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옥진 Sep 13. 2021

다시 월세를 고민한다

1주택을 포기한다는 것이 아니다. 투자를 고민하는 것뿐.

어려서 집에서 큰 사기를 당해 당시 엄마가 장만했던 작은 집이 홀랑 날아간 적이 있었다. 뒤늦게 그때의 빚의 규모를 듣고 내가 한 첫마디는 “겨우 2천?”이었다. 1989년 2천만 원. 그 당시에는 은마아파트도 2천만 원이었다. 30년 전 2천만 원이 오늘의 20억 원이다. 초등학교 때 300원짜리 과자가 제일 비싼 거였는데, 지금은 2천 원은 줘야 그만한 과자를 산다. 


집을 사야겠다는 결정을 하기 전, 수많은 글과 자료를 읽으면서 내린 나의 결론은 


집값이 비싸지는 게 아니다. 인플레이션으로 빠르게 화폐가치가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더 큰 대가를 치르기 전에 집을 사야 한다


였다. 오늘 내가 사는 집과, 지하철 도보 1분 거리의 집과의 차이는 가치의 차이라고 볼 수 있지만 5년 전 집값과 오늘 집값의 차이는 인플레이션이라는 게 나의 결론이었다. 2003년 처음 온 가족이 이사 들어올 때의 우리 집 집값은 1억 원 남짓이라고 했다. 2014년 엄마가 이사 나올 때 그 집은 3억 원이 좀 넘었고, 내가 다시 들어갔을 때 엄마가 살던 그 집은 5억 1천만 원의 시세로 매물로 나왔다. 그리고 지금 그 집은 2021년 9월 현재 대략 10억 원의 시세를 기록하고 있다. 1층인 우리 집은 KB시세 기준으로 9억 6천만 원을 찍었고 말이다. 무려 시세보다 비싸게 산집은 드라마틱하게 비싸졌다.  


같은 이유로 나의 월급은 계속 일을 하고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오른다. 지금 1억 원은 매우 큰돈 같지만 당장 회사생활을 하는 7년 사이에 나의 페이는 꽤 많이 변했다. 물가가 오르면 임금도 따라 오른다. 그리고 그것이 인플레이션만큼을 반영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집은 이미 인플레이션을 반영해 같이 올라가고 있다. 


그사이 변수는 많았다. 주택정책이 계속 바뀌었다. 엄밀하게는 다주택자들을 자극하는 정책들이 쏟아졌다. 반기에 한 번씩 튀어나오는 정책으로 부동산 경기는 불타올랐다. 2017년 8월에 대출을 통제하기 시작한 이후, 2018년 여름 다시 한번 임대주택을 보유한 사람들을 규제하는 정책이 나왔다. 2018년 8월은 지방 사람들이 서울로 몰려와 집을 사들이기 시작했고, 무주택자들도 주택 구매에 나섰다. 공급은 한정적인데 수요가 늘어나면 가격이 오르게 마련이고, 집값은 드라마틱하게 변했다. 2018년 3월 기준으로 6~7억 원 하던 마포의 아파트들은 이제 20억 원을 바라보고 있다.. 염창동 역세권에 15년 된 아파트도 30평대는 15억 원을 넘긴 지 오래다. 2년 된 신축은 이미 입주 이전부터 10억을 찍고 시작했다. 


이 놀라운 변화에도 우리는 평온했다. 왜? 이미 집을 샀으니까.


이 집을 팔고 다른 집으로 갈아타기 힘든 구조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지만, 최소한 지금 오늘은 우리는 그냥 살아간다. 누군가가 우리를 내 보낼 일도 없고(빚만 잘 갚아나간다면) 집 값이 오르면 좋겠지만 사실 아니어도 삶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벼락 거지라는 말이 세상에 떠돌아도 평온했다. 가끔 한 번씩 마음의 평정을 찾고 싶을 때 아파트 시세를 검색한다. 


금리는 계속 떨어지고 있었고, 우리는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를 받았다고 생각했지만, 계속 떨어지는 금리를 보며 속상해졌다.  많은 사람들이, 특히 재테크에 밝은 사람들은 체감식보다는 체증식을 선택하다. 어차피 언젠가 팔고 나갈 집, 이자만 내고 살다가 끝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린 또 그렇게 어려운 선택을 했고, 2년 만에 새롭게 갱신한 360개월 할부를 매달 조금씩 갚아나가면서 살아가고 있다. 요즘 같은 상황에는 어디 이사 가는 것도 쉽지 않다. 예전 같으면 갭투자로 좋은 동네 집을 사고, 월세로 옮겨 전세보증금을 빼 그 돈으로 또 다른 곳에 투자를 하는 부동산 투자의 정석 같은 루트가 다 막혀버린 탓도 있다. 자포자기의 상태랄까? 그냥 이곳에서 당분간은 안전하게 세 가족이 살아가면 그만인 상태가 됐다. 


