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학생의 집밥 기록
높은 물가로 유명한 북유럽에서 교환학생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집밥'이다. 대부분의 북유럽 국가에서는 높은 임금으로 인해 사람의 손을 거치고 서비스가 들어간 형태의 품목에 만만치 않은 값을 지불해야 한다. 유명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의 햄버거 세트가 이곳에서 1만 원은 거뜬히 넘어가니 말이다. 만약 특별한 날 조금 더 느낌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싶다면 어느 정도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북유럽=높은 물가'라는 익숙한 이 공식도 막상 핀란드에서 살아보니 꼭 100% 들어맞는 것은 아니었다. 슈퍼마켓에서 장을 볼 때면 1차 산업의 상품이나 공산품은 한국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저렴한 가격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계란, 채소, 과일 그리고 육류 모두 한국보다 저렴한 것들이 많아서 마트에서 만큼은 살인적인 북유럽의 물가를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만약 외식을 자주 했다면 그 악명 높은 물가를 정통으로 마주했겠지만 말이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면 백팩을 메고 기숙사를 향해 자전거의 페달을 힘차게 밟는다. 이때의 나는 낯선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잠깐의 시간들 속에서 '아프면 곤란하니 몸을 잘 챙겨야 한다'라는 생각을 자주 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밥을 꼭 잘 챙겨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점심은 주로 학교 카페테리아를 이용했고 아침과 저녁은 집에서 챙겨 먹었다. 카페테리아에 준비된 음식을 먹을 때면 '누군가 차려준 밥'이 새삼 감사해진다. 물론, 내가 돈을 지불한 대가로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지만 만약 아무리 많은 돈을 낸다고 해도 누군가의 노동이 없다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게 되니 정당한 서비스라고 해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기로 선택했다.
집에서 아침은 주로 간단한 시리얼이나 과일로 배를 채웠고 저녁에는 본격적인 요리를 했다. 다행히 원래 요리를 즐겨하고 좋아했기 때문에 음식을 해 먹는 것은 나에게 상당한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유튜브를 통해 찾아본 레시피들로 요리를 하기도 하고 냉장고 정리를 위한 메뉴를 만들어 한 끼를 차리기도 했는데 각각의 개별적인 재료가 요리를 통해 한 접시 위에 올려지는 모습에서 기대하지 않은 성취감을 느꼈다. 유에서 무를 만들어 내는 짜릿한 느낌이랄까.
비록 이곳에서 자주 먹은 음식들이 핀란드스러운 식사는 아닐지 몰라도 정성스럽게 만든 매 끼니는 핀란드를 추억하기에 충분했다. 이 모든 식사는 추운 북쪽 땅에서 스스로 적응을 해나가는 나의 특별한 과정이었고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물가가 비싼 것이 단점이라고 생각했지만 덕분에 나는 핀란드에서 나만의 고유한 식사를 누리며 재미있게 살아갈 수 있었다. 주황 불의 은근한 조명 아래에서 가스불이 아닌 전기레인지로 요리하던 그 겨울을 어찌 잊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