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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Sep 08. 2021

이달 안에 계약하고 상반기 안에 이사 갈 거야

실행력만이 살길이다

집을 사려면 정책의 변화도 읽어야 한다

3줄 미리 보기

부동산 중개사 부장님 덕분에 정부보증 대출상품을 2개를 활용하면 70%까지 대출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한 달 사이 또 아파트 가격이 올랐다. 

발품과 실행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서울에 쓸만하다는 괜찮은 아파트들은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했다. 정부에서 지정한 투기지역은 ‘투자’에 좋은 지역임을 인증하는 KS마크와도 같았다. 그래도 염창동에는 그런 여파가 없겠지 했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시세가 변했고 나는 심란함을 감출 길이 없었다. 네이버 시세는 믿을 수가 없다는 말에 그냥 한번 전셋집을 구해준 부동산 부장님께 전화를 드려 시세를 물어봤다. 


시세는 드라마틱하게는 아니어도 나에게 충분히 유의미하게 변화하고 있었다. KB리브온 같은 사이트는 있는 줄도 몰랐다. 네이버 시세는 한국감정원이나 KB리브온보다 훨씬 더 충동적으로 움직였다. 2017년 겨울에 물어본 아파트가 2018년 3월 또 2천만 원이 올랐다. 시세일 뿐이라고 해도, 가격 오름세가 계속되는 것을 본 건물주가 누구라고 가격을 안 올리고 싶겠는가. 사람 마음은 다 같은 것이니 말이다. 


맥락 없는 통화를 끝내려는데 부장님이 희망을 던져주셨다. 


근데요, 방법이 하나 있어요.
제가 그 방법으로 지난주에 은행에 문의해서 이번 주에 매매 계약했어요


바로 대출을 2가지 받는 것이었다. 


거래 시세 5억 원 이하의 집은 주택금융공사에서 운용하는 내집마련디딤돌대출과 보금자리론 2가지 대출을 다 일으켜 대출을 받으면 최대 70%까지 대출이 가능했다. 물론 소득 상한선 기준은 존재했다. 부부합산 소득 6천만 원 미만이 전제조건이었다. 그건 맞추는 게 가능할 것 같았다. 난 월급을 받는 직장인이었지만, 신랑은 사업자라 공제요건들이 많아서 종합소득세 상 소득은 상대적으로 적게 잡히는 편이었다. 


그러니까. 5억 원 이하의 아파트를 구하는 게 관건이었다. 당장 부동산 어플을 켜고 대출 가능한 아파트 단지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날의 나의 패착은 입지의 중요성을 그렇게 절절히 공부해놓고 정작 집을 사려고 할 때는 출퇴근이 가능한 지역 안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것이었지만 말이다. 


다시 희망이 생겼고 나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반경은 정해졌다. 염창동. 수많은 자그마한 아파트들 중 우리 집이 어딘가 한 곳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동산 부장님께 감사를 드리며 그때부터 대출상품을 2가지 다 받을 수 있는 가격대의 아파트 중 대출 가능한 상품들이 나올 때마다 연락을 받기로 했다. 


하지만 나는 안일했다. 그런 놀라운 소식을 듣고도 나는 그저 네이버 부동산 페이지나 들락거렸다. 다시 시세가 2~4천만 원이 오르는 동안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던 꼴이었다. 한 달 사이에 마음속 원탑 아파트의 시세가 2천만 원이나 올랐다는 사실을 듣고 나서야 앗 뜨거를 외친 나는 신랑에게 이 뜨거움을 그대로 전했다. 


