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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나 Jan 20. 2024

엄마에서 직장인으로 변신

오현주 씨 이야기



죄송합니다.


제가 좀 많이 늦었죠?

늦게 들어와서 제대로 인사도 못했네요.


오현주라고 합니다.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워킹맘이에요.


오늘도 쉬는 날인데 밀린 일을 처리하고 오느라 그만 늦었어요. 


워킹맘이 된 이후로는 늘 뛰어다녔던 것 같아요. 몸이 달리고 있는 게 아니면 마음이라도 달리는 듯  분주했죠. 현실에서 뛰고 있는 게 아니라면 아마 꿈에서라도 뛰고 있었을 거고요. 


종종거리며 가다가 누군가한테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하고 있었을지도 몰라. 그리고 멈춰 섰을 때는 덤덤한 척하며 숨을 고르고 있었을 거예요. 지금처럼요.




두 아이를 키우느라 오랫동안 쉬다가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는 그러니까 이제 6남짓 되었어요. 아직도 정신이 없어요. 다시 사회로 돌아오기 직전부터 정신이 없었지만요. 미리 준비를 해야 했거든요.


여러 가지 준비를 해야 했지만 사실 제일 먼저 한 건 외양을 바꾸는 거였어요.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년 동안 새치가 소복하게 생겼더라고요. 정수리 쪽 머리카락을 들쳐보자 한숨이 나올 정도였어요.


애써 시선을 아래로 내려보자 이마에는 가로로 주름 개가 진해졌더군요. 아이들을 안거나 업고 다니느라 허리 통증이 심해졌는데 통증이 밀려올 때마다 인상을 쓴 탓인가 봐요.


아이 둘을 아침에 어린이 집과 유치원으로 각각 정신없이 등원시킨 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옷소매에는 밥풀들이 붙어있었어요.


밥풀들을 떼어내자 현관 전신거울에 비친 제 몸이 눈에 들어왔죠. 쑥 훑어보자 오늘따라 부해보였어요. 출산 후 늘어난 5kg의 살을 미처 빼지 못한 탓이겠죠. 저는 그 모습이 입고 있던 양털 후리스 점퍼 때문이기라도 한 것처럼 떨쳐내 옷을 벗으며 집 안으로 들어갔어요.


그리고, 옷장으로 향했죠.

지금의 사태를 개선할 만한 그럴듯한 옷이 없을까 하는 기대감에서였어요.


그러나 역시나 허튼 기대였어요. 마지막 출근일로부터 5년이나 지난 지금, 저를 예전 모습으로 돌릴만한 옷은 정말 없었어요. 뿐만 아니라 출근할 때 입을만한 옷마저 마땅히 없더라고요.


옷장 안엔 대부분 '등원룩'으로 가득했어요. 그러니까, 아이들을 등원이나 하원시킬 때 입기 좋은 그런 옷들이라는 거죠. 편하고 실용적인 옷들이요. 물론 그런 등원룩으로도 '꾸안꾸룩'(꾸민 듯 안 꾸민듯한 패션)을 선보일 순 있겠지만, 그래도 기껏해야 동네를 다니는 차림이죠. 즉, 베이직하고 베이지한 옷들이 가득했다는 말이에요.


사실 엄마가 되고서부터는 자기 치장의 많은 걸 생략할 수 있었어요. 생략하게 되었다는 말이 더 맞겠네요. 잦은 빈도로 감지 않은 머리를 질끈 묶고 모자를 눌러쓴다던지, 화장을  생략한다던지, 슬리퍼 같은 편한 신발을 신고 동네를 돌아다니게 되었다는 거죠. 핸드백 대신 기저귀 가방을 들고요.


때때로 가끔은 그런 차림이 권장된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그런 차림은 눈에 띄지 않잖아요.  결혼한 여자의 성이라는 것, 아이 엄마라는 건, 무난한 차림새로 보여야지만 세상의 손가락질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니까요.


언젠가 미니스커트를 입고 힐을 신은 아이 엄마를 본 적이 있었어요. 그 모습이 예쁘고 보기 좋아서 저도 모르게 시선이 갔죠.


그런데 아이가 안아달라고 매달리는데 엄마는 차림새 때문인지 그저 난감해하며 아이를 달래고 있었어요. 아이의 울음소리가 높아지자 지나가는 사람들 눈초리가 어딘지 날카로워진 것 같았죠.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질 못하고 그 모습을 보며 혀를 끌끌 차더군요. 어떤 사람은 "애 엄마가 저렇게 입으면 안 되지"라고 나무라는 듯 말하기도 했어요. "누굴 보여주려고 저렇게 입었대?"라고 말하며 지나가는 사람도 있었죠. 그 말은 엄마인 사람은 누군가에게 눈에 띌 필요가 없다는 말일까요. 아니면 그래서는 안된다는 말일까요. 


괜히 저는 제 자신의 차림새를 다시 단도리 하며 그 자리를 벗어났어요. 무심코 풀려나오던 욕망들을 다시 꾸욱 눌러 넣으면서요.




세상 밖으로 나가는 건  다시 그 욕망들을 조금씩 풀어놓을 수 있게 해주는 계기가 되어주었어요. 사회생활을 하며 자기 관리를 하는 것은 정당한 명분이 주어진 일이니까요. 그렇게 자기 가꿈의 세계는 조금 더 확대되었어요. 그것이 저에겐 조금 위안이 되었답니다. 어쨌든, 나를 좀 더 가꿔 줄 수 있겠구나 하고요.


출근 준비를 시작하며 짧았던 단발머리를 다시 기르기 시작했죠. 긴 머리에 소요되는 시간을 생각한다면 무척 고민되는 일이었지만요.


