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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Sep 09. 2021

전세집 빼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부동산 100곳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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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한 아파트에 들어가려면 기존에 우리가 살던 계약기간도 안 끝난 전셋집에서 전세보증금을 빼와야 한다. 

100곳이 넘는 곳에 집을 내놨고 40쌍이 넘는 커플이 집을 보러 왔지만 계약은 쉽지 않았다. 

웃돈 아닌 웃돈을 얹어주고 나서야 계약을 할 수 있었다. 



전셋집 들어갈 때도 우린 도배, 장판을 하지 않았고, 이 집에 들어올 때도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래도 바깥쪽 창 샤시는 할걸 그랬다 싶기는 하지만, 이사를 준비할 당시에는 그런 건 생각할 겨를 도 없었다. 왜냐하면 전셋집이 죽도록 안 나가서 3달을 너무나도 마음을 졸였기 때문이다. 


우린 2년을 계약했고, 우리에게는 2년, 그리고 향후 추가 2년의 권리가 보장되는 전세계약을 했었다. 대한민국의 모든 전세 세입자는 같은 권리를 보장받는다(지금은 제도가 바뀌어 좀 더 길게 계약을 연장할 수 있다). 그 말은 거꾸로 하면 건물주에게도 최소한 2년간 계약을 유지할 권리가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우린 투룸 빌라에 사는 1년 동안 옆집이 2번 바뀌었다. 그중 2번째 집은 들어온 지 6개월도 안돼 다시 나가는 집이었다. 사업하는 장소가 바뀌어 이사를 간다나? 그걸 보면서 생각했다. 이 집은 생각보다 전세금 빼기 쉬운 집이구나. 계약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에 2년은 채우고 나가야 한다는 생각은 사실 그때 바뀌었던 셈이다. 우리가 필요하면 집을 중간에 빼는 것도 가능한 일이구나. 싶었다. 나보다 훨씬 돈 많은 건물주를 걱정해줄 이유가 없는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고 나서야 집을 살 엄두를 낼 수 있었다. 


2018년 2월이 계약 만료지만, 우리는 2017년 3월에 건물주에게 7월경에는 이사 가야 한다는 말을 전했다. 깜짝 놀랄 거라는 나의 순진한 예상과는 다르게, 매우 담담하게 “그래요”라고 답하셨다. 그때는 몰랐다. 전셋집을 빼는 건 그의 발등에 불이 아닌, 내 발등의 불이라는 사실을. 


결혼 1주년 기념 여행까지 다녀와서 5월 첫 주 집을 내놨다. 직방 어플과 우리를 소개해준 부동산 등에 집을 내놨다. 피터팬에도 사진을 찍어 올렸다. 마침 이사 들어오는 날 찍어둔 빈집 사진도 있었다. 상대적으로 깔끔하게 정리된 집 사진을 올리기 위해 며칠에 걸쳐 대청소를 단행했다. 언제 집을 구경하러 올지 모르니 집은 언제나 깔끔하게 유지되어야 했다. 나름 하얀색 실크벽지에 나무색 바닥인 집이라 연한 원목톤으로 맞춘 우리의 가구가 어우러져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비주얼이었다. 그 흔한 TV도 액자 하나도 없는 조촐한 살림에 냉장고까지 베란다에 나가 있어서 집은 그 사이즈에 비해 훤 해 보였다. 5월엔 유난히 휴일이 많았고, 그 덕에 집을 보러 온 신혼부부 커플이 참 많았다. 


누가 봐도 결혼을 앞둔 커플들이 집을 보러 오기 시작했고, 그렇게 상시 대기 상태로 1 달반이 지났다. 주말에 최소 3팀 이상이 집에 들렀고, 빨간 날이나 평일 저녁에도 늘 집 방문이 가능하도록 신랑이 상주해야 했다. 한 3주쯤 지나도 영 입질이 오지 않아 불안해진 나는 A4지에 집의 위치, 조건, 장점, 사진 등을 담아 40장을 출력해 신랑의 손에 쥐어주었다. 집주인의 번호도 넣어야 해서 전화로 상황설명을 했다. 


