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랜만이지요, 이렇게 인사를 건네는 것은. 거기 있는 줄은 알았습니다. 다만 보지 않으려 했을 뿐. 내가 당신을 똑바로 보지 않으려 해서 서운했나요. 하지만 당신도 알고 있었을 겁니다. 아직 내가 당신을 마주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그 동안 잘 지냈나요. 이렇게 묻는 것도 퍽 이상하긴 합니다. 그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을 텐데요. 나는 당신을 보지 않았지만 언제나 지켜보고 있었고, 당신의 소식을 알고 싶지 않아하면서도 궁금해 했으니까요. 나는 비록 당신을 미워했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나 봅니다.
오늘은 햇빛이 좋습니다. 이런 날이면 당신은 늘 평온한 표정으로 창 밖을 쳐다보고는 했지요. 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당신과 달리 나는 마냥 날씨를 즐기지만은 못해요. 당신이 창 밖으로 훨훨 날아갈까 봐, 아니면 되려 창문을 닫고 꽁꽁 틀어박힐까 봐 꽤나 전전긍긍 한답니다. 당신이 무얼 하든 관심은 없지만 뭘 하고 있는지는 내가 알아야 했어요. 모순적이지만 당신을 보는 내 마음이 그렇습니다.
특히 어제는 참 조마조마했어요. 비가 왔으니까요. 심지어 바람이 불어 꽤 춥더군요. 당신은 춥거나 비가 오는 날이면 집안의 모든 창을 틀어막고 커텐을 치지요. 그 안에서 휘청대며 춤을 춘다고요. 왜인가요? 하루라도 가만히, 잠잠히 지나갈 수는 없나요? 꼭 무언가를 해야만 속이 시원한가요?
흔들리는 발이 닿는 대로 가다가 당신은 결국 무언가를 깨뜨립니다. 유리로 된 물컵 같은 것들요. 쨍그랑. 그 물컵은 너무 크고 날카로워서 내가 있는 곳까지 소리가 들립니다. 부서진 파편들이 나에게 와 박힙니다. 나는 성질이 나 당신을 노려보지요. 하지만 이내 그 눈길을 거둘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은 파편 그 자체가 되어 피를 철철 흘리고 있으니까요.
내가 당신을 미워하냐고요. 네, 맞아요. 그렇습니다. 나는 당신이 미워요. 하지만 동시에 안쓰럽습니다. 연민일까요. 그렇게 부를 수도 있겠네요. 당신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걱정됩니다. 애증일까요. 그건 또 아닌 거 같기도 하네요. 당신은 내가 의식을 가질 때부터 나와 함께 했지만 딱히 좋은 일을 만들어 준 적은 없었어요. 가끔 민감하게 만들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 애정이 생기기는 힘들었지요. 그렇다고 증오라고 하기에는 당신이 퍽 불쌍합니다.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나 원하지 않는 사람 옆에 언제나 붙어 있어야 하는 신세가.
오늘도 당신은 나의 옆에 있지요. 이 글을 쓰는 것조차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내가 당신을 들여다보듯 당신도 나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도 알아요.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고, 들여다보고, 애틋하게 여깁니다. 하지만 끝끝내 서로 안아 주지는 못했어요. 언젠가는 그럴 날이 올지도 모르지요. 한 발씩 조금 더 가까워지면 그런 날이 올까요. 나는 내 안의 당신을 안아 줄 수 있을까요.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또 다시 비가 오는군요. 이만 줄여야겠습니다. 당신이 또 휘청이는 걸 바라보러 가야 하니까요. 벌써 창을 틀어막고 있군요. 한결같은 당신이라 참 지긋지긋한데, 그 모습에 또 눈물이 나네요. 눈물을 닦아야 해서 이만 줄입니다.
당신이 쳐다보는 것을 느끼며. 당신의 불안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