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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물자국 07화

잔 위에 남은 것들

by 스밈

커피는 두 종류가 있다. 가짜 커피와 진짜 커피. 가짜 커피는 출근해서 카페인 수혈을 위해 아무 브랜드에서나 대용량으로 들이키는 커피다. 진짜 커피는 휴일에 좋아하는 공간과 분위기를 느끼며 음미하는, 본인이 좋아하는 메뉴의 커피 한 잔이다. 이렇게 구분하는 이유는 아마 두 커피가 맛도 느낌도 퍽 차이가 나기 때문일 것이다. 나조차도 가짜 커피와 진짜 커피를 구분하고, 각각 선호하는 메뉴도 다르다. 가짜 커피는 보통 아이스 아메리카노, 진짜 커피는 라떼를 고른다.


진짜 커피는 그 날 그 날 기분에 따라 따뜻한 라떼와 아이스 라떼 중에 선택하는데, 집에 하루종일 있는 주말이면 보통 둘 다 마신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브런치와 함께 마음까지 시원하게 탁 트이는 아이스 라떼를, 저녁 먹고 난 후에는 마치 녹아드는 휴일의 끝자락 같은 따뜻한 라떼를 마신다. 그 중에서도 저녁에 먹는 따뜻한 라떼는 작은 찻잔에 한 샷만 넣어서 만든 고소한 라떼. 언뜻 디저트 같기도 한 풍미 때문일까, 기분이 색다르다. 내일 출근하지 않는다는 데에서 오는 평안함과 안도감, 묘한 들뜸이 뒤섞여 달달하기까지 하다. 한 입, 두 입 아껴 마시다 보면 어느새 바닥이 드러나고 컵 안에는 커피 거품이 늘어붙어 남는다. 혀로 날름 핥아 봐도 잘 지지 않는 커피 자국을 보고 있자면 잠시 생각에 빠지게 된다.


어느 나라의 점쟁이들은 남은 커피 자국을 보고 운명을 읽는다지. 나는 그저 내 커피잔 속 흐릿한 얼룩을 보고, 지난 주말을 점칠 뿐이다. 강아지처럼 보일 때도 있고, 하트일 때도 있고, 어떤 날은 형태 없이 얼룩덜룩하기도 하고. 어차피 무슨 모양이 나오든 나는 해석할 수는 없겠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어느새 부드러웠던 커피 자국은 끈적하게 눌러붙는다. 맛이 궁금해 살짝 혀를 대 보면 씁쓸하다. 아까는 분명히 달달했는데.


써진 입맛을 다시며 싱크대로 향하며 문득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커피의 흔적이 아니라, 내 마음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금세 지나간 주말에 대한 아쉬움. 하루가 쏜살같이 흘러간 데에 대한 미련. 진짜 커피의 달콤함은 잠깐이고, 다시 가짜 커피를 마셔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뒤틀린다. 그렇게, 커피의 흔적은 늘어지고 질척이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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