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어를 넣어두는 시간
오락거리가 별로 없는 핀란드에서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청량한 북유럽의 자연환경과 여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이유로 들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추억과 기쁨은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한 시간 속에 있었다.
나는 교환학생 기간 동안 한 플랫에서 6명이 함께 지내는 기숙사에 살았다. 플랫은 3개의 방과 주방, 화장실, 샤워실이 있었는데 두 명이서 한 방을 나눠서 쓰고 주방과 같은 나머지 공간은 6명이 함께 쓰는 형태였다. 처음 기숙사에 도착했을 때의 감정은 아직도 생생하다. 며칠 먼저 도착한 플랫 메이트들이 따스하게 건네준 인사 덕분에 낯선 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는 안도감과 앞으로의 시간에 대한 기대감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플랫 메이트들의 국적은 겹치는 나라 없이 다양했다. 한국과 그리스, 독일, 러시아, 스페인 그리고 프랑스. 총 6개의 국적이 모여 살게 되었는데 처음 6명이 다 모인 날에는 같이 저녁을 만들어 먹고 그 시간을 family dinner라고 불렀다(이후로도 패밀리 디너는 우리 플랫의 시그니처 행사로 자리 잡았다). 국적도 전공도 다른 6명의 친구들이 모인 이 집에서 우리는 각자의 모국어를 잠시 넣어두고 완벽하지 않은 영어로 하루 종일, 한 학기 동안 마음을 주고받으며 가까워졌다.
서로가 서로의 모국어를 사용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얼마나 가까워질 수 있을까? 관계를 쌓아가는 것에 있어서 대화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결국 대화가 잘 통해야 관계에도 진전이 있기 마련인데,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머릿속에 있는 생각과 감정을 영어로 표현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단어와 표현 안에서 전하고 싶은 뉘앙스를 모두 표현하는 것은 때때로 고통이 뒤따르는 창작활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답답함이 찾아올 때면 외국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하고 싶다는 욕심과 함께 영어공부에 대한 의지가 불타올르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서로 완벽하지 않은 영어를 쓰면서도 진심은 반드시 통한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어쩌면 타인과 관계를 쌓아가는 것에는 생각과 마음을 담는 ‘언어’라는 틀을 넘는 무언가가 있는 게 아닐까? 6명 모두가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쓰면서도 4년이 지난 지금까지 각자의 나라에서 우정을 쌓아오고 있는 것을 보면 마음과 마음을 주고받는 것에는 언어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