그러게. 왜 전세가 해결이 안 됐는데 집 계약을 했어. 순서가 바뀌니 힘들지


그랬다. 그는 아무것도 다급할 일이 없었다. 계약도 마치지 않고 나가는 나는 그에게 계약 파기 자일뿐이었다. 다음 세입자가 들고 오는 보증금이 있어야 우리가 나갈 수 있는데, 그게 아니어도 그에게는 보증금을 내줄 의무는 없었다. 그에게 보장된 권리는 2년이었으니까. 수많은 부동산 거래를 했을 건물주는 그 상황에 너무 익숙했다. 우리가 그 집에 들어갈 때도 계약기간을 채 못 채우고 나가는 커플이었다. 그들도 집을 사서 나간다고 했고, 당시 부부 중 여자 측 어머님으로 추정되시는 아주머님께서 집의 장점에 대해 줄줄 읊으셨던 기억이 떠올랐다. 급한 건 건물주가 아니라 우리였다. 우린 보증금이 있어야 잔금을 치른다. 발등에 불이 크게 떨어졌다. 


이걸 들고나가서 인근 1km 이내에 있는 부동산이란 부동산에 다 들러 주고 와 


신랑에게 빅 미션을 주고 내보냈고, 1시간 남짓 지나 들어온 신랑은 놀라며 말했다. 


부동산이 정말 많아. 이렇게까지 많은지 몰랐다. 40장 다 돌리고도 아직 한참 더 남았어


요즘도 이렇게 집 내놓는 사람이 있냐며 놀라더란다고 했다. 그렇게 또 1~2주가 지나도 집은 나가지 않았고, 불안한 마음에 신랑은 다시 60장을 더 뽑아 우리가 살던 9호선 라인부터 시작해 한정거장 거리까지 거꾸로 걸어가며 곳곳에 더 안내장을 뿌렸다. 집 잘 빼주면 수수료도 더 챙겨준다는 말도 잊지 않고 하고 왔다. 


주말 일정은 올스톱이었고, 우린 나가려다가도 부동산에서 연락 오면 일정을 취소하고 다시 들어왔다. 전셋집을 구해 들어갈 때 들인 품이 10이라면 나갈 때 들인 품은 50도 넘었다. 이 집의 조건은 좋았다. 그래서 들어온 거니까. 하지만 같은 건물에 4층에도 집이 나와 있었고, 한 건물에 2개의 매물이 나와있으니 사람들이 2개를 두고 저울질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3월부터 나와있던 빈집이 안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부동산도 우리 집을 보여주러 오면서 4층을 같이 보여주었다. 심지어 가격도 500만 원이 저렴했다. 3월부터 안 나간 500만 원 저렴한 경쟁 매물이 한건물에 있다는 것은 매우 치명적이었다. 6월 초가 되어서야 그 집이 나갔고, 우리 집도 그나마 좀 가능성이 올라가는 듯했다. 


하지만 계절은 여름에 가까워지고 있었고, 여름은 이사 비수기다. 한겨울과 한여름에 눈비를 맞으며 이사를 가고 싶은 사람은 없으며, 신혼부부도 1~3월에 집을 알아봐 늦어도 4월에 계약하고 5월에 결혼하고 입주한다. 9~10월 입주를 원하는 커플은 많아 보였지만 7월이라는 조건이 문제였다. 


그 와중에 진상도 있었다. 집 내놓고 초반에 여자 혼자 와서 집을 보고 갔다. 마음에 든다며 가계약금 100만 원을 보내겠다고 했다. 처음 보는 부동산이었지만 우린 그런 걸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물론 걸리는 게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결혼 날짜가 언제냐고 묻는데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싸했지만 결혼 날짜도 안정하고 집부터 구하는 경우가 없는 경우가 아예 없는 건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지방에서 일하는 남자가 한번 더 집을 보러 와서 그 주 주말에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로 했는데, 계약서를 쓰는 과정에서 말이 좀 웃기게 변했다. 


통상적으로 계약금은 계약금액의 10%이다. 어디 법에 나와 있는 조건이라기보다는, 통상적으로 관념적으로 계약금은 보증금의 10%로 오고 간다. 월세에 들어갈 때도 그랬고, 이 집에 들어갈 때도 그랬고, 집을 살 때도 그랬다. 그런데 이분들이 계약금을 5%만 걸겠다는 것이다. 


안다. 전세자금대출 신청할 때 대차 계약서와 계약금 5% 이상의 지급 영수증만 있어도 무방하다는 것을. 그건 그저 가이드라인일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약금을 5%를 거는 경우는 거의 없다. 건물 가격이 엄청나게 비싼 게 아닌 바에야 말이다. 그런데 5%를 하겠다고 제안이 왔다며 건물주가 전화를 했다. 


새댁. 나는 사람은 안 믿어. 돈만 믿어. 정말 이 계약할 거야?