출근할 때 입을 옷을 사기 위해 쇼핑도 했어요.

제가 다니는 곳은 직장인으로서 기본적인 차림새는 갖추어야 하는 회사였거든요.


그래서 저는 슬랙스 바지를 두 벌정도 사는 걸로 본격적인 쇼핑을 시작했어요. 요즘은 허리가 고무줄 밴드로 되어 있어 편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의 슬랙스들이 많더군요. 아줌마들에게는 고무줄, 스판이 최고예요.


상의를 고를 때는 소재에 신중해야 했어요. 잘 구겨지거나, 드라이 필수인 소재는 곤란해요. 바쁜 워킹맘에게 부담스럽거든요.


그리고 신발은 더욱 신중해야 했죠. 편한 단화를 하나 장만했는데 굽은 3센티 정도로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아야 했고 무엇보다도 발이 편해야 했어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뛰어다녀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발이 편하기로 유명한 브랜드에서 조금 돈을 주고 좋은 신발을 구입했죠. 잘 산 것 같아요. 그 신발을 신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뛰어다녔는데도 끄떡없이 잘 버텨 주었거든요.


출근룩이라 해봤자 특별할  없었죠. 여전히 베이직하고 베이지했어요. 그리고 여러 가지로 실용적이어야 했죠.


다만, 생활의 태가 더 묻어나냐 직장의 태가 더 묻어나냐 그 차이가 있었어요. 그렇기에 직장인의 차림새를 새롭게 갖출 필요가 있었던 거고요.




사실상 등원룩 차림으로 꾸안꾸 패션을 주장하며 동네를 돌아다니든 단정한 직장인의 차림새로 출근하든 어찌 보면 결국 파리하고 피곤한 얼굴을 감추려 애써 노력하는 발버둥에 불과했죠. 주어진 범위 내에서 아무리 잘 단장해도 가려지지 않는 피곤함이 결국 저를 더욱 초라하게 만드는 것일 텐데도요. 


그렇지만 그럴듯해 보이고 싶었어요. 엄마의 삶에서도 직장인의 삶에서도 그랬죠. 항상 제 안에는 초라해 보이고 싶지 않다는 욕망이 억눌려 있었어요.


 마음 때문에 저는 엄마라는 얼굴을 더욱 떨쳐버리고 싶었는지도 몰라요. 솔직히 말하자면 제 안에선 엄마의 삶이 더욱 초라하다는 인식, 그렇기 때문에 바깥세상에 나가서는 그 모습을 떨쳐내버리고 싶다는 마음이 존재했던 거죠. 


그런데 엄마의 삶은 직장까지 자꾸 저를 따라왔어요. 세탁소에 맡긴 옷을 찾아왔음에도 미처 세탁표를 떼지 못한 옷을 입고 다니는 것처럼요.


그 꼬리표는 직장에서도 저를 초라하게 만드는 것 같았죠.

그래서 더욱 '워킹맘'이라는 단어가 싫었어요.

저는 그냥 직장인이고 싶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워킹'과 '맘'의 두 세계를 분리하려면 어떤 의식이 필요했죠.

그러니까... 변신이요.




출근하기 위해 단장하는 건 저에겐 일종의 변신이었어요.

엄마에서, 직장인으로의 변신이요.

그렇게라도 두 삶에 경계가 있길 바랐죠.


어릴 때 봤던 애니메이션에서 변신하는 캐릭터들이 생각났어요. 평범한 보통의 소녀들이 변신을 하면 이전과 다른 차림새로 악당을 물리치기 시작했죠.


저도 그렇게 변신을 하는 거예요. 단정히 화장을 한 뒤 셔츠에 슬랙스 차림으로 차려입고, 약간의 굽이 있는 신발을 신고, 핸드백을 들고 변신을 완료하는 거죠. 출근 차림새가 갑옷이라도 되는 것처럼요.


그리고 중요한 마지막 의식이 있어요. 집 문을 나서며 꼭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거예요. 당당히 집을 떠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인사말이죠.

 

그렇게 저는 직장인으로 변신을 해요. 그리고 영웅도 악당도 없는 워킹맘의 세계로 들어가죠. 거기서 전 변신을 했는데도 아무도 모르는 차림으로,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전쟁을 치르러 가는 거예요.


그럼 무엇을 물리치러 가냐고요?    


눈을 감아도 보이는 어떤 풍경.    

 

쌓여있는 설거지와, 바닥의 뽀얀 먼지, 소파와 티비장 밑에 굴러다니는 아이의 장난감들, 건조기 안에 엉켜있는 개키지 못한 옷들, 식탁 위에 올려놓고 미처 읽지 못한 아이들의 가정 통신문, 풀다 만 아이들의 학습지들과 그 위에 굴러다니는 색연필들, 현관 앞에 쌓여있는 택배 박스들, 달력에 동그라미 쳐져있는 시댁 제사 일정.      


그리고 어떤 말들.


집에서 꿀 빨다 나왔네, 애 엄마라 맨날 집에 가기 바쁜가 봐, 오랜만에 복귀해서 감 떨어진 거 아니야?, 애들 밥은 잘 차려주니?, 집안 꼴이 이게 뭐니, 엄마 보고 싶어, 엄마 나 아파, 엄마 언제 와?, 엄마...


저는 그것들을 모두 제쳐두고 일을 해야 해요.  그것들이 잘 극복되지 않는 건 제 변신이 불완전한 탓일지도 몰라요.


언젠가는 정말 완벽한 직장인으로 변신하길 바라며,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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