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현
지난 금요일에는 오후 10시까지 준비서면을 써서 제출한 후 귀가하자마자 짐을 챙겨 속초로 향했습니다. 밤안개와 어둠의 장막이 겹겹이 둘러싼 터널을 뚫고 숙소에 도착하니 새벽 1시 30분이었습니다.
서울 생활이 지리멸렬하여 속초고등학교로 이직하신 역사 선생님을 만나러 속초로 간 것이었는데요.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에서 역사 선생님과 마주하니 새로운 세계 앞에 당도한 기분이었습니다.
역사 선생님은 저의 고등학교 친구의 동료 선생님인데, 평소 이야기만 자주 듣다가 최근 속초로 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그동안의 호감과 호기심이 발동해 만날 약속을 정했던 것인데요.
만날 약속을 정하는 것은 잘하지만, 그 약속을 이행할 때가 다가오면 발생하는 갖가지 변수와 그땐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피곤한 마음이 불쑥 올라와 저에게 취소를 종용하곤 합니다. 호쾌하게 약속을 정했던 과거의 나와 피곤함을 덕지덕지 매달고 있는 현재의 내가 서로 다른 입장이 되어 언쟁을 하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미리 제출하였다면 좋았을 준비서면이지만, 마지막 제출 기한까지 완성하지 못해 울고 싶은 마음으로 야심한 시각까지 서면을 작성하고 있노라니 속초행이 무리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저의 동료 변호사님 사무실 직원을 뽑기 위해 면접관이 되어 지원자들을 만났는데요. 지원자들도 긴장되겠지만, 저 또한 지원자들의 많은 면모를 엿보기 위해 오가는 질문과 답변으로 복잡해진 머리로 면접에 응하였습니다.
단시간에 여러 명을 보니 개개인의 색깔이 좀 더 명확히 보였고, 전혀 다른 배경과 지식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다는 점은 제게 별개의 즐거움을 선사했습니다. 낯선 사람과 법률상담이 아닌 개방형 대화는 오랜만이어서였을까요.
약 30분가량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질문을 주고받다 보면 개개인의 가치관과 성격이 묻어 나오는 답변을 듣게 되는데요. 그 대답을 통해 유추되는 직무 적합성과는 별개로 저와는 세대가 다른 친구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주류 혹은 상식이라고 생각했던 생활양식은, 단지 제가 추구하는 방식일 뿐이었고, 한두 가지 방식만을 겨우 알고 생존한 중간 세대가 되어버린 느낌이었습니다. 윗세대의 생활양식을 익히기에 급급했던 시간이 지나 어느새 아랫세대가 생겼지만, 오랫동안 아랫세대 역할을 도맡아 했던지라 새로운 아랫세대와의 역할 바꾸기는 신생 사조의 정물화처럼 보였습니다.
결국 가장 직무 적합성이 높은 지원자가 합격 통보를 받았고, 면접을 봤다는 이유로 저도 꼽사리 껴서 양 주임의 입사환영식을 함께 하였습니다. 그리고 양 주임을 통해 생생한 면접 후기를 듣게 되었는데요. 면접 질문보다는 소개팅 질문에 가까웠다는 답변에 박장대소를 하였는데요.
소규모 변호사 사무실에서는 한 명의 행정 직원이 베이스캠프와 같은 역할을 맡고 있기에 서로의 호흡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소개팅하는 것과 면접이 별반 다르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습니다.
면접 당시 양 주임의 취미가 영화 보는 것이라는 답변에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재차 질문을 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인셉션’을 답해 반가운 마음에 면접의 경로를 이탈하여 ‘인셉션’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나누기도 했었는데요(당시 옆자리에 앉은 변호사님의 눈총을 잠시 느꼈으나, 아랑곳하지 않고 대화를 했습니다).
매일 밤 셀프 인셉션을 위해 갖가지 상상을 하다가 잠드는 제게 꿈에 대해 가장 화려하면서도 진지한 상상으로 인도한 영화가 ‘인셉션’이었으니, 이 영화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저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면접관의 본분을 망각하였던 것인데요. 영화 ‘인셉션’ 덕후의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훌쩍 흘러가 있었습니다.
매일 6~8시간 동안 머무는 꿈속은 공인받은 도피처로, 요즈음의 저는 무엇을 하는 상상보다는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상상을 더 많이 하게 되어 좀 씁쓸하긴 한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뭐래도 꿈에서만큼은 온전한 자유의지를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긴 하루의 끝에 만나는 잠이 큰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속초에서 보낸 하룻밤 동안은 꿈속에서조차 속초에 좀 더 오래 머물기를 소망했습니다. 앞으로는 설악산 울산바위가 있고, 뒤로는 동해 바다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 풍경 속에서 그 무엇도 재촉하지 않는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는 제 자신이 좀 더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속초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매일 저녁 부모님과 함께 저녁을 먹고, 학업 스트레스가 크지 않아 자살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역사 선생님을 통해 들었는데요. 속초에서라면 무연한 마음으로 클 수 있는 걸까요.
그러나 설악산 울산바위와 동해 바다가 눈앞에 없더라도 내가 발 딛고 선 이 세계 속에서 무연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매트 위에서 재촉하지 않는 마음을 연습하는 시간이 요가 수련의 시간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김영하의 에세이 <단 한 번의 삶>에서도 “요가는 신체운동이라기보다 마음과 생각의 연습에 가까운 것 같다. 요가를 한다는 것은 날마다 자신에게 이렇게 일깨우는 일과 같다. 고통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익숙해질 수는 있다. 그리고 모든 고통에는 끝이 있다. 요가 수업은 스스로 고통으로 걸어 들어갔다가, 잠깐 죽었다가, 문득 눈을 뜨고 다시 밖으로 걸어 나오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다.”라고 요가를 표현하기도 했는데요.
요가와의 접점이 거의 없어 보였던 소설가 김영하의 글에서 팝업처럼 요가에 대한 글이 나와 놀람 반, 기쁨 반으로 에세이를 순식간에 읽어 내려갔습니다.
이제 현아 언니의 물음에 답할 시간이 되었는데요. 세계의 처음과 끝인 사람을 만나는 일, 그것이 가장 뿌듯하고 보람된 일이고 제가 포기할 수 없는 일인데요. 이를 좀 더 잘하기 위해 매트 위에서 재촉하지 않는 마음을 연습 중이기도 합니다.
지선 선생님은 요즘 가장 뿌듯하고 보람된 일은 어떤 일이신가요?
현아 언니의 질문을 다시 해봅니다.
[사진 : 안나현 作, Noth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