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엘리베이터 거울에 대해 그런 괴담이 있었다. 엘리베이터 양 벽면에 붙은 거울은 서로를 무수히 반사하며 잔상을 만들어 냈는데, 그 중 몇 번째의 잔상과 눈이 마주치면 죽게 된다나. 몇 번째 잔상은 혼자 뒤를 돌아보고 있다거나 그런 류의 소문들. 어린 마음에 그게 퍽 무서워서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괜히 긴장하며 거울을 보지 않으려 애썼다. 실수로 거울을 보게 되어도 잔상을 주의 깊게 보려고 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의 괴담보다 내 얼굴이 더 중요했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거울도 잘 보게 되지 않게 되었다. 가끔 거울을 보는 날에는 시간이 참 빠르다 싶다. 요즘 엘리베이터는 그런 소문 때문인지 인테리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보통 한 쪽 벽에만 거울이 있다.
그렇지만 종종 양 벽면에 거울이 있는 엘리베이터를 탈 때면 나는 무심코 거울을 본다. 더 이상 괴담이 무서운 나이는 아니지만 이제는 다른 이유로 거울을 보며 긴장하게 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잔상. 그 속에서 나는 수많은 나를 마주한다. 내가 인식하는 나와 저 안에서 날 응시하는 나는 어떤 차이가 있지, 사실 수많은 내가 하나하나 다 진실이라면 어쩌지. 넋놓고 바라보다가는 내가 나를 빼앗길 듯한 기분을 느낄 때쯤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린다. 금세 사라질 기분이지만 어쩐지 붙잡고 들여다보고 싶다고도 생각한다.
어쩌면 가장 나를 속속들이 보여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수많은 자신을 만나고 알게 되고 기뻐하고 실망하지 않나. 그 과정에서 가끔은 외면하고 싶은 나의 모습을 덮어 두기도 하고. 그렇지만 거울 앞에서는 다 보이는 거지. 다 들켜버리고 마는 거지. 그럼 그때 거울이 외치는 거지. 너를 봐. 네가 침묵한 네가 여기에 다 있어. 그렇게 낱낱이 보여 주는 거다, 거울이야말로. 어쩌면 그때서야 나는 나를 온전히 마주하는 거 아닐까. 사실 괴담은 괴담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수많은 나를 마주하며 내가 등돌렸던 나를 찾기를, 내가 흐리게 보던 내 모습을 찾기를 바라는, 우리가 잊고 있던 이야기였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