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이 사랑하는 쪽
달콤한 하룻밤이 지났다. 미정이는 도대체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건지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본능이 시키는 대로 했을뿐이니까.
이전에도 이런적이 있었나 생각해 보았지만, 첫만남에 바로 잠까지 잔 경우는 없었다. 나이를 허투로 먹은 건 아닌가 심각하게 고민했다.
어쨌든 일은 일어났고, 밤새 진을 뺀 두 남녀는 방을 빠져나왔다. 함께 아침을 먹고 남자는 집으로 돌아갔고, 미정이도 근처 오피스텔로 돌아올 뿐이었다.
그 날 이후 두 남녀는 '연애'를 시작하기로 한다.
미정이는 사랑에 빠지는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내 인생에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는 두려움 그리고 머릿속에 그리던 너무나 완벽한 사람과의 밤을 보낸 미정은 가끔씩 두려워졌다. 지금의 행복한 순간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마음 속에 물밀듯 밀려들어왔다.
두려움은 초조함으로 변했고, 그 남자의 연락을 기다리는 순간부터 미정이는 주도권을 완전히 내어줬다. 이제 이 연애의 갑은 그 남자였다.
사랑에서 갑과 을이 어디 있겠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미정은 그것은 충분히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더 많이 좋아하는 쪽이 을이다.
시소가 한 쪽으로 기우는 쪽이 을이다.
더 적게 가진 쪽이 을이다.
상대방을 더 원하는 쪽이 을이다.
상대방과의 관계를 지속함으로써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쪽이 을이다.
미정이는 확신했다. 본인은 백퍼센트 을이라는 것을.
그 뒤로 미정이가 생각하는 평등한 연애관계는 존재하기 힘들었고, 어쩌면 본인의 완벽한 이상형이라는 헛된 이념 아래에 미정이는 필요도 없는 '을'질의 연애를 지속한 여자가 된 건지도 모르겠다.
이제서야 그 때를 회상해 보자면, 미정이는 '을'이 될 필요가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 남자는 미정이의 이상형도 아니었을 뿐더러, 미정이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다.
그 남자가 나를 구원해줄 수 있다는 착각 아래에, 미정이의 격정적인 을질은 계속되었고 관계는 그렇게 망쳐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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