한 금액이 필요했다. 1억 후반의 전셋집 중개사 비용과는 차원이 다른 금액이 들어간다. 이래저래 계산하면 대략 800만 원 언저리의 돈이 추가로 들어간다. 거기에 신혼살림 구매 때 포기했던 전자제품들을 구매하면 추가 비용은 1600만 원에 달한다. 


퇴직연금이란 은퇴해서 소득이 없을 때를 대비해 그전까지는 못 헐어 쓰게 되어 있는 구조이나, 특별한 몇몇 특수한 경우에는 가능하다. 근로자 본인, 배우자, 부양가족에게 질병 및 부상이 발생해 장기요양이 필요한 경우, 임금 피크제 등으로 월소득이 감소하는 경우, 집을 구입하거나 전세자금 및 임차보증금을 마련하는 경우, 개인 채무로 인해 파산선고 이후 개인회생의 절차를 밟는 경우 등이 있다.


회사 명판이 찍힌 퇴직연금 중도인출 신청서, 주민등록 등본, 현 주소지 및 거주할 집의 건물 등기부 등본, 지방세 세목별 과세증명서, 부동산 매매계약서 사본, 계약서 영수증 등의 서류를 받기 위해 이곳저곳을 바삐 움직여야 했다. 등본이야 어렵지 않았지만, 꼭 당일에 뽑은 것을 가져오라는 은행의 신신당부도 있었다. 내가 집을 산다는 사실을 회사에 알려야만 했고, 지방세 세목별 과세증명서는 무조건 주민센터에 직접 가야 발급이 가능하다. 퇴직연금 신청한다고 바로 나오는 것도 아니다. 1~2주의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허다하고, 보유하고 있던 퇴직연금의 상품을 정리하는 시간도 걸린다는 말에 아예 상품에 가입하지 않고 미리 현금으로 빼기 좋은 형태로 빼주신 은행원 분의 융통성 덕분이 상대적으로 빨리 나온 편이었다. 


언제 나올지 모르는 퇴직연금이 불안해 혹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어른들께 빌릴 요량으로 최대한 중도금을 뒤로 미뤄놓았고, 금액도 최소화했다.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여지를 최대한 만들고 싶었다. 계약서를 쓰는 날은 그저 아름답게 인사하며 도장이나 찍는 날일 뿐이었다. 모든 조율은 이미 완료되어 있는 상태여야 했다. 중개사의 역할은 생각보다 폭넓었다. 


대망의 도장 찍는 그날, 중개사 부장님은 등기부등본을 뽑아서 보여주셨다. 그 집의 역사는 생각보다 심플했다. 인천에 살던 A라는 사람이 1997년에 낙찰을 받아 소유자가 되었고, 2001년에 A는 살고 있던 같은 단지 다른 동으로 이사를 했다. 2002년 부부로 추정되는 B 커플에게 매도했고 그 와중에 2007년 B 커플 중 한 명은 개명을 했다. 역시 인천에 사시던 B 부부는 2013년 성동구로 이사를 했고. 2014년 11월 현 매도인이 2억 1천만 원의 대출을 끼고 3억에 매수했다. 엄마가 말한 리모델링 시점이랑 딱 맞아떨어졌다. 그리고 리모델링을 마치고 전세를 주었고, 전세자금으로 대출은 회수시켰을 것이다. 그리고 2018년 3월 4억 7천에 매도를 했으니 리모델링비와 전세기간까지의 이자, 그리고 그간의 재산세를 감안하면 아마도 1억 3천만 원 이상은 남겼을 것이다. 4년 만에 말이다. 우리와 계약을 한 매도인은 다른 곳에 살고 있었고, 곧 회사가 있는 기흥으로 이사 갈 예정이라고 했다. 


그 집을 사서, 실 소유자가 거주한 건 19997년 이후 우리가 처음이었다. 염창동이 갭 투자의 성지라고 했던 이유가 다 있는 것이었다. 한때 1천만 원만 가지면 전세 끼고 집을 살 수 있었던 동네다. 저 신묘한 기술을 내 진즉 알았다면 나도 건물주가 될 수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글 쓰는 지금에서야 깨닫는 우매한 인간이다. 

20년 동안 한 번도 건물주의 손을 탄 적이 없는, 세
입자만을 위해 존재했던 이 아파트는 이제야 주인과 함께하는 건물이 되었다. 


물론 중도금이 해결되었다고 모든 것이 다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나에겐 대출이 남아있었다. 가장 큰 과제였다. 대출은 딱 우리가 필요한 돈 그 이상은 허용하지 않았다. 엄밀하게는 그 아래만 허용했다. 그때까지도 대출이 말하는 ‘시세’가 무엇인지 몰랐다.