1억 7천만 원이 넘는 돈에 5%면 그것도 이미 몇백만 원이다. 이 집에 들어올 사람이면 그 돈도 큰돈 아닐까 싶었다. 찜찜했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했다. 우리의 의사를 묻고 5%짜리 계약금 계약서를 쓰기로 했다고 하셨다. 소소하게 에어컨을 산다고 했다가, 만다고 했다가 하는 정도는 애교였고, 결국 집을 보러 오기로 한 당일 계약을 취소했다. 지방이라 퇴근하고 오려면 오래 걸린다며 밤 9시에 봐도 되겠냐고 해서 그러시라 했다. 부산서 일한다던 남자는 어느 순간 충북 어드매로 옮겨 일을 하고 있었고, 결국 2번의 통화 후 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건물주가 옳았다. 사람은 믿는 게 아니었다. 돈을 믿었어야 했다. 가계약금 100만 원은 그렇게 건물주의 용돈이 되었고, 그 계약은 그렇게 정리되는 듯했다. 집 내놓은 초반에 진상에게 혼이 털리고 불안한 마음이 계속되는 와중에 건물주에게 가계약금을 돌려달라며, 소송이라도 걸겠다고 계속 연락하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통탄했다. 나의 촉은 역시 틀리지 않았다. 그들은 부동산 중개인을 닦달하다 못해 건물주 연락처를 직접 받아 건물주에게 연락하고 있었다. 우린 그들을 데려온 부동산에 전화해서 그들이 보통의 ‘경우’를 모르면 그걸 가이드하는 게 중개인의 몫이지 감내하는 게 우리의 몫은 아니지 않냐며, 이런 경우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고 욕하기 일보직전까지 화를 냈다. 


우린 그 건물에서 거의 유일하게 건물주와 관계가 좋은 세입자였다. 1층서 담배 피우던 신랑에게 옥상에서 피워도 된다며 옥상을 열어주었고, 그렇게 옥상서 수다 아닌 수다를 떨며 그나마 좀 편한 관계가 되었다. 작은 텃밭에서 키운 애기 머리만 한 배추도 받아오곤 했다. 집을 깔끔하게 쓴다며 좋아하셨다. 우린 건물주를 좋아했고, 그의 까다로움이 건물이 유지되는 비결임을 알았다. 그런 건물주에게 아직까지 귀찮은 일이 걸쳐있다는 사실만으로 화가 났다. 나도 신랑도 번갈아가며 불같이 화를 내고 나서야 진상이 사라졌다. 그간 만났던 몇몇의 중개인들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다시 한번 느꼈다. 


진상을 넘고, 경쟁을 피해 드디어 계약이 되었다. 어떻게? 무려 50만 원의 웃돈을 주고. 


여름으로 가까워질수록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은 가을 입주를 원했다. 우리는 마음이 더 타들어 갔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1억이 넘는 돈을 어디서 구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여자분이 집을 보러 왔다. 동생이 혼자 살 집을 보러 오는 것이라 했다. 대로변에 있으면서도 완전히 차길은 아니고, 지하철과 가까워 안전해 보인다고 했다. 바로 앞에 학교가 있지만 학생들이랑 마주치는 일은 출퇴근 어느 타임에도 없다 했더니 마음에 든다며 동생이 보도록 한번 더 온다 했다. 


집을 마음에 들어 하자 부동산 중개인은 어차피 대출을 받으실 것이니 2개월 당겨서 받으시고, 그만큼의 이자를 우리가 제공하면 보증금을 받을 수 있게 계약을 할 수 있도록 해보겠다고 제안했다. 물론 수수료 좀 더 챙겨주신다고 하셨지요?라는 말과 함께. 


우린 2개월의 이자를 수수료 삼아 얹어주고 계약을 했다. 실 입주는 9월이었지만, 우리가 필요한 금액만 먼저 대출금으로 빼주고, 차액은 입주 시에 주는 것으로 말이다. 2달에 가까운 시간이 지나서 40번의 집 보여 주가 끝나고 이자 50만 원에 수수료 추가까지 얹고 나서야 우리는 집을 뺄 수 있었다. 


이사가 예정된 날로부터 2일 후에는 신랑의 해외 출장이 잡혀있었다. 커다란 집에 덩그러니 혼자 남을 내가 걱정된다며 출장 다녀온 후로 이사날짜를 미루면 어떻겠냐고 했다. 난 이 집에 오만정이 다 떨어졌으니 하루라도 빨리 이사를 들어갈 거라고 선언했고 폭염주의보가 선언된 7월의 어느 날, 편의점 얼음팩을 몇 개씩 사들여 집안에 밀어 넣으면서 이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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