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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물자국 09화

어떤 촌스러움에 대하여

by 스밈

SNS에서 이런 우스갯소리를 본 적이 있다. “아, 이번 자취방 체리몰딩에 꽃벽지야. 인테리어 망했어!”


어느샌가 체리몰딩과 꽃벽지는 촌스러운 인테리어, 지나버린 유행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사실은 나도 그렇게 생각하기는 한다. 어떤 감성인지는 알겠는데 딱히 예뻐 보이지는 않는, 내 집이었다면 나도 ‘인테리어 망했어’라고 여길 법한 것들. 그렇지만 동시에 묘하게 씁쓸한 기분이 든다. 참 이상하지, 내 취향도 아닌데. 내가 원하지도 않는데. 내 방에 정말로 들이고 싶지 않은데. 대체 왜.


그 미묘한 쓴맛을 곱씹다 나는 ‘꼰대’를 떠올렸다. 그래. 촌스러운 벽지는 소위 ‘꼰대’같은 거다.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나는 저렇게 나이 들지 말아야지. ‘꼰대’를 보면 으레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도 언젠가는 지나간 세대를 보며 수군거리는 젊은이들이었을 테다. 찬란하게 빛나던 청춘이었을 테다. 눈부신 영광의 순간들을 반추하며 그들은 길고 긴 이야기의 되새김질을 시작한다. 그 모습이 체리몰딩과 꽃벽지와 꼭 닮았다. 그런 생각들을 하니 이내 나를 거슬리게 한 쓴맛의 실체를 찾은 것만 같았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두어야 한다. 내 영광의 순간이 한때뿐이라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것은 흘러가고 바래고 퇴색되기 마련이다. 그 물결 속에서 나는 나를 오롯이 지켜내야 하는 것이다. 그깟 유행에 좀 어긋나면 어떤가. 내가 행동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나는 다시 빛날 수 있는 것이다.


체리몰딩과 꽃벽지 그리고 꼰대는 조금 더 어깨를 펴도 된다. 지금의 자신에게 너무 큰 잣대를 들이밀며 재단하지 않아도 된다. 과거의 영광만 영광인가. 만들어나가기 나름이다. 지금의 부족함을 찾기보다는 스스로를 탐구하고 개성을 찾아야 한다. 스스로를 아는 사람만이 성장할 수 있고 빛이 난다. 꼰대들이 좋아하는 건배사가 떠오른다. ‘청바지.’ ‘청춘은 바로 지금’이라는 뜻이다. 말만 그렇게 하며 과거의 청춘을 갈망하지 말고, 현재의 순간을 청춘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체리몰딩에 꽃벽지 투성이인 집이라도, 요즈음 유행하는 모던한 인테리어의 흐름 속에서도 누군가는 여전히 체리몰딩을 좋아하고 꽃벽지를 사랑할 것이다. 그에 맞춘 인테리어를 부러 할 것이다. 아주 당당하고 행복하게. 본인의 인테리어를 너무나 마음에 들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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