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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Sep 09. 2021

그래도 혹시 모르니 들어가 보자

그 마지막 선택이 신의 한 수였다.

3줄 미리 보기 

혹시나 싶어 들어간 집이 마음에 들었다. 

보일러, 샤시, 화장실 리모델링까지 다 돼있는 1층 집을 발견했다. 

예산도 맞다. 당장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더 이상은 돌아다니기도 힘들었고, 지쳐있었다. 말이 쉽지 지하철 3개 역 거리를 직선으로도 아니고 골목골목 누비고 돌아다녔다. 오전에 나와, 해 질 녘까지 쉬지 않고 걸었다. 부동산이 보일 때마다 묻고 또 물었다. 그 돈으로 뭘 할 거냐는 뉘앙스에도 좀 지쳐있었다. 사람을 상대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가 전셋집을 구해주신 그 부장님과 같은 스타일은 아니었다. 뭐 저런 사람이 영업을 하나 싶은 부동산 중개사도 많았다. 


여기가 끝이야. 이제 여긴 더 뭐가 없어


나는 함께 걸어 다니며 몸과 마음이 역시 지친 신랑에게 말했다. 돌아가자고. 그렇게 골목골목 돌고 돌아 길만 건너면 한강인 곳까지 도착해서야 나는 포기를 외쳤다. 배도 고팠고 몸도 힘들었다. 그러다 어둑해진 길가에 불이 켜있는 부동산 하나가 보였고, 우린 마지막이라며 그 문을 열었다. 10년을 엄마랑 살던 아파트 단지 바로 앞에 있는 부동산이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우리 집이 처음 그 집으로 이사 들어갈 때부터 거기 있었던 곳이다. 살면서 한 번도 문을 열어본 적이 없지만 그날은 그렇게 지친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제법 나이가 있어 뵈는 중개사분이 앉아 계셨다. 우린 조건을 말했고, 그분은 말했다. 


1층이긴 한데, 예산은 딱 맞아요. 4억 7천만 원 


나는 1층이라 싫다고 했고, 신랑은 그래도 기왕 왔으니 한번 보기나 하자고 했다. 6시가 지나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세입자가 있었고, 우리가 이사를 들어간다면 세입자분이 나가는 시점과 물려 일정을 정해야 했다. 7월 경에 전세를 뺄 예정이라고 했고, 어차피 우리도 전세를 중간에 빼야 하는 상황이라 일정이 타이트한 것보다는 여유 있는 것이 좋았다. 내가 목표했던 상반기 이사에도 가까웠다. 무엇보다. 예산이 맞지 않은가!!! 5억이라는 금액은 사실 대출이 가능한 상한선이었지, 우리에게 여유 있는 금액은 아니었다. 그렇게 대출을 2건이나 받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담되었다. 


(미련하게) 대출원금 균등으로 상환계획을 잡고 대출 시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나의 실수령액의 절반 가까이를 대출원리금 상환에 밀어 넣어야 했다. 그 와중에 이사 가면 분명 사야 할 것이 많을 터였다. 지금 집에서는 놓을 데가 없다고 안산 소파도 사게 될 거고, 미루고 미룬 건조기도 사게 될 거다. 전 세입자에게 15만 원 주고 산 벽걸이 에어컨으론 택도 없을 테니 에어컨도 사게 될 거고. 이사비용에 이것저것 계산하면 들 돈이 한두 푼이 아니었다. 


여기에 나의 기본 생활비, 각종 보험료와 통신비, 이사를 갈 경우에 그 집의 관리비와 유지비 등등을 계산하면 내가 밥 먹고 차 마시는 돈은 한 달에 30만 원도 안 나왔다. 5억으로 계약하고 천만 원은 캐시로 주는 상황까지 고려해야 할 정도로 시세가 올라가 있는데, 4억대 후반의 집은 매력적이었다. 


리모델링한 지 3년 된 집이라고 했다. 안쪽 샤시도 싹 새 거고, 도배나 장판의 상태도 나쁘지 않았다. 전셋집도 도배, 장판 하나도 안 하고 들어간 나였다. 쓸만하면 그냥 쓰는 거지 뭘 바꾸냐 싶었다. 무엇보다 그럴 돈이 없었다. 보일러도 그해 새 걸로 교체했다고 했다. 리모델링이 괜찮았냐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욕실’이었는데, 욕실도 상태가 매우 괜찮아 보였다. 그만하면 새 거 수준이다 싶었다. 뜻밖에도 마음에 들었다. 꽤나말이다. 


저녁시간에 가서 본 게 마음에 걸려서 그다음 날 점심시간에 다시 한번 보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마음에 드는 괜찮은 매물을 발견했다는 말에 시어머니는 단박에 달려오셨다. 아들이 살 집이 어떤 집일지 무척이나 궁금해하셨다. 전세, 월세는 내가 확신을 갖고 구할 수 있었지만 매매는 달랐다. 큰돈이 들어갔고, 당장 가지고 있는 자금 전부가 전세보증금에 묶여 있어서 어른들께 계약금은 현금으로 빌려와야 했다. 입주하고 나면 돌려드릴 수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나에겐 그런 말조차 조심스러웠다. 물론 겉으로는 안 그런 척했지만 말이다. 


“이만하면 도배 안 하고 들어와도 되겠다”


먼저 말을 꺼내신 건 어머님이셨다. 난 욕실과 샤시, 보일러 상태가 저만하면 훌륭하다 싶었다. 그거면 도배나 장판은 사실 부수적인 문제다. 나름 3년 전에 리모델링을 하면서 이것저것 손대 놓으신 게 있어서 스타일도 웬만했다. 원목색으로 맞춰진 가구랑도 대충 어울릴 것 같았다. 


3천만 원이 남는다!!!!


난 사실 그 생각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1층. 벌래 많고 시끄럽고, 사생활 보호 어렵고, 물소리나 불편한 것 투성이지만, 아이가 태어나면 층간소음으로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고 맘껏 뛰어다녀도 될 것이라는 것이 장점으로 다가왔다. 3천만 원이 저렴하다. 그럼 그 정도는 감수하고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만큼 싸게 샀으니, 팔 때 싸게 판다 생각하면 된다는 엄마의 말도 마음에 남았다. 엄마는 이사를 나올 때쯤 그 집이 리모델링을 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아주 믿을만한 소식이었다. 공사한 지 3년 된 집이면 살만할 것 같았다. 3천만 원. 나는 그 예산이 그 집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오는 길에 우린 그 주에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로 하고 가계약금을 100만 원 걸었다. 사무실에 돌아와 일을 하면서도 괜스레 머리가 붕 떠있는 느낌이었다. 같은 사무실에 누군가는 서초동에 집을 샀다는데, 난 고작 염창동에 집을 사면서도 이렇게 설렐 일인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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