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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스티까 Oct 09. 2020

쓰던 물건 팝니다, 핀란드의 중고가게

물건의 수명을 늘려가는 재밌는 공간

기숙사에 도착한 첫날, 핀란드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사기 위해 시내로 향했다. 아직까지 이 동네 지리는 기숙사 건물 외에 아무것도 모르는 이방인이었지만 다행히 학교에서 소개해준 핀란드인 튜터와 함께 길을 나서게 되었다. 기숙사에서 시내까지는 걸어서 약 40분. 중심가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들린 곳은 중고가게였다. 흔히 중고가게라고 생각하면 이유 없이 작고 퀴퀴한 공간이 떠오르는데 첫 발을 디딘 이곳은 붉은 벽돌에 층고가 높은 꽤 괜찮은 공간이었다.


우선 이곳은 판매하고 있는 중고품의 종류가 굉장히 다양했다. 일반적인 주방기구부터 자전거, 각종 의류, 책 그리고 손으로 직접 뜬 양말까지 없는 게 없는 곳이었다. 가게 안은 전체 공간을 각각의 개별적인 부스로 나눠놓았는데 등록된 판매자가 자신의 부스에 팔고 싶은 물건을 진열해 둔 것 같았다. 각자의 취향과 개성이 녹아있는 부스를 구경하다 보니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각각의 부스별로 구역이 나뉘어있고 판매자가 자신의 부스에 중고품을 내놓은 상태이다. 각자의 취향이 가득 담긴 작은 방이 한데 모여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긁힌 자국이 있지만 색이 예뻐 눈이 갔던 동그란 접시, 포크와 숟가락 그리고 칼을 샀다(이후에도 이곳에 다시 들려 자전거를 사기도 했다). 상품에 붙어있는 가격표를 보면서 이 가격에 이런 물건을 가져갈 수 있다는 사실에 마치 횡재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건의 상태도 사용감만 있을 뿐 적어도 나에게는 문제가 될만한 상태는 아니었다. 오히려 중고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나면 이곳에서는 더 이상 똑같은 재고가 없다는 사실에 특별한 한정판을 산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색깔이 맘에 들어 산 접시는 단돈 50센트였다. 단순한 음식을 올려도 플레이팅이 멋지게 된 것 같아 학기가 끝날 때까지 가장 좋아했던 접시이다.


핀란드에서 중고품을 사면서 저렴한 가격에 보물 같은 물건들을 찾아내는 재미와 그 속에서 발견한 소비의 영향력을 생각하게 되었다. 필요와 취향에 따라 쉽게 사고, 잠깐 쓰고, 금방 버려버리는 문화가 익숙한 시대에서 물건의 수명을 늘리기 위해 모두가 공유하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지구와 함께 살아가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새 물건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자원은 어마어마하다. 단적인 예로 청바지 한 장을 만드는데 물 1만 리터가 필요하니 말이다. 필요하다면 새 물건을 사는 것이 나쁘지는 않지만(실제로 나도 중고가게에서 필요한 것을 사고 나와서는 새 제품을 파는 일반 마트로 향했다) 새 것을 소비하기 전에 '이미 세상에 나온 것'들을 한 번쯤 돌아보는 것 자체가 자원을 아끼는 친환경적인 발걸음의 시작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새 상품의 비닐을 벗고 이 땅에서의 여행을 시작한 수많은 물건들이 기왕이면 다구간 티켓을 끊은 장기 여행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중고품을 구입하면서 "이 물건은 어디서 어떤 바람을 맞으며 사용되었을까?", "나에게 오기 전까지 누군가에게도 유용한 물건이었겠지."라는 상상을 해보았다. 이 상상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와 내가 연결되어있다는 느낌을 들게 만들었고 결국에는 우리 모두가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잔잔하게 알려주었다.


내가 가진 소비의 힘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게 될 때 우리는 아직 쓸만한 물건이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그 공간을 흥미로운 눈으로 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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