수많은 정책의 등장으로 우리 아파트의 전세가 시세는 우리가 아파트를 산 가격보다 더 높게 책정되어있다. 하마터면 매매는 고사하고 전세도 못 들어올 뻔했다. 우린 거기서 만족하기로 했다. 최소한 지금 당장은 말이다. 말도 안 되게 높아진 전세 가격을 보면서 친구에게 우리 하마터면 전세로도 못 들어올 뻔했어. 집 안 샀으면 지금 잠도 안 왔을 거 같아.라고 했더니 친구가 말했다. 


뭐든 하나는 샀을 거야. 결혼을 했건 안 했건.
그러니 너의 어떤 선택지에도 '집이 없는 생활'은 없었을 거야



그리고 우리는 다시 월세를 생각하고 있다


물론 지금 이 집을 팔겠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살 집이 필요하지만, 지금처럼 전세자금이 폭등하는 상황에서는 우리 집을 전세로 내주고, 우리는 적은 보증금으로 월세를 살고, 전세금과 대출금의 차액으로 무언가 다시 무언가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둘이 이리저리 짜내어 겨우 1억 원이라는 돈을 힘겹게 만들어냈지만, 이 낡디 낡은 아파트는 우리에게 다시 1억 원이 넘는 돈을 만들어 주었다. 불과 3년 만에. 가족들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월세를 갈 생각까지 하게 된 것은 목돈을 만질 기회가 생겼을 때, 화폐가치가 더 떨어지기 전에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 카페도 들락거리고, 집을 사기 전보다 더 기사들도 열심히 챙겨본다. 책도 사보고 다른 사람들의 사례도 뒤져본다. 결혼을 기점으로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옵션이 있었고, 그걸 모르고 지나갔기에 더 큰 자산 증가의 기회도 여러 번 날아갔다는 것도 배우고 있다. 혼자 사는 수많은 여자 후배들에게 말한다. 


1억 원만 모아봐. 1억 원은 절대 멀고 먼 세계의 돈이 아니야. 


그 큰돈을 어찌 모으냐는 말에 홈텍스에 들어가 그간의 모든 소득을 합해보라고 말한다. 최저시급을 받았다 할지라도 5~6년만 사회생활을 꾸준히 했다면 이미 니 손에 1억 원이 스쳐 지나갔음을 알게 될 거라고. 내가 보증금 1000만 원에 45만 원짜리 월세에서 시작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장 큰 역할을 했던 것은 열심히 갚아나간 전세자금 대출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목돈을 만들어라. 서울이 아니어도 안전한 주거공간을 위한 도전은 어떻게든 해볼 수 있다. 1억 원. 그 돈이 그렇게 어려워 보여도 한번 올라타면 그다음은 움직이는 돈의 단위가 다를 것이다. 


3년 전 그 말을 새겨들은 꼼꼼한 후배 하나는 올해 안에 1억 원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렇게 열심히 돈을 모은 그들도 선뜻 지르지 못하고 관망하고 있다. 공부는 하고 있지만 엄두가 안나는 것이다. 지금은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에 일단 서울이건 경기건 살만한(buy) 동네, 살고 싶은(live) 동네를 뒤지며 시세를 확인하고 후보지역을 정하라고 했다. 


집값은, 특히 아파트 가격은 빅데이터의 산물이다. 남향인지, 1층인지 5층인지, 10층인지, 지하철에서 얼마나 먼지, 쓰레기 모으는 곳과 얼마나 가까운지, 주차장에서 이동은 어떠한지 등등 다양한 변수들이 예민하게 반영된 아주 섬세한 수치이다. 하물며 입지에 따라 얼마나 천차만별인가. 생각보다 서울은 넓고, 경기도까지 하면 더 넓다. 기회는 어딘가에 있고 발품과 노력이 성공으로 이어진다.



(혼자 살수록) 주거안정은 중요하다.

자가주택 매수는 남일이 아니며, 어떤 식으로든 해낼 수 있다. 

도전하고, 공부하고, 아껴서 반드시 해내야 한다. 




이전 13화 금리가 내려갔다. 대출을 갈아탔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