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라면, 또 누가 있는가?
필자는 딸이 어느 정도 말을 할 줄 알기 시작한 때부터 항상 입버릇처럼 하던 질문이 있다.
“수아는 누가 지켜줘?”
“아빠가!”
엄마 아빠 둘 중 혹여라도 누구 하나가 속상해할까 싶어 아무리 요리조리 유도 신문을 해도 언제나 “엄마 아빠 둘 다 똑같이 좋아!”라고 대답하는 딸이지만, ‘지켜준다’라는 개념에 있어서만큼은 아빠에 대한 신뢰가 절대적이다. 특히 단둘이 함께 어딜 나갈 기회가 생길 때면 집을 나서는 것과 동시에 그 질문을 꼭 하곤 했었는데, 그렇게 의식적으로 질문을 했던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딸에게 자신이 위험에 빠지면 언제라도 아빠가 달려갈 거라는 믿음을 주기 위해서, 그리고 둘째, 그 믿음을 절대로 저버리지 않겠다고 아빠 스스로 다짐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것이 딸을 키우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제1원칙이 되어있다.
딸은 약한 존재다. 막연하게 ‘아직 어리니까’, 혹은 ‘여성이니까 약하다’라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뭉뚱그려 생각하면 정말 중요한 순간에 딸을 세상의 위험으로부터 온전히 지켜내기 어렵다. 딸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일을 겪게 될 것이며, 그것이 왜 딸에게 위험할 수 있는지, 그럼 나는 아빠로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그리고 결국 딸을 키우는 데 있어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갈 것인지를 모두 미리 깊게 생각해 보지 않는다면, 막상 그 상황이 닥쳤을 때 우리는 이미 상당히 심한 상처를 입게 될 수 있다. 딸을 키우면서 겪을 수 있는 문제 상황들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딸은 단 한 순간도 잃을 수 없는, 잃어서도 안 되는 존재다.
많은 딸 아빠가 현재 가지고 있는 고민은 대부분 딸과의 소통, 놀이, 그리고 애착 형성에 관한 것이다. 그것들은 물론 육아하는 데 있어 딸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필수 요소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은 단지 아빠 육아의 목표를 이루는 필수 과정이며 시작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종종 딸의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며 잘 놀아주는 것만으로 자신의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아빠들이 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아빠는 딸이 커감에 따라 딸의 미래를 준비해주기 위함이라는 명목하에 자칫 비싼 학원비와 과외비를 버는 ‘바깥 일’에 더욱더 매진하게 될 수 있다.
딸은 성장하는 동안 자신의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본질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려는 수많은 대중문화, 외모 지상주의, 스마트기기 등등과 힘든 싸움을 벌이게 된다. 그리고 언젠가는 지금 아빠가 살아내고 있는 똑같은 정글 속으로 혼자 걸어 들어가야 한다. 우리가 경험했던 것처럼 우리의 딸들 역시, 때로는 몹시 힘든 시기를 보내며 더는 버티기 힘들다고 느끼게 될 때가 분명히 올 것이다. 그때마다 아빠는 딸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언제라도 힘들 때 아무런 부담 없이 와서 가장 편안한 모습으로 기대어 쉴 수 있는 베이스캠프가 되어야 한다. 딸을 전적으로 공감해줄 수 있는 건 어쩌면 같은 여성인 엄마가 더 잘할지 모르지만, 비바람이 몰아치는 세상으로부터 딸을 지킬 수 있는 건 아빠의 묵직한 따스함이다.
“금방 괜찮아질 거야. 누가 뭐라 해도 아빠에게 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