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울은 설탕 같았다. 처음에는 한 조각 케이크 위에 올라간 슈가파우더처럼 가벼웠다. 달아서 미간을 좁히다가도 그럭저럭 삼켜 넘겼다. 왜 그런 것들 있지 않나. 조금 신경쓰이고 거슬려도 그러려니 하고 참아 넘기는 것들. 그렇게 씹어 넘겨버렸다.
한 입, 두 입, 그렇게 소복히 쌓여가는 줄은 몰랐지. 곱던 입자는 어느새 손으로 쓸면 까슬하더니 점점 무겁게 내려앉았다.
무기력하게 침대에 모로 누워 벽을 바라보면서, 그냥 이대로 설탕처럼 사르르 녹아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침대에 흡수되듯이 녹아서 아무도 날 발견하지 못하게. 희뿌연 안개 속에서 나를 잃은 듯하면서도 이대로 가라앉아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머릿속 안개가 조금 갠 날, 나는 왜 하필 설탕처럼 녹고 싶다고 생각했을지 궁금증이 들었다. 사라지고 싶었다면 정말 흔적이 없는 눈처럼 녹을 수도 있었을 텐데. 녹아 잠시 물이 고여도 햇빛 쨍쨍한 세상에 스러져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말끔히 사라질 수도 있었을 텐데.
사실 이대로 사라지고 싶지 않았던 걸까, 사라지기 억울했던 걸까. 설탕처럼 녹아 딱딱하게 굳어버린 나를 누군가 발견해 주길 바랐던 걸까. 숨 막히는 적막 속 울부짖는 나를 누군가 귀기울여 주길 바랐던 건 아닐까.
크림브륄레는 위에 딱딱한 설탕층이 있다. 숟가락으로 딱 하고 깨부수면 부드러운 크림이 나오고 한 입 퍼먹으면 달달함에 금방 미소짓게 되는 그런 디저트. 사실 나는 녹고 싶다기보다 잠시 굳어서 멈춰있고 싶었던 것 아닐까?
그러고 보면 결국 나 스스로가 설탕이었다. 녹기를 바라면서도, 누군가가 깨주기를 기다리며 잠시 굳어 있던. 잠시 멈추어 있다 못 이기는 척 마치 언제 그랬냐는듯 즐거운 나날을 이어나가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