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를 설득하는 것의 어려움

조언의 어려움을 말하다 – 한비자

연구센터장에게 과제 일정을 수립해 보고할 때였다.


“김팀장 일정이 너무 늘어진다. 이 일정으로 하면 과제를 진행하는 의미가 없어져. 상업화까지 좀 더 당겨야겠어.”


“양산라인 건설 전에 파일럿 검증을 해야 합니다. 파일럿 건설에만 몇 년이 소요되고 양산라인 건설은 그 이상 걸립니다.”


“알지. 아는데. 이 일정으로 하면 과제 자체가 엎어지는 수가 있어.”


나도 센터장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알기에 마냥 반대할 수도 없었다. 모든 일이라는 것은 알맞은 때라는 것이 있다. 지금은 맞던 것이 나중에는 아니게 되고 지금은 틀린 것이 나중에는 맞는 경우도 있다. 결국 그 시간 안에 목표지점에 도달해 있어야 한다.


“알겠습니다. 다시 한번 짜보겠습니다.”

지금 더 이야기 해봐야 어차피 설득은 불가하다. 결국 제 3의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상사를 설득하는 것 더 나아가 거슬리는 직언을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한비자에는 “세난(說難)” 즉 “설득의 어려움” 이라는 챕터가 따로 있다. 군주 즉 상사를 설득하는 것이 왜 어려운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설득할 수 있는지를 잘 정리해서 설명하고 있다.


“군주에 대하여 자기의 의견을 말하고 그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일을 알고 있는 그대로 설명하여 상대를 설득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아닙니다. 또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분명히 전달하기가 어렵다는 것도 아닙니다. 또 종횡무진 자유롭게 고금의 예를 든다든가 여러 가지 사실을 든다든가 하여 자기 의견을 전부 말하기 어렵다는 것도 아닙니다.

의견을 말함에 있어 상대가 생각하는 바를 간파하고 자기의 의견을 그것에 맞추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한비자 (홍신사상신서, 성동호 역, p78)


상사를 설득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설득의 스킬도 내용의 논리성도 나의 유능함도 아니다. 바로 상사가 어떤 부분을 중요하게 여기는 가를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상사가 원하는 것과 내가 제시한 답변이 다르다면 아무리 좋은 의견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밖에 없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과연 상사와 나 사이에 신뢰가 얼마나 쌓여 있는가 이다. 그간 내가 한말을 얼마나 잘 지켜왔는가? 실적이 있는가? 그래서 상대방이 내가 하는 말을 신뢰할 만하다고 생각하는가? 신뢰가 높다면 약간의 문제가 있거나 의구심이 있더라도 내 의견에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신뢰가 쌓이지 않았다면 아무리 논리적이고 많은 근거자료가 있더라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자신에게 반기를 든다고 생각하여 언짢아 할 수도 있다.


“신하는 신임을 받은 뒤에 임금에게 간언해야 할 것이다. 신임을 얻기 전에 간언하면 임금은 자기를 비방한다고 여기게 된다.”

- 논어 (민음사, 동양고전연구회 역주, p409)


결국 내가 어느 정도로 설득할 만한 논리를 준비해야 하는지 또 어느 정도까지 설득을 하고 어느 정도에서 포기해야 하는지를 잘 정해야 한다. 그 아슬아슬한 선을 넘는 순간 아무리 공동의 목표와 이익을 위한 의견이라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심지어 해를 입을 수도 있다.


“간언을 드리거나 담론을 펴고자 하는 사람은 군주로부터 자신이 총애를 받는가 미움을 받는가를 살펴서 확인한 뒤에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무릇 용(龍)이란 짐승은 길들여서 탈 수 있다. 그런데 그 턱밑에 직경 한자 정도의 거꾸로 박힌 비늘이 있다. 만일 사람이 그것을 저촉하면 반드시 그 사람을 죽이고 만다. 군주에게도 마찬가지로 역린 (逆鱗)이란 것이 있다. 설득하는 자가 능히 군주의 역린을 저촉하지 않으면 그 설득을 기대할 만하다.”

- 한비자1, (한길그레이트북스, 이운구 옮김, p197)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역린이 한비자 세난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상사를 설득할 때, 간언할 때 넘지 말아야 할 선 그것이 역린이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상사가 진정 원하는 것, 그리고 상사와 나의 신뢰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어느 선까지 설득할 수 있을까를 정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싸가지 없는 사람, 업무능력이 떨어지는 사람, 말귀를 못 알아 듣는 사람 등등 결코 회사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적당히 주제 파악을 하고 지혜롭게 행동해야 한다. 내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파악했다면 우리가 설득하는 것은 거기까지이다. 그것이 내 팀과 나를 보존하는 지혜다. 예스맨이 되라는 것이 아니다. 역린을 건드리지 않을 범위 내에서 가능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 상사가 원했던 것은 상업화까지의 일정을 단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절차를 다 따르면 상사가 원하는 정도로 단축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 여기서 일정 단축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역린을 건드리는 일이다. 일단 제일 중요한 것은 일정 단축 이것은 협상 불가능한 부분이다. 결국 상업화를 짧은 시간 내에 했다라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내 상사가 그 위를 설득하기 위한 명분이다.

결국 나는 파일럿의 규모를 키워서 준양산으로 진행하여 상업화 일정을 당기겠다는 대안을 내놓았다. 중요한 것은 상업화라는 타이틀이지 양산의 규모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 상사는 원하는 시간 내에 상업화를 이루었다는 명분을 가질 수 있고 나는 무리한 일정을 세워 거짓말이나 하는 무능한 사람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절충안을 찾은 것이다.

상사가 원하는 가장 중요한 것 그것은 바뀌지 않는다.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바뀌지 않는 것에 힘 빼지 말고, 꼭 바꾸어야 한다면 차라리 내가 물러나는 것 그것이 지혜로운 처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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