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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십대 회사원 김씨 Jan 15. 2024

인간 존엄은 불가침하다.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 김누리


사진 출처 : Image by Brigitte Werner from Pixabay


 몇 년전 송강호가 주연인 영화 ‘변호인’을 보다 울컥한 적이 있다. 영화에서 변호인 송강호가 고문을 가한 경찰과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해 설전을 벌인다. 이때 대한민국 헌법 1조가 나온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송강호는 “국가는 국민이다.”라고 일갈한다.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장면을 기억할 것이고 깊은 울림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렇다. 주권도 국민에게 있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면 국가라는 것은 결국 국민에 의한 것이고 국민이 국가의 핵심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평범하고 당연한 문장이 현실에서는 당연하지 않았던 것에, 그리고 그것이 현재 진행형인 것에, 그로 인해 내가 주권자임을 때때로 자각하지 못하는 것에 울컥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주권자임을 헌법 가장 첫머리에 내세운 것에, 그래도 원칙은 세우고 있음에 안도 했었다.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에서 저자인 김누리 교수는 독일 헌법 1조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예스24


독일 헌법 1조는 다음과 같다

 “인간 존엄은 불가침하다.” 

“모든 국가권력은 이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할 의무를 진다.”


 이 말을 들은 순간 또 한번 왈칵 눈물이 쏟아질 뻔 했다. 독일 헌법이 우리 제헌 헌법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들 한다. (물론 지금의 독일 헌법이 아닌 바이마르 헌법이다. 바이마르 헌법 1조는 “독일국은 공화국이다. 국가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다. 바이마르 헌법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많은 민주주의 국가 헌법에 영향을 주었다.)


 그런데 “인간의 존엄은 불가침하다.”라니. 이것은 스케일이 다르다. 

 우리는 정치체제(민주주의, 공화정)와 (권력의) 주체를 논하고 있을 때 그들은 ‘인간’을 논하고 있다. 국가의 존재 이유가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위한 것이다. 우리는 국가에 속한 '국민'의 '권리'를 말하고 있을 때 그들은 그 국가에 속한 사람을 포함한 모든 '인간'과 그들의 '존엄'을 위하고 있다. 한 국가의 헌법이 그 국가를 초월해서 존재한다. 그리고 그 헌법은 분명 국민적 합의에 의해 정해졌을 테니 국민도 이에 동의하는 것이다. 너무나 가슴 벅찬 선언이다. 그래서 부럽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부정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존엄이고 이는 그가 어떤 국가 어느 민족에 속하는지를 넘어선다는 것이다. 이는 2차 세계대전을 겪은 전범국의 반성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전범국들이 이런 헌법을 만들지는 않는다. (일본 헌법 1조에는 아직도 천황이 가장 먼저 나온다.) 아니 민주주의의 전통이 더 깊고 더 많은 피를 흘렸던 국가들에서도 보기 힘들다. 아마 국가와 법에 대한 깊은 고민 끝에 도달할 수 있는 곳에서 얻어질 수 밖에 없었던 해답일 것이다. 그래서 난 이 헌법 1조를 보고 그렇게 울컥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헌법을 가졌기 때문에 독일정부는 그 많은 난민을 받아들이는 결정을 내릴 수 있었고 독일 국민들은 그것을 수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를 돌이켜 보면 과연 그러한 결정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아니다에 가까운 답을 내릴 것이다. 그리고 대다수의 한국인들도 그러할 것이다. 그것이 못내 나를 슬프게 한다. 


 한 국가의 최상위법 1조에 국가를 넘어선 좀더 보편적인 가치를 담고 이를 실천해 내는 국가. 그리고 국가의 체제와 주체를 명시했음에도 시시 때때로 이에 대한 도전에 직면하는 국가. 조금 더 시간이 흘러 민주주의에 대한 역사가 깊어 진다고 해서 헌법에 명시된 것들이 자연스레 지켜질 지는 모르겠다. 민주주의 헌법의 원형을 보여주었다는 바이마르 헌법하에 나치 독일이 나온 역사를 본다면 민주주의라는 것이 그렇게 강인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정치의 민주주의를 위한 노력은 했지만 그에 만족한 나머지 경제, 사회의 민주주의에 대해 소흘했고 그 때문에 아직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완성하지 못해서 더더욱 약한 민주주의를 갖게 되었을 수도 있다. 국민이 계속 깨어있지 않는다면 어느새 시들어 버릴 수 있는 섬세하고 나약한 민주주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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