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원들이 편하게 휴가를 쓰게 하려면

진정 남이 바라는 것을 아는가? – 장자

우리 회사에는 권장휴무라는 제도가 있다. 매년 초에 회사에서 지정을 하는데 보통 휴일 사이에 끼어있는 샌드위치데이나 매월 2째주 금요일 등으로 보통 한달에 한번 이상을 휴가로 쓰는 것을 권장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임원들은 솔선수범하여 이날 회사를 나오지 않는다. 물론 말그대로 권장이기 때문에 꼭 쉬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 제도는 직원들이 눈치보지 말고 편하게 휴가를 쓰라는 취지에서 생겨난 제도로 실제로 나부터도 환영한 제도였다. 휴가를 쓰고 싶어도 언제 업무관련 전화가 올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실제 가족과 휴가를 갔을 때 업무전화 특히 상사의 전화를 받아서 대응하며 난감했던 적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다. 상사가 쉬고 있으니 업무 관련 전화가 올일 없고 회사 전체 권장 사항이니 내가 쉰다고 해서 뭐라 할 사람도 없다.


어느 월요일 아침 팀원들과 티타임을 갖던 중이었다. 그 주 금요일이 권장휴무로 지정되어 있기에 팀원들에게 지나가는 말로 물어보았다.


“이번주 금요일 권장휴무인데 나오는 사람 있나요? 저는 이번주 금요일에 쉴 예정입니다.”


내가 쉰다는 말을 해야 팀원들이 맘편히 휴가를 쓸 수 있을거라 생각해서 미리 언질을 준 것이다.

그런데 팀원들이 다 나온다고 한다. 팀원들이 다 나오는데 내가 안나온다는 것도 조금 걸렸다. 특히 실험실 안전 점검을 위해 안전책임자인 내가 나오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럼 나도 나와야겠네요.”


그러자 옆에 있던 S책임이 웃으며 나를 말린다.


“아니 꼭 그러실 필요 없어요.”


“아니 그래도 내가 안전책임자인데 좀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안전환경 담당자가 있는 거잖아요. 담당자인 H책임님이 나오시고 저희 시니어들도 다 나오니 맘편히 쉬세요.”


“그래요? 알겠습니다.”


나는 마지못해 수긍을 했고 결국 그주 권장휴무에는 나만 쉬었다.


그 후 다른팀과 협업 미팅을 마치고 나오며 팀장인 L연구위원과 최근 회사 소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그런데 연구위원님 이번 연말 권장휴무에는 뭐하세요?


“소장님 보고자료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마침 저희팀 보고가 연초로 잡혀서 어쩔 수 없게 되었네요.”


“그럼 팀원들이 눈치 보여서 휴가 쓰는 것을 조금 어려워하지 않나요?”


그러자 L연구위원은 씩 웃으며 답했다.


“저도 제가 권장휴무를 쓰면 팀원들이 편해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도 않더라고요. 오히려 제가 없으니 회사에서 눈치 볼 사람이 없어서 더 편하게 회사를 나오는 것 같던데요. 아마 팀장이 권장휴무에 나온다고 하면 더 많은 팀원이 휴가를 쓸걸요?”


듣고 보니 그럴 듯 했다. 내가 팀원일 때 가끔 팀장들이 팀장워크샵이나 교육등으로 단체로 사라지는 날이 있는데 우리들은 그날을 “어린이날”이라고 불렀다. 팀장급 이상이 사라져 어린이 즉 팀원들만 남은 맘편한 날.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장자 외편에 노나라왕과 바다새 이야기가 나온다.


옛날에 바다 새가 노(魯)나라 교외에 와서 내려앉았다. 노나라 임금은 그 새를 맞이하여 종묘로 불러들여 잔치를 베풀고 구소(九韶)의 음악을 연주하여 즐겁게 해 주고, 쇠고기와 양고기, 돼지고기로 안주를 삼도록 하였다. 새는 눈을 멍하니 뜨고 걱정하고 슬퍼하면서 한 조각의 고기도 먹지 못하고 한 잔의 술도 마시지 못하고서 사흘 만에 죽어버렸다. 이것은 사람인 자기를 양육하던 방법으로 새를 양육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새를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르려 들지 않았던 것이다. 새를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르려면 마땅히 그를 깊은 숲 속에서 살게 하고, 호수 가에 노닐게 하며, 강이나 호수에서 헤엄치게 하고, 미꾸라지와 송사리를 잡아 먹게 하여야만 되는 것이다. 새는 사람의 말조차도 듣기 싫어하거늘 어찌 시끄러운 음악을 견디겠는가?

