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아귀찜

지선

by 오늘도 나마스떼

오늘은 또 어떤 이야기로 운을 띄울까 싶었는데 첫 문장이 잘 써지지가 않더라고요. 그럴 때면 세 분이 보내주신 편지를 읽고 또 읽고 한없이 반복하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떠올리는 편입니다.


[학창 시절 나를 키운 건 엄마의 밥이었지만, 직장인인 저를 키우고 유지하게 한 팔 할은 소성로 맛집들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합니다.]


나현 님이 쓰신 문장을 읽으니 문득 얼마 전 인천에 왔다 가신 엄마와의 일이 떠올랐습니다. 저의 경우에도 태어나 약 17년간은 엄마가 해주시는 따뜻한 밥을 먹고살았고 그 후로 20년간은 다양한 곳에서 어찌어찌 때우듯이 먹는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신체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세포는 약 1년을 주기로 새롭게 교체된다고 하는데요. 몸의 부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20년쯤 시간이 흐르면, 전체 세포 중 약 2~3%를 제외한 거의 모든 세포가 바뀌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엄마 밥을 재료로 지어진 ‘나’의 몸은 겨우 몇 퍼센트 밖에 남아 있지 않겠군.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가 밥을 해주시던 때의 ‘나’와 현재의 ‘나’는 많이 달라졌을 텐데, 엄마와 갈등 없이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들기도 했지요.


여하간 늘 바쁘게 일을 하시느라 딸이 사는 집에 한 번 올 시간도 없던 엄마가 회사를 퇴직하고 7년 만에 인천을 방문하게 되었는데요, 딱 보름을 머물다가 가셨습니다. 저는 성인이 된 후 엄마와 같이 그렇게 오랜 시간을 지내본 일이 없어서 맛있는 것을 사드리고 싶어도 엄마가 무엇을 좋아하셨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더라고요.


게다가 엄마 입장에서는 딸이 괜히 돈 쓰는 것이 싫으셨던 모양인지 그 먼 시골에서부터(대중교통으로 약 6~7시간 거리) 김치를 담가 오셨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고 참 여러 가지 감정들이 들었습니다.




요가 강사라는 일이 보통 마지막 타임을 마치면 저녁 10시, 집에 가면 11시쯤이 되는데요, 저는 그때서야 혼자 대충 냉동했던 밥을 데워 먹고 잠드는 편입니다.


그런데 해가 떨어지면 주무시는 시골 엄마가 매일, 그 시간까지 감기는 눈을 비비며, 밥을 차려 놓고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 밥상을 받는 느낌이 정말 분에 넘치게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제가 밥을 먹는 동안 엄마는 옆에 앉아서 하루 종일 낯선 동네 둘러본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대부분이 "무슨무슨 식재료는 A마트가 싸고, 어떤 어떤 식재료는 B야채 가게가 더 싸다."(제가 평생 마트에서 사보지 않은 식재료들이라 이름도 기억이 잘 안 나네요)와 같은 이야기였는데, 그러면서도 쉬지 않고 제가 다음 입에 먹을 반찬을 지시해 주셨죠. "저것도 먹어봐라" 저걸 먹고 있으면 "이것도 먹어봐라" 이런 식으로 한 템포씩 계속 앞서 지휘를 하시더라고요. 저는 그 성격 급한 밥상 마에스트라의 충실한 단원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했습니다.


당시 서울에서 하는 요가 TTC 기간이 겹쳐서 주말에도 아침부터 밤까지 밖에 나가있다 보니 엄마가 계시는 동안 맛있는 음식을 몇 번 사드리지 못했어요, 그렇게 함께하는 마지막 날 밤에도 늦게 귀가해서 대부분의 식당이 문을 닫은 상태라 어플로 아귀찜을 시켜드리게 되었는데요. 배달 음식을 드시게 해야 하는 마음이 참 편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웬걸, 엄마가 너무 맛있게 잘 드시지 뭐예요. 저도 현아 님처럼 부모님의 입에 밥 들어가는 모습이 이렇게 예쁠 수가 있나 싶어서 그 모습을 마음 한 곳에 깊이 새겨두듯이 바라보았습니다. 부모님이 나이가 들면, 서로의 역할이 바뀌어, 나도 모르게 부모님을 자식처럼 바라보게 되는 걸까? 그런 생각도 스쳤지요.