몇 번의 시뮬레이션으로 우리는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최대치의 금액을 산정해두고, 그 금액에 맞는 자금계획을 세웠다. 계약금과 중도금까지 무사히 넘긴 우리는 대출과 전셋집 빼기만 완료하면 되는 상태였다. 제도가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최대치를 대출받아야 했다. 


내가 받아야 하는 대출은 총 2가지였다. 내집마련디딤돌대출과 보금자리론. 내집마련디딤돌대출은 2018년 3월 당시 5억 원 이하의 주택 구매 시(수도권 기준) 최대 2억 원까지 대출이 가능했고, 보금자리론은 6억 원 이하 주택 구매 시(수도권 기준) 최대 3억 원까지 대출이 가능했다. 이 2가지가 믹스되면 최대 5억 원이 대출이 되는 기적이 이루어지겠지만, 한국 주택금융공사는 바보가 아니다. 내집마련디딤돌대출로 2억을 받으면, 추가로 보금자리론으로 받는다 하더라도 주택시세의 70%까지만 대출이 가능했다. 여기에 조건은 부부합산 소득이 기준 금액 이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월급생활자였고, 남편은 자영업이라 홈텍스상 부부합산 소득은 아슬아슬하게 기준금액에 부합된다. 


금리할인 조건도 몇 가지 있었다. 아이가 있다면, 특히 3명 이상의 다자녀에게는 금리할인 외에도 대출 가능한 소득 수준의 변경 등의 추가적인 혜택이 있다. 당시 무자녀인 우리는 금리할인은 불가능했지만, 생애 첫 주택 구매와 신혼부부라는 조건도 우대금리의 요소였다. 3년 이상 36회 이상 불입한 청약통장의 보유도 우대금리가 적용된다. 불입 횟수는 일반적인 청약통장의 인정사항과 같았다. 당연히 요건은 해당되었다. 물론 우대사항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투기지역이나 투기과열지역에서의 매수를 할 경우에는 오히려 0.1%의 금리 추가가 발생한다. 


나는 4억 7천만 원, 즉 나의 거래금액이 시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택금융공사가 말하는 시세는 ‘KB시세’였다. 소득증명과 관련한 각종 서류들, 금리 우대를 위해 신혼부부임을 증명하는 수많은 서류들을 제출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나의 거래금액은 시세가 아니라 그저 주택가 격일 뿐이라는 것을. KB은행에서 리서치하는 시세는 거래금액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 우리가 거래한 그 아파트 1층은 해당 단지의 시세 중 최 저점으로 평가되었다. 1층이니까. 


다른 집들의 시세는 5억 원에 잡혀있을지언정, 우리가 계약한 집의 시세는 좀 더 저렴한 4억 5천500만 원이었다. 그러니까 시세의 70%가 최대 대출 한도인 경우, 우리가 대출받을 수 있는 금액의 최고는 3억 1850만 원이었고, 그 와중에 10만 원 단위의 대출은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며 3억 1800만 원만 대출이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그래도 괜찮으시겠냐는 상담원의 질문에 안 괜찮으면 어떻게 되냐고 물었다. 그럼 대출 신청 자체가 취소된다. 수긍했다. 우리는 갑이 아니었다. 없는 돈에 집 사기가 이렇게 어렵냐며 젠장을 수도 없이 외쳤지만 그건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제대로 안 알아본 나의 잘못이었다. 우리가 예상했던 대출 가능금액은 3억 2900만 원이었다. 1천만 원이 모자란 것이다. 하. 퇴직연금이 아니었으면 못 메꿨을 돈이었다. 집하나 사는데 뭔 우여곡절이 이다지도 많단 말인가. 푸념하는 나에게 친구가 위로를 해주었다. 


그 정도의 푸닥거리면 준수한 거야. 원래 집 살 땐 한번 크게 고생하는데,
 돈 50만 원 더 쓰고, 대출 1000만 원 모자란 정도면 아주 나이스 하네.
너보다 더한 사람 세고 셌어


서류를 넣고도 10분이 넘게 긴 통화로 내용을 확인하고, 어렵게 대출승인을 받고 은행에 가서 수도 없이 많은 서류에 사인을 했다. 공동명의로 구매한 만큼, 대출 승인 서류에도 2명의 사인이 필요하다. 대출자 명의는 나이지만 말이다. 10페이지는 족히 넘는 서류에 사인을 하고 신랑에게 넘겼다. 말하자면 연대보증인 셈이다.


우린 그렇게 3억 1800만 원이 빚쟁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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