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식당은 밥 먹는 곳 이상의 기능을 제공해야 한다
내가 속한 단과대의 건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카페테리아다. 아주 넓은 공간은 아니지만 단과대 건물이 카페테리아를 중심으로 전체 층의 가운데를 뻥 뚫어놓았기 때문에 건물 높이와 카페테리아의 층고가 같아지면서 탁 트인 느낌을 준다. 게다가 천장의 일부가 유리로 되어있어서 실시간으로 바깥 날씨를 확인하기에 매우 유용했다.(10월부터는 눈으로 뒤덮인 유리를 바라볼 수밖에 없지만 이마저도 굉장히 운치 있는 풍경이었다)
카페테리아에서 친구들과 밥을 먹으면서 한 가지 신기한 점을 발견했다. 이곳에는 밥을 먹는 사람도 있지만 다른 목적을 가지고 온 사람도 있다는 것이었다. 테이블에서 노트북을 펼쳐놓고 과제를 하는 사람,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사람, 책을 읽는 사람, 심지어는 피아노를 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에게 이 공간은 식당으로 정의되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분명 한쪽에는 뷔페식으로 차려진 음식이 있는데도 말이다.
한국에서 대학을 다닌 나에게 학생식당은 순도 100% 밥을 먹는 공간이다. 밥을 다 먹었으면 식기를 재빨리 반납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것이 당연했고 조금 이타적으로 말해보자면 식판을 들고 빈자리를 찾고 있는 사람을 위한 매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곳에서 책을 읽거나 수다를 떠는 것이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에게는 암묵적으로 '학생식당은 밥만 먹는 곳'이라는 룰이 있지 않았나 싶다.
핀란드의 카페테리아 그리고 한국의 학생식당은 무엇이 달랐을까? 개인적으로는 사용자가 자신의 편의대로 공간을 활용하는 것도 좋지만 공간이 사용자에게 그 공간의 기능과 바운더리를 어느 정도 먼저 언급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핀란드 학교의 카페테리아는 그 역할을 잘 감당한 것 같았다. 우선 그들은 카페테리아를 밥 먹는 곳으로 제한하지 않고 모두에게 열린 편안한 공간으로 사용하기를 원했다. 만약 밥 먹는 곳이라는 단일목적으로 공간을 구성한다면 그곳은 식사시간 이외에는 아무도 찾지 않는 비어버린 공간이 돼버린다.
핀란드 학교에서는 건물에 처음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곳에 카페테리아를 배치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했다. 그리고 각각의 요소들을 통해 앞으로 이 공간이 어떻게 사용되기를 바라는지 알려주었다. 먼저 높은 층고가 주는 무한성과 자유로움은 공간을 압도하며 활력을 더했고 식당이지만 식당 같은 분위기를 만들지 않기 위해 바닥에는 생생한 컬러를 사용하면서 가구의 종류도 다양하게 구성한 것 같았다. 실제로 카페테리아에는 흔들의자나 바 테이블 형식의 높은 의자가 있었는데 똑같은 테이블과 의자로 공간을 쭉 채우지 않고 다양한 디자인의 소품을 사용하면서 더욱 재밌는 공간을 만들어 낸 것이 인상적이었다.
같은 공간에 모였지만 사람들은 제각기 자신이 '해야 하는 것' 또는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었다. 한 공간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다양성은 활기찬 에너지가 되어 건물 전체를 감싸는 아우라로 완성되었다. 나는 여기서 이런 걸 해도 되는지 눈치 보지 않는 학생들의 ‘마이웨이’ 마인드가 참 좋았고 어쩌면 그것은 공간이 이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수용해주고 있었기에 가능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틀에 박히지 않은 공간 덕분에 나도 그곳에서 훨씬 자유로운 생각을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교육으로 유명하다는 핀란드에서는 이런 자유로운 공간이 학생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