그런 생각 중에 엄마가 갑자기 "내가 아귀찜 먹고 싶었던 거 어떻게 알았어?"라고 물으시더라고요. 며칠 동안 겸사겸사 동네를 둘러보면서 [아귀찜]이라고 쓰여 있는 간판을 찾으셨대요. '딸이 너무 바쁘니까 같은 동네에 있으면 먹자고 하고, 거리가 너무 멀리 있으면 말하지 말아야지.' 하셨던 거예요. 엄마가 나를 생각하는 마음을 따라가려면 아직은 멀었구나..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이 보름간의 식사시간은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름간 먹었던 엄마 밥은 단순히 에너지원에 그치지 않고, 저의 몸을 구성하는 좋은 재료가 되어 신체에서도 가장 늦게 교체되는 곳(?)에 자리 잡았으면 좋겠어요.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내가 먹는 음식이 곧 나다"라고 말했고, 요가 경전에서도 음식이 수행과 마음의 상태를 좌우한다고 늘 강조합니다.


깨끗한 음식을 먹고 어느 정도 절제하는 것을 미덕으로 보는 것은 맞지만, 나현 님이 배고픈 상태에서 수련을 하다가 음식 생각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닌 적이 있다고 하신 것처럼, 저도 그런 경험이 왕왕 자주 있고, 동료 선생님 중에는 집에 가서 삼겹살을 먹을 생각에 무심코 아사나 이름을 '삼겹살'이라고 부른 적도 있답니다.


요즘은 먹고 싶은 음식을 참으며 스트레스받기보다 충분한 양을 맛있게 먹으려고 노력하는데요. 사실 오른쪽 네 번째 발가락이 3개월 전쯤에 골절되었는데 너무 많이 움직이는 탓인지 잘 붙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빨리 나으려고 음식을 잘 먹고 있어요. 병원에 갈 때마다 차도가 없어서 의사 선생님께 굉장히 혼나다 보니, 최대한 움직이지 않으려고 달리기도 못하고, 깊은 요가 수련도 못하고, 겨우 요가 수업을 이어나갈 정도의 움직임 정도만 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요즘 컨트롤 되지 않는 감정들로, 살짝 감정 과잉의 상태로 지내고 있어요.


그런 상태에서 다능 선생님께서 “오랫동안 그려왔던 일이 있으실까요?”라고 물으시니 약간은 울컥하는 감정이 들었습니다. 무엇인가를 그려왔던 일이 너무나 까마득히 오래전 이야기 같아서 내가 무엇을 그렸지? 한참 생각하게 되었거든요.


요가를 처음 시작했을 때 저는 시르사아사나(머리서기)를 멋지게 하는 내 모습을 그리며 수련에 몰두하기도 했고, 하누만 아사나나, 사마코나 아사나처럼 다리를 정말 끝내주게 찢는 모습을 그리기도 했어요. 지금은 핸드스탠드를 가뿐히 하는 내 모습을 그리기고 하고요, 중단기적인 목표에서 내가 하고 싶은 아사나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을 그려보는 것은 정말 좋은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다능 선생님이 말씀하신 ‘그리다 ‘는 그 이상은 넘어선 질문이시겠죠?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제가 엄청나게 묵직해 보이는 책상에 앉아서 클래식한 타자기를 두드리는 모습을 자주 그렸어요. 그 후 시간이 지나서는 분위기 좋은 카페에 앉아서 비싼 노트북을 펴 들고 열심히 키보드를 두들기는 꿈을 그리기도 했지요. 그 상상 속의 저는 대체 무엇을 쓰고 있었을까요? 사실 내 안에서 튀어나가고 싶은 어마어마한 이야기들이 있어서 라기보다는 그 모습들이 왠지 멋지게 느껴졌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글을 꾸준히 쓰는 일들은 늘 먹고사는 일에 밀려서 다이어트처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하고 있지는 않는 상태‘로 남아있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이렇게 제 이야기를 무조건 읽어줘야 하는 세분의 독자이자 동료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정말 좋답니다!


그렇다면 나현 님!


'이 요가 아사나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은 좀 멋지겠는 걸?' 같은 생각을 하게 만든 아사나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사진 : 이지선作, 엄마와 장독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