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변비엔 미끌미끌 복숭아 씨앗(도인/桃仁)

변비 처방약재로 쓰이는 씨앗 이야기

by 리아
도연이(가명)때문에 변기를 3번이나 손 봤어.
너 그 이야기 여러 번 했거든. 좀 그만하지?


친구 딸 도연이는 밥도 잘 먹고 에너지 레벨이 매우 높은 아이다. 기골도 장대하고 장군감이다. 특별히 아픈데 없이 건강하지만 단 하나 불편한 증상이 있으니 바로 '변비'다.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기도 하거니와 한번 변을 보면 화장실 변기를 막히게 하는 전설을 자랑한다. 친구는 처음에는 하소연같더니 나중에는 자랑삼아 여러 번 이야기를 해서 내가 변부심(변비 자부심) 있는 거냐고 묻기까지 했다. 도연이가 남다르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겐지.


보통은 아이들이 밥 안먹어서 고생인데 도연이 식사량은 어른과 맞먹었다. 건강 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우리 애가 밥을 잘 안먹어서, 우리 애가 너무 말라서, 우리 애가 키가 작아서, 우리 애가 감기에 자주 걸려서 등등은 도연이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의뢰인의 요구는 간단했다.


오직 변비만 고치면 되었다.


변기들이 질식사 하지 않도록.




변비의 기본적 접근은 ‘막히면 뚫는다’이다. 마치 화장실 변기가 막히면 트래펑을 찾거나 흡입기를 쓰려는 것과 같다. 그런데 성인의 만성변비, 급성변비에는 사하력(瀉下力)이 좋은(뚫어주는) 처방을 쓰지만 어린이 변비는 접근이 다르다. 어린이의 변비처방은 세차게 내리치는 소나기가 아닌 부드럽게 내리는 봄비의 느낌처럼 접근한다.


성장단계에 있는 아이들은 소화력과 장의 기능이 아직 약하다. 따라서 무조건 뚫어주기보다는 스스로 소화력을 개선시키고 장이 운동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 변비를 고친다고 아이에게 ‘센’ 변비약을 처방하는 것은 모든 감기에 항생제를 쓰는 것과 같다.


어린이 변비처방에는 ‘도인(桃仁)’, '나복자', '후박', '대황' 등의 약재를 쓴다. 한자로 된 약재명이라 괜히 어렵게 느껴지지만 '도인'은 복숭아 씨앗, '나복자'는 무우씨다.


한방에서 자(子), 인(仁)으로 이름 붙여지는 것은 대개가 씨앗이다. 그 중 껍질을 벗긴 씨앗을 인(仁)이라 하여 복숭아 씨앗은 도인(桃仁), 살구 씨앗은 행인(杏仁)이라 한다. 복숭아 씨앗은 호두알처럼 주름진 커다란 씨앗이 있는데 그 씨앗을 또 쪼개보면 아몬드와 같은 작은 씨앗이 있다. 그것을 약재로 쓴다.


도인2.jpg
도인.jpg
내 안에 너 있다. 복숭아 씨앗 속에 아몬드 크기의 작은 씨앗이 또 있다. 이것을 약재로 쓴다.


대부분의 씨앗은 윤장작용(장을 윤택하게 한다)이 있다. 들기름, 참기름, 올리브유 등 모두 씨앗의 미끌미끌한 성질을 활용하는 것이다. 특히 '도인'은 아래로 부드럽게 밀어내는 역할을 하는데 변을 무르게 하고 장의 운동을 활발하게 한다. 혈액순환을 도와 피가 정체 되어 생기는 노폐물인 어혈을 없애주고 생리통이 있거나 피가 맺힌 것을 빨리 풀어 부인과 처방에도 종종 쓰인다.


변비가 있는 경우 복부에 가스가 많이 차기도 한다. 이 경우에는 장내 가스를 제거하는 ‘후박’을 쓴다. 골뱅이마냥 돌돌 말려진 후박은 후박나무의 껍질이다. 투박한 외모와 달리 강한 ‘향’이 있다. 방향성(芳香性)이 있는 약재(향이 강한 약재)는 대부분 막힌 것을 뚫어주고 소통하는 역할을 한다. 후박 역시 그 강한 향으로 장내 자욱한 가스를 시원하게 밀어내고 날린다.


후박.jpg


위와 장은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변비는 대장의 기능개선만이 아니라 위장의 기능도 함께 개선해야 한다. 진피(귤껍질)와 나복자(무우씨)는 소화를 돕는다. 나복자는 무우씨로 하기(下氣/기를 아래로 내리다)의 역할을 하여 소화와 변비를 돕는다. 그래서 무우 말랭이 차를 마시면 속이 편안한 이유다. 무우는 천연소화제이니 평소에 소화가 잘 안되는 경우 무우 말랭이 차를 마시는 것도 좋다.




변비처방도 다른 처방과 마찬가지로 체질과 증상에 따라 처방이 달라진다. 아이가 다소 예민하고 위장과 대장이 함께 좋지 않은 경우는 '향부자'를, 지구력이 떨어지고 혈색이 거무튀튀한 경우는 '숙지황'을, 감기에 잘 걸리고 체력이 약한 경우는 '녹용'을 추가한다. 피부가 건조하고 아토피, 비염이 있는 경우 장도 약한 경우가 많은데 딸 아이도 그렇다.


약 달이는 날엔 어떤 약재에 호기심이 발동하여 뜨거운 물에 우러내 마셔보거나 향을 맡아보거나 직접 먹어보기도 한다. 도연이 변비 좋아지는 한약을 달이던 날은 무우 말랭이차를 만들어 보려고 냉장고에서 놀고 있는 무우를 꺼내 덥썩 썰었다. 햇볕에 쨍하니 말려 차로 마셔 볼 생각이었다.


무우말리기.jpg


도연이의 변비는 좋아졌고 이후 한약 의뢰할 일은 없겠다 싶었다. 그런데 얼마나 활동적인지 신나게 놀다가 크게 타박상을 입어 어혈 풀어주는 한약을 이어 의뢰하게 되었다.


여하튼 이제 변기는 무사하다고 한다.


도인염주.jpg 복숭아 씨앗으로 만든 염주. 겉씨는 염주로 속씨는 약재로 쓰이니 씨앗 하나 버릴 것 없다.





























keyword
이전 19화갑골문(甲骨文)이 한약방에서 발견되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