함지(咸池)나 구소의 음악을 동정(洞庭)의 들판에서 연주한다면, 새들은 그것을 듣고 날아가 버리고, 짐승들은 그것을 듣고 달아나 버리고, 물고기들은 그것을 듣고 깊숙이 물 아래로 들어가 버릴 것이다. 사람들만이 그것을 들으면 흥이 나서 서로 모여 둘러싸고 구경을 한다. 물고기는 물 속에서 살지만 사람은 물 속에서는 죽어 버린다. 그들은 반드시 서로 자기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다른 것이다.

- 장자 [외편 지락(至樂)] (연암서가, 김학주 옮김, p433)


나는 내가 먼저 휴가를 쓰는 것을 팀원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의 마음을 헤아려 이에 맞추는 것이 가능할까?


서양에는 황금률 이라고 하는 가르침이 있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 마태복음 7:12


동양의 가르침 중에도 비슷한 것이 있다. 바로 논어 안연편에 등장하는 유명한 구절이다.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

“己所不欲 勿施於人 (기소불욕 물시어인) – 논어 안연


내가 대접받고 싶은 바대로 남을 대접하고 내가 싫은 것을 남에게도 시키지 않는 것. 이것이 타자를 대하는 기본 방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 마음을 바탕으로 미루어 짐작을 하는 것이다. 과연 그렇게 하면 될까?


철학자 강신주는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한다. 그것은 노나라 임금이 바다새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이라고. 노나라 임금은 바다새를 사랑하였다. 그래서 바다새에게 정성을 다한다. 그래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아낌없이 베풀었다. 좋은 장소에 데리고 와서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좋은 음식을 대접하였다. 그런데 바다새는 죽고 말았다. 왜냐하면 좋은 장소는 왕 자신에게 좋은 장소였고, 좋은 음악은 왕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이었고, 좋은 음식은 왕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바다새가 좋아하는 바가 아니었다.

바다새는 사람이 사는 곳 보다 숲이나 강가가 더 좋았고 음악보다 조용한 것을 더 좋아하였고 소고기 양고기 보다 강가나 바닷가에서 잡은 물고기를 더 좋아하였다. 왕은 자신이 좋아하는 바와 싫어하는 바를 바탕으로 헤아렸고 대접하였지만 그것은 새가 좋아하는 바가 아니었다. 왕은 왕이 좋아하는 바가 있고 새는 새가 좋아하는 바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자신을 기준으로 타인을 해석하면 안된다. 내가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선의를 바탕으로 하더라도 그래서는 안된다. 아니 선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더 조심해야 한다. 내가 선의로 하는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는 순간 거리낌이 없어진다. 그래서 그 행위가 타인이 바라는 바가 아닐 때 비극은 더욱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내가 선의를 가지고 아낌없이 베푸는 존재 타자는 누구인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와이프, 아이들, 부모님 등등.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다. 그런데 가까운 만큼 내가 그들을 잘 알고 있을까? 아니 나는 그들을 그들의 입장에서 헤아려 본적이 있기는 한가? 없다. 아는 부분도 있겠지만 모르는 부분이 더 많을 것이고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나의 착각일 가능성이 있다. 내가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생각하여 베푸는 것이 과연 그들이 원하는 바인가? 모르겠다. 아마 그래서 일 것이다.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자식들을 위해 헌신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자식들에게 “내가 언제 그런 것 해달라고 한적 있어?” 같은 가슴에 못박히는 말을 듣고 배신감에 치를 떠는 일이 생기는 것이.

그러면 어찌 해야 하는가? 강신주는 장자의 우화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타자가 원하지 않는 것을 타자에게 하지 않는 것.”


모든 것을 타자에게서 시작해야 한다. 내가 아닌 철저한 타자의 입장에서. 그런데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그럼 어떻게 남의 마음을 헤아릴 것인가? 잘 모르겠다. 그나마 내 경험을 바탕으로 말하자면 끊임없이 타자의 말을 듣고 타자의 행동을 관찰하고 타자의 입장에 서보는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타자의 마음을 헤아리기 어렵다. 그래도 계속 해야 한다. 바다새를 사랑하였지만 바다새를 죽게 만든 노나라 왕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MZ세대라고 불리는 후배들은 팀장에게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 하는데 거리낌이 없다는 것이다. S책임처럼 “팀장님 안나와도 되요”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이들은 휴가를 쓰면서 그리 크게 눈치 보지도 않는 것 같다. 내가 휴무를 쓰건 안쓰건 본인이 쓰고 싶을 때 알아서 잘 쓴다. 그러니까 나는 나의 마음으로 그들을 헤아리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상사의 눈치를 보니까 그들도 그러할 것이라고 지레 짐작한 것이다. 어찌 보면 내가 상사뿐만 아니라 팀원들의 눈치까지 보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이들을 당돌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팀원들의 숨은 마음을 헤아리느라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으니 오히려 팀장 입장에서는 더 편하다. 무엇을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 타자의 자리에 가지 않아도 그 마음을 알아서 전달해 주니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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