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는 화창했다.
그날은 유난히 날씨가 좋았다고 34살의 미정은 기억한다. 5월의 중순을 달려가는 날이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미정이의 속을 모르는 다른 날씨가 유독 더 밉게 느껴진건지는 잘 모르겠다. 연애는 진작 끝나있었지만 그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고, 그 날이 전 남자친구를 보는 마지막일 거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몇 시간뒤면 영원히 다시는 못 볼 사람이었지만 그 때의 미정이는 몇 달 뒤면 우리는 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헤어진 남자였지만 그에게 만큼은 예외를 두고 싶었다. 왜인지 그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라면 그래도 될 것 같았다.
미정이와 전 남자친구는 헤어진 이후에도 종종 시간을 내서 만났고 서로의 안부를 물어봤으니까, 당연히 서로 떨어져 있더라도 우정은 몇십년이고 영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단순한 남녀사이를 뛰어넘었다고 믿었으니까. 모든 건 착각이었다는걸 깨닫는 데에는 1년이라는 시간이 더 걸렸다.
벌써 많은 시간이 흐른 날이지만 23년 5월 10일, 그날을 미정은 잊지 못한다. 오후 반차를 내고 그가 좋아할만한 쿠키를 샀다. 미용실에 가서 드라이를 했다. 어쩌면 그 날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미정은 가장 이쁜 모습을 그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외국으로 이직한 그 사람이 이민을 위해 한국을 완전히 떠나는 그 날, 울고있는 미정이를 보며 그는 말했다. 항공사 복지를 통해 단돈 몇만원으로 미국과 한국을 왔다갔다 할 수 있으니 그만 울고 잘 지내라고. 어느 누구보다 멋있으니 자존감을 잘 챙겨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현실을 깨닫기까지는 아직 먼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고,
애도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게 다가올 사람들에게 벽을 치고 있다는 걸 어느 순간 깨닫게 된 미정이는 그때의 시간들이 아깝기도, 아쉽기도 하다.
애도의 시간은 집약적으로 최소한의 시간으로 끝내는게 좋겠다고 생각하며 다음 연애를 준비해 보기로 한다.
어떻게 해야 안정적인 관계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갈 수 있을지 여러 사람들을 만나보며 테스트 해보기로 다짐한다.
어쩌면 혼자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한 미정에게 더 이상 남자는 최우선순위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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