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 한 장이 나풀대며 떨어져 수면에 닿는다. 물 위를 잠시 맴돌다 젖어버린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서서히 가라앉는다. 꽃잎은 떨어질 때에도 가라앉을 때에도 느릿하고 조용하다. 낙화야말로 고요한 낙하다. 꽃을 구경하는 사람들은 물 아래로 사라진 꽃잎에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는다. 탐스럽게 송이송이 매달린 꽃들을 구경하기에도 넘치는 하루가 아니던가.
사라져 버린 꽃잎은 애처롭게 물 속 깊이, 더 깊이 가라앉는다. 가라앉는 모습이 꼭 나 같네. 생각해 본다. 아마 멀어져 가는 수면을 한동안 바라보겠지. 푸른 물빛 속 너울대는 햇빛을 보며 아름답다고 느낄 것이다. 아련하게 들려오는 물 밖의 소리들이 조금은 그립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다 이내 서서히, 아주 고요한 지점에 이르른다. 줄어든 빛과 소리들. 점차 부옇게 가려지는 시야와 먹먹해진 귀. 가라앉는 마음은 어둡지만 그래도 살아 있다는 감각은 여전하다. 조금은 두려운 마음. 그 마음 위에 조용히 앉아 되뇌어 본다. 괜찮다. 정말 괜찮다.
어둡다 못해 새까매진 시야 속. 눈을 뜬 건지 감은 건지 모를 상태로 어딘가를 응시한다. 더 이상 무언가를 분간하기 어려워 눈을 감는다. 가만히 있는 것조차 버거운 순간이구나, 생각한다. 이 떨어짐에 끝은 있을까. 그러다 문득 알 수 없는 기분을 느낀다. 끝없는 적막이 주는 평온함. 단절과 체념이 만들어 낸 이완감. 후련하지는 않지만 묘하게 편안한 감정. 그 속에서 무의미의 의미를 찾는다.
애쓰지 않아도 괜찮은 고요 속에서, 비로소 정적의 해방을 맛본다. 움직이지 않아야만 느껴지는 해방이라니. 그간 나를 사로잡는 압박들 속에서 얼마나 부던히 버둥거렸던가.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 귓가를 간지럽히는 소리는 누군가의 것인지 나의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어쩌면 수면 위가 아닌 이곳이 진짜 세계인지도 모른다. 남들은 절대 알 수 없는 나를 찾아 주는 진정한 나의 자리.
나는 침잠 속에서야 비로소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