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장에서 생긴 일
드디어 기다리던 촬영일이 되었다. 멀게만 느껴졌던 첫 촬영날이 막상 다가오니 긴장이 되었다. 더욱이 첫 촬영은 이번 단편영화에 참여하는 모든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처음으로 다 같이 만나는 날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색함과 긴장감이 촬영 분위기에 영향을 끼치진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되었다. 복합적인 생각과 감정을 갖고 촬영 장소에 도착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첫 촬영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촬영의 시작을 알렸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스태프들과 배우들도 긴장을 했는지 초반에는 서로 쭈뼛쭈뼛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첫 테이크를 찍었다. 처음엔 모두 어색하고 낯을 가렸지만, 첫 테이크 이후로 합을 맞춰가며 천천히 유대감을 쌓기 시작했다. 날씨도 너무 화창해서 기분 좋은 시작을 할 수 있었다.
우리는 모두 근처 일식집에서 밥을 먹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총 21 씬인 시나리오를 2회 차 안에 찍겠다고 무리수를 뒀던 탓에 시간이 매우 촉박했다. 최대한 딜레이가 없이 진행하기 위해서 우리는 밥을 먹자마자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첫 신을 시간 내에 순조롭게 찍었다는 생각에 다음 촬영도 무사히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서 이동하는 동안 스태프들과 시작이 너무 좋다며 덕담을 나눴다.
그리고 다음 로케이션인 우리 집에 도착했다. 집에서 찍는 씬이 약 5개 정도 되었는데, 모두들 분주하게 움직여 준 덕분에 큰 딜레이 없이 집 신을 다 찍었다. 그리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전에 카메라 SSD 카드를 백업을 하기로 했다. 나는 데이터 매니저를 해주기로 한 연출부 친구에게 카드를 넘겼고, 파일을 옮기는 동안 우리는 장비 및 로케이션 정리를 시작했다. 각자 분주히 움직이고 있던 중에 데이터 매니저 친구가 나에게 다가왔다.
“저….”
뒷골이 좀 싸했다.
그 친구는 입술이 파르르 떨며 간신히 말을 이어나갔다.
“아침에 찍은 게 다 날아갔어요.. 죄송해요…”
분주히 움직이던 스태프들이 모두 멈췄다. 순간 정적이 흘렀고 모든 사람의 시선은 나에게로 몰렸다. 일단, 크게 심호흡을 했다. 앞으로 찍을 씬들이 산더미인데, 솔직한 심정으로 당장 이 문제를 외면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일단 괜찮다며 그 친구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오히려 좋은 방향으로 만들자고 얘기했다. 사실 나에게 하는 만트라 같은 거였다.
돌이켜보면, 아마 그 순간 가장 힘들었던 건 이 친구였을 것 같다. 본인이 피해를 끼쳤다는 생각에 도망치고 싶었을 텐데, 감정적으로 대처하지 않고 그 뒤에 실수를 무마하고자 묵묵히 그리고 더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해나갔다. 나중에 들은 얘긴데, 이 친구가 데이터가 모두 날아간 걸 알고 한 5초 정도 혼자 ‘내가 한 게 아니라고 할까?’하는 고민을 했다고 했다. 촬영이 무사히 끝난 이 시점에서 이 에피소드는 지금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는 추억이 되었다.
예전에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NASA에 관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NASA에서는 누군가 실수를 하면 그 사람에게 기회를 또 준다는 얘기었다. 실수를 한 사람은 자신이 왜 실수했는지 알기 때문에 다음에는 그 일을 더 잘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매우 인상 깊었었다. 우리는 주로 일을 하면 실수를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렇지만 누구나 다 실수는 하기 마련이다. 중요한 건, 실수를 한 다음이다. 실수한 이유를 파악하고 똑같은 문제가 생기지 않게 노력하는 게 실수를 오히려 좋은 쪽으로 만드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는 철저하게 데이터를 확인했고, 스태프들 모두 친구의 실수를 탓하기보단 오히려 농담 삼아 가볍게 만들었다. 덕분에 촬영장 분위기는 더 화기애애해졌다. 만약 이 친구를 비난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분명 촬영은 순조롭게 흘러가지 않았을 거다. 모두 우리는 한 팀이라는 생각으로 함께 문제를 해결해나가고자 했기 때문에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예전에 명상 선생님이 나에게 해주신 말씀이 생각난다.
‘만약 반갑지 않은 상황이 나에게 벌어졌을 때, 그럴 수도라는 섬에 다녀오세요.’
맞다.
파일 날리는 거
그럴 수도 있지. ^^
결국 우리는 날아간 신을 재촬영하게 되었고, 이왕 재촬영하는 김에 3회 차로 늘리자는 핑계로 넉넉하게 촬영했다. 스탭들도 한 번 더 봐서 오히려 좋았던 실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