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능
'살아있기에 상처도 나고 아픔도 느끼더라도', 그래도 그 상처가 나에게 자주 오지 않기를 늘 바래요. 물론 상처가 나고 아물고를 반복하면서 내성이 생겼지만 항상 상처는 아프게 다가오는 것 같아서요.
살아있는 것 같다 느낄때가 저에겐 늘 요가였는데요.
하타요가요.
불과 6개월 전만해도 매 요가수련이 저에게 짜릿하고 큰 자극을 주는 존재였는데 요즘 저의 요가수련은 당연한 것이 되어버린 것 같아요. 근데 이 기분이 전 좋아요. 당연한 것 이라는게 이제는 무딜 만큼 요가를 많이 해오고 있구나란 생각도 들구요. 이런 잔잔함이 좋은 것 같아요.
그리고 예전 저의 새벽수련, 심화하타수련 여정이 생각났어요. 우르드바 8분 부동, 부장가사나 10-20분 부동, 파드마 자세 부동, 짜릿하고 저릿할 수 밖에 없는 감각이 늘 찾아오는 수련이였는데 밥이라도 잘못 먹고 가면 체하기도 하고 또 필라테스 센터와 걸어서 갈만한 거리에 있어서 늘 수업 전, 중간에 가서 수련을 하곤 했었는데요. 힘들지만 제일 행복했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 안에서 선생님께서 얘기해주시는 명상적인 말씀들이 그때도 제 마음을 저릿저릿하게 해주셨던 기억도 있어요.
최근 다시 심화반 수련을 시작했어요. 물론 90분이란 수련을 계속 이어오고 있었지만, 부동의 시간도 많이 갖고 정말 강사선생님만 모여서 하는 수련을 시작했어요. 예전만큼의 저릿저릿한 감각은 크게 느끼지 못했지만 행복하더라구요. 수련하면서 예전엔 언제쯤 내가 이 아사나를 할 수 있을까의 마음이 먼저였다면 지금은 '언젠가 닿겠지, 고요한 숨 안에서 머무는 이 시간이 소중하다.' 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좋아요.
오늘은 수련 중에 선생님께서 침묵의 힘을 기르는 것이 하타라고 생각한다 하시더라구요. 그리고 하타요가의 침묵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에 대해서 얘기를 나눴는데 제 답은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였어요.
저도 제 수업안에서는 많은 이야기를 전달하진 않는 것 같아요. 정말 필요하다 느끼는 이야기만 꺼내고 소리도 작은 편이기에 제 수업이 불편하신 분들도 있을 것이라 늘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이리 전달하게 되는 이유도 하타요가가 저에겐 고요하게 나와 머무는 시간이라 생각하고 있어서 였던 것 같아요.
한편으론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는 꾸준히 수련해왔기에 몸을 통해 느끼는 감각이 깨어 있는 편이고 어렸을적부터 감수성도 짙고 몸의 반절정도가 아파왔던 기간이 10년이 넘어서인지 몸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좀 더 쉽게 다가올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제가 몸으로 마음으로 느끼는 부분들을 더 전달해드려야하는데, '나와 같이 이들도 느끼고 있겠지.' 하고 놓쳤던 부분도 있고, '이 전달들이 이 사람들에게 와닿을까?' 라는 생각에 늘 말을 아끼게 되는 것도 있었어요. 적당한 지점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저에게 요가는 아픈 제 몸을 돌보고 감성이 짙은 저를 다독여 주고 조용하고 내성적인 저를 제 내면안에서 꿈틀꿈틀 움직이게 하는 힘이거든요.
현아님의 물음에 '살아있다.'라고 느끼는 건 여전히 저에게 요가이고 훗날에도 그럴 거라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또 하나는 언어인데요.
제가 문장의 해석력, 언변, 다독 그런 능력은 없지만요.
책에서 주는 구절들이 저에게 요가처럼 저릿저릿하게 느껴질때가 많아요.
책을 읽으면 마음이 풍요로워지고 삶도 풍성해진다고 하잖아요.
그런 이로움을 크게 느끼는 것 같아요.
책을 많이 읽어 사리가 밝고 그런 것보단 감성이 짙어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어쩌면 그게 저의 장점이라면, 이런 감성과 요가를 대하는 마음들이 제 수업안에서 저의 요가도반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요.
또, 요가와 언어가 제 삶에 없었다면 제가 지금처럼 삶에 감사하고 희망하고 사랑하며 살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구요.
“저라는 사람이 끊임없이 무한한 가능성에 설레하고 제가 사랑하는 일을 하며 늘 제 삶에 희망을 갖고 살아가고 싶어요.”
희망을 갖다.
이 말이 참 좋아요.
지선선생님, 선생님은 요가 외적으로 하고 있을 때 행복하게 느끼는 것들이 있으실까요?
운동을 제외하고 어떤 것이 있으실지 궁금해요.
[사진 : 김다능 作, 장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