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찬찬 May 27. 2024

잘 찍은 사진이란 대체 뭘까.

잘 찍은 사진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나는 예전부터 '잘'이라는 개념이 수상했다. AI 시대가 오면서 그 생각은 좀 더 확고해졌다. 잘 쓴 글, 잘 찍은 사진……세상살이라는 것이 꼭 남들에게 잘 보여야만 하는 것일까. 구글 이미지 검색만 해봐도 잘 찍은 사진은 수두룩 나온다. 심지어는 각종 명소마다 포토스팟까지 있다. 조금만 연습하면 누구나 잘 찍을 수 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방법으로 촬영하면 누가 찍은 것인지 분간을 못 할 정도로 모두가 휼룡한 포토그래퍼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기술적 동어반복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것이 상업 논리가 아닌 이상 나에게는 딱히 의미가 없는 거 같다. 정말로 배고플 때 고급 레스토랑의 파인다이닝보다 엄마의 김치찌개가 생각나는 이유는 그 음식이 잘 만든 음식이라기보다는 내 맘에 드는 음식이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인가가 마음에 든다는 것이 꼭 '잘'이라는 개념과 맞물려 있지 거 같지는 않다.


어느 작가의 화려한 문장보다 서툴지라도 오직 나만을 위해 쓰인 편지가 더 마음에 와닿는 이유는 그것이 잘 쓴 글이여서라기보다는 좋은 글이기 때문이다. 나는 잘 찍은 사진보다 좋은 사진을 찍고 싶다. 화려한 불꽃놀이 사진보다 그 불꽃놀이를 찍고 있는 수많은 카메라맨을 찍은 사진이 나에게 더 의미 있어 보이는 이유는 그것이 나에게 더 많은 생각을 불러이르키게 하는 좋은 사진이기 때문이다.


한때 나 자신이 무능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뭐 하나 잘하지도 못하는데 과연 살아갈 자격이 있을까. 인생은 완벽하고 잘 사는 사람의 무대고, 못사는 사람들은 그저 박수나 치며 어두운 관객석에만 있는 존재들이라고 생각했다.


그 시절 나는 수많은 잘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그들과 조금이라도 닮아가려고 수평 수직을 강박증 환자처럼 신경 쓰기 시작하고, 구도의 정확성을 따지며 정답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무언가 정답이 있는 것처럼 행세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개성이 사라지고 사진 찍는 일이 재미가 없어졌다. 재밌기 위해 시작한 사진이었는데 재미가 없어졌다는 것은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어느 강연자가 한 말이 기억난다. 그 강연자는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현상이라며 하나의 예시를 들었는데 한국은 어떤 장르든 무대에서 공연하고 난 다음에 잘했냐고? 물어보는 것이 문화화 되어 있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 같은 경우에는 잘 즐겼냐고 묻는데 한국은 공연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혹여나 무대에서 실수하지 않았을까 걱정부터 한다는 것이다. 정말로 실수했다고 쳐도 다시 그 공연을 돌이킬 수도 없는데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삶을 즐기는 법을 잃어버린 게 아닐까.


잘 찍은 사진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좋은 사진은 무엇인지 알 거 같다. 그것은 내 마음에 와닿는 사진이다. 꼭 모두의 마음에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그것은 내 판단 영역이 아니다. 내가 의도하지 않은 사진이 누군가에겐 좋은 사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꾸준히 믿고 촬영하다 보면 누군가 기적처럼 내 사진을 좋아해 줄지 모른다. 상업적 이유가 아닌 이상 잘 찍든 잘 찍지 못하든 그것은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꾸준히 믿고 촬영해보는 것이다. 그것은 삶을 살아갈 때도 마찬가지다. 잘 살지는 못해도 좋으면 그만인 것이다.



대충 살자(2019) Shot By 찬찬


이전 04화 과거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