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아
와.. 나현 님은 정말 제가 그때그때마다 이야기하고 싶었던 주제들과 관련된 물음을 던지는 놀라운 재주가 있는 것 같아요.
안 그래도 며칠 전에 요가를 하고 나서 다능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감기가 걸린 상태에서 요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약 한 달 만에 요가를 하면서 느꼈던 놀라운 경험들을 이야기했었는데요. 나현 님이 딱 그때의 느낌을 물어봐서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평소라면 몸 상태도 좋지 않고 호흡도 힘들고, 또 요가를 하고 나서 컨디션이 악화되어서 다음 날 일정에 영향이 갈까 봐 웬만해서는 감기에 걸린 몸을 이끌고 요가를 하러 가지는 않는데요. 이번에는 요가를 오랫동안 하지 못해서 몸 상태가 더 안 좋아지는 것 같은 본능적인 느낌에 감기가 다 낫지 않은 몸으로 용기를 내서 요가를 하러 갔어요.
오랜만에 하러 가서 그랬는지, 물 만난 물고기마냥 기분이 좋고 신이 났습니다. 아직 감기 기운이 있어서 땀은 평소보다 배는 더 낫지만, 그래서인지 몸이 더 개운해지는 느낌이었어요. 아사나 중간중간에 기침이 계속 나긴 했지만, 몸에서는 노폐물이 섞여있을 땀이 주룩주룩 흘렀고, 그 개운한 느낌이 엄청 좋았습니다.
젖은 수건을 쥐어짜듯이 몸을 비틀고 쥐어짜면서 땀을 뚝뚝 떨구어 내었는데, 몸은 숙여지고 서로 접혀지지만 몸과 몸 사이 공간은 점점 더 넓어지는 느낌이었어요.
몸과 몸 사이의 공간이 점점 넓어지듯, 수련하는 1시간 속의 모든 순간순간들도 점점 더 깊어지고 넓어져서 무한대로 확장되는 느낌을 받으며 오로지 ‘요가와 나’만 존재하는 듯한 순간의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무 잡념도 걱정도 불안도 들지 않고, 그저 그 찰나의 순간에 몰입된 ‘진공상태에서 그저 존재하고 있는 느낌’이었는데, 최근에 이런 느낌을 받은 건 처음인 것 같아요.
감기 중에 요가를 했다고 몸 상태가 안 좋아지기는커녕 마지막 사바아사나를 마치고 난 몸은 아주 개운하게 다시 태어난 느낌이었고, 아쉬운 1시간이 너무나도 후딱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 후 그다음 주에도 그런 느낌들을 기대하며 또 요가를 하러 갔는데요. 이번에는 좀 다른 무한대의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날은 선생님이 해주시는 ‘10초, 9초, 8초....’ 카운팅이 영원처럼 느껴졌어요. 속으로 ‘아.. 포기할까.. 그만할까..’를 생각하고 갈등하면서 버티는 순간이 무한대로 길어지는 느낌이었지 뭐예요.
이것이 ‘수련’일까 아니면 ‘시련’일까... 하는 마음으로 힘들고도 힘들게 아사나를 이어 나갔고, 아쉽게도 이전의 그 몰입의 느낌을 재차 느껴보지 못하고 수업이 끝이 났습니다.
같은 1시간인데도 어쩜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요.
감기 걸린 날 했던 요가수련처럼 매 순간을 몰입해서 밀도 있게 충분히 만끽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간혹 감기가 걸려 몸상태가 좋지 않을 때처럼 힘들고 지치고 혹은 불안하고 두렵고 슬픈 날도 있지만 그것 또한 저항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주어지는 순간에 더 몰입해서 깊고 밀도 있게 경험하면서 헤쳐 나가면, 의외로 그 순간은 어느새 후딱 지나가 버리고 미련 없이 개운한 상태가 찾아오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최근에 어디선가 “고통이 없다면, 죽은 것과 마찬가지다.”라는 말을 지나가듯 들었는데요.
생각해 보면 “살아있기에” 상처도 나고 아픔도 느끼고, 괴로움이나 고통도 느끼는 거잖아요. 시체는 아픔이나 고통을 느끼지 못하니까요.
그래서 선생님의 ‘5초, 4초, 3초..’ 카운팅이 무한처럼 느껴지고 괴롭게 느껴지더라도, ‘아! 이런 고통이 느껴지는 걸 보니, 내가 아주 잘 살아있구나.’하며 버텨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쓰다 보니, 잔인하듯 강렬한 아사나들을 아주 고요하고 침착하고 평화롭게 선보이는 다능 선생님의 수업에서 매 순간 개구쟁이 같이 ‘웃는 표정’으로 아사나를 하던 나현 님이 생각나네요. 나현 님은 이미 ‘살아있음으로 인해 느껴지는 아사나의 찐한 고통을 유쾌한 낙천성으로 잘 소화해 내는 사람이었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능님~
다능님은 언제 가장 ‘살아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드세요?
[사진 : 황현아 作, 사즉생 생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