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나 Dec 31. 2023

투명인간은 싫어요

무명 씨 이야기



제 이름은 밝히지 않고, 이야기를 시작하려 합니다.


새해는 다가오는데 제 고민은 깊어지기만 하네요.

이런 이야기를 어디 할 수 있는데도 없고 해서 여길 찾아오게 되었어요.




어릴 적부눈에 잘 띄지 않는 편이었어요. 늘 조용히 혼자 있는 아이였거든요. 학창 시절에도 존재감이  없긴 했나 봐요. 고등학교 졸업여행 때 저랑 한 방에 배정된 같은 반 친구가 방 배정 목록에 적힌 제 이름을 보고 제가 누구냐고  친구들에물어보고 다녔던  있었던 걸 보면요.


그냥 그렇게 가끔씩 사람들한테 잊혀지 것 같다는 느낌으로 살아왔어요. 그렇다고 그게 큰 문제가 되는 건 아니어 그럭저럭 잘 지내왔다고 믿었어요. 지금까지는요.


... 요즘에는...

제가 사람들한테 잘 잊히는 데에 어떤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죠.


그러니 말이죠.


사실 제가 투명인간이어서 그런 건 아닐까요?

가끔씩 저는 투명인간으로 변신하는 것 같거든요.




최근에 중국집에 짜장면이랑 탕수육을 배달시켰던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배달음식을 받고 보니 탕수육 소스가 없더라고요. 봉지 안을 샅샅이 뒤지고, 혹시나 해서 현관 앞도 다시 나가보았지만 탕수육 소스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어요. 누락된 게 확실했죠. 


당황해가게에 전화를 하니 사장님이 죄송하다고 하셨어요. 그리곤 다음번에 주문 시 서비스를 잘  드리겠으니 이해 좀 부탁드린다고 하시더라고요. 이해를 바란다는 그 말이 순간 저를 묶어버린 듯했어요. 결국 그저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태로 묵묵히 그 전화를 끊고 말았죠.


그러고 나서 퍽퍽한 탕수육을 먹어치우며 생각했어요. 과도 받았고 별일도 아니니 그냥 넘어가자고요. 그런데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보아도 왠지 마음속에 화가 사라지않았어요. 요즘 들어 부쩍 그런 일이 잦아요. 예전 같으면 그냥 넘겼을 일인데 말이죠.


 화가 가시 않아 고민하다 가게 리뷰를 남겼어요. 그래도 조심스럽고 정중하게 글을 썼죠.  짜장면은 맛있었지만, 탕수육 소스가 누락되어 먹기 힘들었다, 다음번에는 이런 실수 없길 부탁드린다고요. 그런 말을 남기면서도 미안한 마음에 별은 다섯 개나 주었다니까요.


그런데요...

다음날 보니 제 리뷰가 감쪽같이 없어진 거예요. 어찌 된 일인가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확인해 보니까, 허위 사실로 인한 업주의 차단 요청으로 제 리뷰가 블라인드 처리가 되었다고 하는 거예요. 


놀랐어요. 한 문장이라도 거짓된 내용쓴 건 없었거든요. 그런데 사장님은 왜 허위 사실이라고 하셨을까요? 단순히 제 글이 불편했던 걸까요? 아님, 저랑 통화한 사실을 잊어버리시기라도 한 걸까요? 


이렇게 쉽게 제 항의는 사라져 리고야 말았죠.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일처럼요.

어쩌면 그때부터 이미 저는 투명한 상태였던 걸지도 몰라요.




 며칠 전에는 네일숍에서 제가 사용하지 않은 적립금이 사용되기도 했어요.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제가 일정 금액을 넣어놓고 회원제로 다니고 있는 네일숍에서 문자가 띠링 오더라고요. 문자를 보니 제가 넣어둔 적립금에서 당일 사용 금액이 차감되었다는 내용이었죠.


놀라서 전화해서 확인해 봐야겠다 생각했는데 업무가 많아 늦게 일을 마치고 보니 그날은 미처 연락을 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그다음 날은 가게 휴무일이어서 어쩌다 보니 며칠이 지나서야 가게에 연락을 취하게 돼버렸죠.


전화를 해서 사용하지 않은 금액이 차감되었다 하니까 전화기 너머 직원 목소리가 날카로워지기 시작했어요.

그러더니 며칠 전에 000 고객님이 방문하시지 않았냐, 긴 머리에 이십 대 후반 여성분이시고 당일 회색 코트를 입지 않으셨냐 따지시는 거예요. 

제 이름도 맞고 인상착의도 맞았어요. 심지어 회색코트마저요. 그런데 저는 그 시간에 회사에 있었던 게 확실했거든요. 


귀신이 곡할 노릇이죠.

아니, 제가 귀신이나 다름 없는거죠. 이쯤 되니 저는 제가 의심스러워 질 수밖에요. 이 상황 자체가 투명인간의 초능력 같은 것 때문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막연히 들었어요. 어쩌면 제가 분신술 같은 걸 썼던 걸 수도 있잖아요. 물론, 제가 투명인간의 능력이 어디까지인가 그런 건 확실히 잘 모르지만요.


그런 생각들을 두서없이 하며 저는 제 손을 지그시 내려보았어요.

아무것도 발라지지 않아 그저 투명한 손톱이었죠. 


모든 게 너무 혼란스럽더라구요.  