이 달안에 계약을 할 거고, 상반기 안에 이사 갈 거야. 그런 줄 알아 


이미 집을 살 거라는 이야기는 애초에 했지만, 그래도 전세를 한 텀은 돌리고 난 다음에 이사 갈 거라고 이야기했던 터였다. 그 말을 내뱉은 지 6개월 만에, 그리고 당시 살던 전셋집에 들어간 지 1년 만에 내린 결정이었다. 난 한번 한다면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는 신랑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고, 그결에 바로 끌고 나와 가양역부터 훑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늘 그랬듯. 부동산은 발품이다. 최소한 지금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삶을 살아나갈 사람이 동의하는 집을 사는 것이 중요했다. 9호선 라인을 필두로 아파트 단지를 하나하나 훑어나가기로 했다. 그때도 이미 마곡은 핫해질 대로 핫해진 상태였고, 나의 예산으로 마곡을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일단 9호선 라인인 가양역에서 도보 이동 가능한 거리 중 가장 멀리 있는 아파트부터 직접 단지 근처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소위 말하는 임장의 시작이었다. 물론 지금도 임장을 하면서 뭘 어떻게 체크하고 확인해야 하는지는 모른다. 지금도 모르는걸 그때라고 알리 없었다. 우리는 우리가 필요한 방식으로 공간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우리의 조건은 3가지였다. (그때는 몰랐지만) 조만간 태어날 아이를 위해 방이 3개, 화장실이 2개인 30평대 아파트일 것, 9호선에서 도보 이동이 가능할 것, 인근에 유흥시설이 없을 것. 그 기본 조건을 충족시킬 아파트 자체는 사실 가양과 염창에 많았다. 염창동은 중학교까지는 학군도 괜찮다는 평가를 받는 동네였다. 지하철과도 거리가 멀지 않고, 염창역까지 도보 이동이 가능하다면 강남까지 지하철로 22분이면 도달할 수 있는 엄청난 매리트를 가진 동네였다. 다만 예산과 맞는지가 중요할 뿐.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일대에 한강변에 내가 원하는 조건을 충족하면서 예산도 맞을 아파트는 내가 현재 살고 있는 그 아파트 말곤 없을 거라고. 이미 많은 아파트가 5억을 넘어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최악의 경우 다운계약서라도 써서 현금 지불을 하고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었다. 


여하튼. 가양역에서 가장 먼저 만난 아파트는 강서한강자이였다. 살짝 걷기는 하지만 인근에 9호선이 있었고, 마곡과 가까운 아파트 중 가장 새 거였다. 하지만 예상대로 이미 시세는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7억이 넘던 대부분의 아파트는 현재 10억 원을 훌쩍 넘은 지 오래다. 그러니 5억대 집이 있을 리가 없지. 그렇게 가양역부터 평수와 금액 2가지 필터를 켜서 뜨는 아파트들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물론 좀 괜찮아 보이는 아파트들도 뒤지면 찾아봤지만 대부분 금액 예산에 걸렸다. 


그렇게 몇 시간을 골목골목 걸어 다녔다. 2017년 겨울 시세를 보면서 한걸음만 더 빨리 걸었으면 더 저렴하게 내 집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을, 더 넓은 선택의 폭을 갖고 더 좋은 입지에 집을 구할 수 있었을걸. 이럴 줄 알았으면 어떻게든 결혼할 때 집을 살걸. 정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최대한 우리 힘으로 살아가고 싶었고, 옷이라던가 하는 소소한 것들을 제외하고는 우리가 하나하나 일궈나가고 있었다. 만약 그때 집을 샀다면, 아마도 어른들께 큰돈을 빌렸어야 했을 것이다. 우린 그런 부담스러운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갭 투자 따위를 알던 시절도 아니었다. 


A아파트는 지하철에서 너무 떨어져 있고, B아파트는 브랜드가 너무 안 알려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다 예산을 넘어서기 일쑤였다. 걸어 다니는 내내 부동산이 보일 때마다 문을 두드리고 우리가 구하고자 하는 조건을 이야기했지만, 이미 그 동네도 5억으로 집을 구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언젠가 월세를 구할 때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예산보다 전체적인 예산이 높아 어느 정도는 포기해야 하는 상태였다. 


그렇게 하루를 꼬박 동네를 헤집고 다니며, “그 조건은 없어요”라는 거절의 말을 수없이 들어가며, 미묘한 무시와 모멸감을 견뎌가며 마침내 염창동의 끝에 도착했다. 가장 끝에 있는 동아3차아파트는 가장 염창역과 가까운 아파트고, 한강 영구 조망권이 확보된 아파트이다. 그 단지 역시 우리가 손댈 수 없는 가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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