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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스티까 Sep 26. 2020

비건에 대한 첫 기억

북유럽, 핀란드에서 만난 비건

비건과 채식주의가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며 한국에서도 비건을 앞세운 상품들이 심심치 않게 보이고 있다. 한 온라인 편집샵의 카테고리에는 아예 '채식주의'가 자리 잡고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생활 속에서 자주 접하는 소모품들이 채식주의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걸 보니 괜히 반가운 마음이 든다.


몇 년 전, 핀란드에서의 교환학생 첫 학기가 시작될 무렵 프랑스 친구의 기숙사에서 다른 나라 친구들과 소소한 저녁식사 시간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날의 저녁 메뉴는 구운 소시지와 파스타였는데 메뉴는 특별하지 않았지만 핀란드라는 낯선 땅에서 우리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기에는 딱 알맞게 따뜻한 자리였다.


호스트가 각자의 접시에 잘 삶긴 파스타와 소시지를 덜어주는 동안 체코 국적의 친구가 갑자기 주섬주섬 빵과 먹을거리를 가방에서 꺼내더니 자신이 가져온 걸로 저녁식사에 함께 해도 될지 물었다. 알고 보니 이 친구는 동물성 성분은 먹지 않는 비건이었다.


'취존'이 있는 핀란드에서의 저녁식사. 오전에 숲에서 따온 블루베리로 직접 만든 머핀은 디저트로 딱이었다.


그때 당시 ‘베지테리언’은 내게 익숙한 단어였지만 ‘비건’은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대충 베지테리언과 비슷한 의미라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정확하게 어떤 뜻인지 알고 싶어 찾아봤더니 채식과 관련된 단어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건지! '페스코 베지테리언', '락토 베지테리언' 그리고 '비건' 등 생소하지만 구체적으로 나눠져 있는 각 단어의 뜻을 보다 보니 새로운 세계 속에 들어온 것 같았다.


채식주의에 대한 첫 기억이 새로운 친구들과의 따뜻했던 저녁식사 자리였기에 이제는 '채식'하면 왠지 모를 편안함과 그리움이 느껴진다. 게다가 나에게 채식은 그저 환경과 동물을 위한 무언가가 아니라 각자의 선택에 대한 '존중과 받아들임의 문화'이다. 함께 모인 우리가 꼭 같은 성향과 취향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좋은 공동체를 이뤄갈 수 있고 오히려 서로의 다른 점이 관계를 더 깊고 다양하게 만든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채식을 지향하는 사람을 두고 자신의 삶이 꼭 정답인 것처럼 "넌 꼭 그렇게 까다롭게 굴어야 하니?"라고 되묻기보다 세상의 다양함을 받아들이며 "넌 그렇구나~"라고 존중해주는 것, 그리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태도가 참 인상적이었다.


아무튼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알게 된 체코 친구의 비건 고백은 서로에 대한 대화를 나누기에 좋은 시작점이 되어주었다. 핀란드에 오기 전에는 서로의 존재조차 모르던 우리가, 이제는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더욱 특별하게 흘러갔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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