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이제 꼰대가 되어 가는가? - 논어
“이번에 본부에 보고하는 자료 수정이 필요할 것 같아요.”
연구소 스테프 조직의 L책임이 전화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어떤 부분을 수정해야 할까요?”
보고 자료 수정이야 비일비재한 일. 차라리 수정 없이 가는 경우가 이상한 것이니 가볍게 생각했다. 그런데 수정하라는 부분 중 꽤 중요한 성과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 부분을 간략히 하거나 빼자는 것이었다.
“L책임. 아시다시피 이거 올해 저희가 진행한 중요한 성과 중 하나입니다.”
난 거의 5분 가까이 왜 이 부분을 넣었고 왜 중요한 것인지를 설명했다.
“무슨 말씀인지 알아요. 하지만 본부에서는 다르게 생각할 것 같아요. 본부 연구소에서 예전에 검토할 때 이 부분에 이슈가 있었고 비슷한 경로를 거쳐서 수정을 했던 이력이 있어요. 본부에서는 왜 다 아는 내용 이미 경험했던 것을 또 반복하나 생각할 겁니다. 그러니 성과로 생각하기 보다는 무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나는 울컥 올라오는 분노를 죽이며 그때와 지금의 경우가 많이 다르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그들과 다른 방식을 갈수 밖에 없었고 거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었기에 우리 팀원들이 거의 반년이상 엄청난 고생을 해가면서 해결해 나갔다고 설명을 했다. 중간 중간 올라오는 분노를 죽이면서 이야기 한다고 했지만 전화 너머에서 L책임이 눈치채지 못했을리 없다.
내가 화가 난 이유는 이러한 사정을 L책임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편이다. 그래서 숨기는 것이 없어 서로의 사정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내편으로 생각한 사람이 이렇게 치고 들어오니 섭섭함이 분노로 바뀐 것이다. 정말 놀라운 것은 내가 그렇게 노력하면서도 흥분을 감출 수 없었음에도 상대편인 L책임은 차분한 목소리로 나를 설득하고 있었다. 덕분에 저세상으로 날아가려고 하는 나의 이성을 간신히 간신히 잡아내며 논의를 계속할 수 있었다. 침착한 L책임의 대응으로 나도 서서히 감정을 가라앉힐 수 있었고 결국 L책임의 제안대로 자료를 수정하기로 했다.
전화를 끊고 문득 L책임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흥분한 사람과 통화를 하면서 공격적인 선배의 말들을 그렇게 조용히 침착하게 설득을 할 수 있을까. 차라리 내가 후배고 L책임이 선배인 듯한 생각마저 들었다. 나의 미숙함에 또 한번 부끄러움이 밀려 왔다.
- 논어 (민음사, 동양고전연구회 역주, p265)
누군가에게 충고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선의에서 잘되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지만 상대방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군가 나에게 조언을 한다면 그 사람은 꽤 큰 결심을 하고 하는 것이다. 나에게 미움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각오하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항상 열린 마음으로 충고를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하지만 그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특히 그 대상이 동료나 후배라면.
우리는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토대로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이러한 생각이 켜켜이 쌓여 더 이상 옮기기 힘든 퇴적물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렇다 한두번 삽질로는 옮기기 어렵다. 내 까마득한 상사 그러니까 CEO쯤이 나에게 바꾸라고 하면 억지로 삽질을 할 의향은 있다. 그러나 나보다 경험이 일천한 후배가 나에게 이야기 한다면 어떨까? 아마도 후배의 생각을 바꾸려고 들 것이다.
‘당신이 잘 몰라서 그러는데.’ ‘무슨말을 하는지는 알겠는데…’ ‘아마 내 말이 맞을걸?’ 등등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다. 대부분 회사생활 하면서 한번씩 들어봤을 이야기. 요즘 많이 회자되는 ‘라떼’를 외치는 ‘꼰대’의 대사들이다. 최근 이곳 저곳에서 들려오는 꼰대들의 괴담에 또래 친구들과 만나면 서로를 꼰대로 지목하곤 한다. 그래서 꼰대 소리 안들으려고 많은 노력을 하지만 그간 내가 살아온 경험과 생각들을 앞세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므로 이런 나를 잘 아는 사람. 나의 생각과 성향을 잘 알면서도 나에게 조언을 하는 동료, 후배는 정말 소중한 존재이다. 아니 회사생활에서 나를 살려주는 보석 같은 존재들이다.
진(陳)나라 사패(司敗)가 공자를 만난 후 공자의 언행에 잘못이 있다고 공자의 제자 무마기(巫馬期)에게 이야기 한다. 이를 전해들은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논어 (범우사, 황병국 역, p103)
공자는 정녕 성인이다. 자신의 잘못을 지적해 주는 사람이 있어 행복하다니. 하지만 누구의 가르침도 겸허히 받아들이려는 이러한 자세가 그를 성인의 반열에 오르게 한 것일 것이다.
그럼 성인도 아닌 나 같은 범인(凡人)이 어떻게 하면 남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냥 겸손해야 한다. 나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아니 타인과 내 생각이 충돌할 때 먼저 내 생각에 어떤 오류가 있는 것이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항상 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제일 자연스럽다. 그러니 나와 다른 시점의 생각과 부딪히면 먼저 그 시점으로 이동을 해보아야 한다. 자연스러운 것이 실제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느껴야 한다.
그럼에도 나에게 주어지는 따끔한 충고와 조언은 언제나 듣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