결국 몇 번의 실랑이 끝에 결국 진실이 밝혀졌어요. 알고 보니 저랑 비슷한 인상착의를 지니고 회색 코트를 입은 동명이인이 그날 네일을 받고 갔더라고요. 그리고 네일 숍 실수로 제 이름으로 금액이 차감이 된 거였고요. 


기분이 이상했어요.  네일숍을 이년도 넘게 다녔거든요. 그런데도 네일숍에서 다른 사람과 저를 헷갈리셨다는 게 서운하기도 했고 어이없기도 했어요. 잡답도 없이 늘 조용히 네일만 받고 가는 손님이라 눈에 지 않았던 걸까요?


아님, 정말로...

그러니까 제가 말했잖아요.

제 추측이 맞는 것 같아요.




제가 근무하는 회사에서는 작년부터 선택적 근무시간제를 사용하여 출퇴근 시간을 조절해서 근무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런데 외부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아야  때문에 정해진 근무시간 동안 누군가 한 사람은 남아 자리를 지켜야 했죠. 그래서 돌아가면서 선택적 근무시간제를 사용하기로 했어요. 순번을 정한 것까진 아니지만 눈치껏이요. 


그런데, 다들 사정이 있어서 눈치껏 순번이 지켜지지 않더군요. 가정이 있는 분들은 이런저런 집안 사정으로 일찍 들어가야 된다 하셨죠. 회사에서 먼 곳에 사시는 분은 늦게 퇴근하면 퇴근 시간이 두 배는 더 걸린다며 일찍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시는 경우가 잦았어요. 아! 어떤 분은 퇴근 후 자기 개발을 위해 학원을 다닌다고 하시더라고요. 학원 시간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그 시간에 맞춰서 퇴근을 하시곤 했죠.


결국 늘 6시까지 자리를 지키는 사람은 대부분 저였어요. 

저는 눈치가 없는 사람이어서 그렇게 된 걸까요? 아님 눈치가 있는 사람이어서 그렇게 된 걸까요?

제가 눈치가 없어서 그런지 아직도 그걸 잘 모르겠네요.


그러다가 엊그제는 제가 병원 예약 시간 때문에  시간 빨리 퇴근을 하게 되었죠. 물론 며칠 전부터 벽에 걸려있는 회사 일정 보드판에 표시도 해두었고, 사람들한테도 여러 번 미리 말을 해둔 상태였어요. 


그리고 당일 퇴근 시간에 맞춰 자리를 정리하고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자리에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 거예요. 글쎄, 자리를 지키는 사람 하나 없이 모두 일찍 퇴근해 버린 거죠. 


멍하니, 그 빈 의자들을 보고 있는데 때마침 전화벨이 울렸어요.  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자리에 앉아 그 전화를 받았죠. 결국 전화 응대를 한참 하게 되느라 일찍 퇴근하지도 못했어요. 당연히 병원 예약시간도 맞출 수 없었고요.


다들, 제가 회사 일정판에 써놓은 내용이 안 보였던 걸까요? 제가 한 말이 안 들렸던 걸까요?  

아니면 역시 제가 투명인간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그것 말고는 말이 안 되잖아요.




그러다 어제는 이런 꿈을 꿨어요.

출처: PIXABAY

꿈속에서 저는 마트 카운터에서 물건 값을 계산하려고 카드를 내밀었죠. 그런데 무슨 문제로 인해서 계산이 안되더라고요. 제 잘못은 아니었고 뭔가 직원의 실수인 것 같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 직원이 거기서 갑자기 말도 안 되게 저를 도둑 취급하더라고요. 물론 꿈이라서 그런 거겠지만요. 


하지만 그 직원이 저를 범죄자 취급하며 저에게 비아냥 거리 저는 순간 이성을 잃고 분노했어요. 카드를 직원 얼굴 앞으로 내던지며 그럼 경찰 불러!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죠.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잔뜩 일그러진 모습으로요. 모두가 저를 주목하는 게 느껴졌지만 아랑곳하지 않았죠. 그렇게 미친 사람처럼 따지다가 꿈에서 깼어요. 꿈에서 깼는데도 꿈속에서의 모든 감각이 너무 생생하더군요. 그리고 ‘정말 후련하다’라고 느꼈어요. 

 

‘정말 후련하다’ 니요? 그렇게 느낀 제 자신에게 너무 놀랐어요.

꿈속에서의 제 모습은 현실에선 절대 있을 수 없는 모습이었거든요. 현실에서 저는 그런 사람 모습을 우연히 목격하게 되기라도 한다면  공공장소에서 저렇게 행동하는 건 무식한 짓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리고 그런 행동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주목받는다면 부끄럽고 수치스러워서 견딜 수 없 같고요.


그런데 제가 왜 그렇게 느꼈을까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하다 스스로 답을 찾고는 그만  하고 제 심장이 내려앉는 듯 충격을 받았죠.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저는 무의식 중에 내심 부러웠나 봐요.


꿈에서 깨자마자 꿈속에서처럼 소리 높여 악을 써보려 했지만 목에 뭐가 걸린 마냥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어요. 목소리를 잃은 인어공주처럼요. 


꿈에서 깬 저는 그렇게 여전히 나인 채로 남아 있을 뿐이었죠. 




"진상같이 굴어 모두의 눈에 띄고 싶은 건 아니에요. 그렇게 될 수 없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렇게 투명인간으로 살아가고 싶지도 않은걸요."


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런데...

다들, 제 목소리 잘 들리시죠?

저, 잘 보이시는 거 맞죠?

제가 혹시 또 투명인간으로 변신했나요?




이전 06화 귀여움은 세상을 구할 수 없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