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들 꽃에게도 마음을 몽땅 주고 싶다.

지선

by 오늘도 나마스떼

5월의 바람에는 꽃향기가 잔뜩 실려 있는 것 같습니다. 화려하게 피었다가 퇴장해 버린 벚꽃으로 인해 허전해진 마음 한 구석을 눈송이 같은 꽃을 가득 피워낸 이팝나무가 위로해 주는 느낌이 들어요.


5월은 계절의 여왕이라고 불리기도 할 만큼 움직이기에도 가장 좋은 날씨이기 때문일까요? 주변을 더 많이 돌보고 챙기라는 의미에서인지 유독 마음 써야 할 기념일들이 모여 있는 달인 것 같습니다.


나현 님의 어린이날 이야기를 읽으며 저도 어린이였던 저의 모습을 떠올려 봤습니다. 1990년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저는 종종 살아가는 게 아프고 고통스럽다고 느끼곤 했습니다. 치아 중에 하나정도는 늘 흔들리고 있어서 밥 먹을 때 찌릿하고, 성장통이 심해 초저녁부터 뼈마디가 쑤셔 잠들지 못하는 날들이 많았고, 학교에서는 철마다 예방 접종 한다고 강당이나 운동장에 학생들을 줄 세워 기다리게 했는데 저는 최대한 뒷줄에 서서 벌벌 떨었습니다. 앞줄이 짧아질 때마다 명줄이 같이 줄어드는 기분이었죠.


주사를 정말 극도로 무서워하는 저는 화장실에 간다고 하고 도망을 가기도 했답니다... 전교에서 딱 두 명 도망갔는데 나머지 한 명은 읍내에서 동물병원을 하는 집 아들이었어요. 그 당시는 동물병원이라는 말보다 가축병원이라고 부르거나, 소 주사 놔주는 집이라고 불렀는데, 그 친구는 우리 반에서 주사기에 가장 익숙한 사람일 텐데 그렇게까지 무서워한다는 것이 의아하면서도 둘이 같이 숨어서 눈빛 교환을 통해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도 주사 바늘이 무섭긴 하지만 예전처럼 병적으로 두려워하지는 않습니다. 이 주사 공포증이 많이 나아진 계기가 분명히 있는데요, 고등학생 때였어요. 같은 반 친구 한 명이, 유난히 주사를 무서워하고, 신체적인 고통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고통을 느끼는 건 짜릿하지 않아? 고통을 느낄 때 난 살아 있다고 느껴.”


자칫하면 무섭게 해석될 수도 있는 말이지만, 그 순간 저는 묘하게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고통을 두려움이 아니라 생의 증거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그 시선을 당시 고등학생이 가질 수 있는 것인지 지금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 말을 듣고 나서부터는 주사를 맞을 때마다 그 친구의 말이 떠오르곤 했고,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씩 안정되더라고요.


인간은 보통 ‘살아 있다’라는 감정이 들 때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살아 있음을 가장 빠르게 느끼는 방법은 신체 활동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운동과 요가를 할 때를 제외하고 언제 행복을 느끼는지 물으신 다능 선생님의 질문에 머리가 조금 멍해지기도 했습니다.

내가 최근에 운동을 제외하고 언제 살아 있다고 느꼈지?


누군가에게서 빌린 책을 읽다가 마음에 와닿는 구절을 발견했는데 그 문장에 마침 밑줄이 그어져 있을 때, 나와 비슷한 취향이 있는 사람이 존재하고, 그래서 내가 이 세상에 속해서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나현 님이 얼마 전 선물해 주신 [동경]이라는 책을 읽다가 좋은 구절을 발견해서 간직하려고 사진을 찍어두었는데, 저번 편지에서 제가 찍어놓은 사진과 똑같은 구절을 언급하셨을 때도, 현아 님이 순간이 무한대로 확장하며 ‘요가와 나‘만 존재하는 느낌을 받았고 고통과 살아있음의 관계에 대해 느꼈다고 하실 때도, 다능 선생님이 내성이 생겨도 상처는 항상 아프게 다가온다고 말씀하셨을 때도, 타인에게서 나를 발견하고 외롭지 않게 세상에 잘 속해서 살아있다고 느껴져 행복했습니다.




며칠 전, 스승의 날에는 제게 처음 요가를 가르쳐주신 원장님을 찾아뵙고 같이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요, 누군가에게는 스승의 날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날일수도 있을 텐데, ‘나는 매일 반복되는 날들 중에서 이렇게 잠시 멈춰서 기념할 수 있는 날이 있구나.’ 그래서 스승님의 존재만으로도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가끔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잘 구분되지 않을 만큼 비슷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서 구름의 모양을 보고 날이 바뀌고 있음을 인지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수많은 날이 반복되는 인생에서 무의미가 의미로 바뀌는 순간들을 잘 포착해 보고, 그 순간들을 위해 과감히 에너지를 쓰고, 마음을 아끼지 않아야겠다 싶더라고요.


한 치의 낭비 없이 인생을 아주 효율적으로 잘 살고 있다고 느껴질 때, 마음도 시간도 돈도 아끼고 아껴서, 잘 채운 곳간 키를 손에 꽈악 쥐고 살고 있을 때를 경계해보려고 합니다.


길을 걷다가 풀숲에서 고양이를 발견하게 되는 순간, 남의 집 화단에 피어있는 꽃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순간이 오면 바삐 가던 걸음을 멈추고, 앞으로 다시 마주칠 기약이 없는 고양이에게도, 며칠이 지나면 시들어 사라질 꽃 한 송이에게도 저의 마음을 몽땅 다 줘 버리는 삶을 살아보자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요가 수행자는 모든 순간을 거룩하게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현재의 감각과 만남을 놓치지 않고 깨어 있는 것이 수련을 할 때의 마땅한 태도라고 하는데요, 삶을 살아가는데도 잘 적용해보고 싶어요.


순간에 나를 온전히 내어놓는 일은 조금 더 용기가 필요할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는 모든 행위가 세상의 어디론가는 닿는다는 깊은 믿음을 가져 보려 합니다.


나현 님은 일주일 중에 어떤 날이 가장 특별하게 느껴지시나요? 혹은 어떤 시간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구분해 주는 시간으로 느껴지기도 하는지 궁금합니다.



[사진 : 이지선 作, 이팝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