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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십대 회사원 김씨 Jan 22. 2024

기회가 상품이 되는 사회

미국이 만든 가난 – 매슈 데즈먼드

사진출처 : Image by PublicDomainArchive from Pixabay 


작년에 선배부부와 부부동반으로 식사를 할 때였다. 애들 나이가 비슷하여 자연스레 교육 이야기가 나왔고 선배의 첫째 아이가 재수 끝에 명문대학에 입학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재수를 하긴 했지만 모두가 선망하는 대학에 합격했으니 축하의 말이 오갔다. 어찌 되었든 그간 맘 고생을 보상받을 수 있는 결과 아니겠는가? 첫째가 대입을 앞두고 있는 만큼 와이프는 어떻게 공부를 했는지 궁금해 했고 선배 부부는 지난 일년을 회상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뭐 이래 저래 준비를 많이 하긴 했지만 제일 많이 준비해야 할건 돈이지.”


 재수하는데 돈이 많이 들긴 하겠다만 얼마나 많이 들지 감이 없었던 우리 부부는 선배가 일년 재수 기간에 오천만원을 썼다는 말에 입을 떡 벌릴 수 밖에 없었다. 덕분에 선배는 예약을 걸어놨던 것을 취소하고 새 차를 사고자 하던 계획을 무한 연기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래도 결과가 좋으니 이 정도면 꽤 괜찮은 투자였으리라. 

 그러면서도 그런 통 큰 결정을 아무나 내릴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대한민국 평균 가구당 자산이 5.2억원이고 가구 당 연 평균 소득이 6천7백만원 수준이라고 한다. 한국은 대부분의 자산이 부동산에 묶여있는 것을 감안하면 일년에 5천만원을 선뜻 사용할 수 있는 가구가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 많은 학생이 대입에 떨어지지만 그들 중 많은 수는 재수를 포기하고 많은 수는 최소한의 지원 속에 재수를 준비하기도 한다. 똑 같은 ‘상황’에 놓여있지만 동일한 ‘기회’를 얻지는 못하는 것이다. 



사진출처 : 예스24


 민간의 풍족함과 공공의 누추함은 “기회의 상품화”로 이어지고, 여기서는 사회적 이동성의 엔진들이 이제 비용을 요구한다. 기회를 불평등하고 불공정하게 만드는 최고의 방법은 거기에 비용을 청구하는 것이다. 

–      미국이 만든 가난 p190


 우리는 어떤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정당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게 그 기회가 주어졌다면 다른 누군가도 원하기만 하면 모두 동일한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경우 기회를 갖기 위해서는 돈을 지불해야 한다. ‘더 많은 기회’와 ‘더 좋은 기회’를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누군가 당신에게 “당신이 누리는 그 많은 기회는 당신이 가진 또는 당신의 부모가 가진 부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이 가진 더 많은 기회가 당신을 더욱 부유하게 한다.” 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화를 낼 수도 있다. 

“나는 내 능력이 뛰어나서 또는 내 부모의 능력이 뛰어나서 이러한 부와 기회를 누릴 수 있는 것이고 그들은 자신의 무능과 부모의 무능으로 인해서 그렇게 가난한 것이다. 그러니 그것은 내 탓이 아니다. 그들 자신의 탓이다.” 라고.


이 책의 저자는 과연 그럴까? 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그토록 오랜 시간 우리가 믿어왔던 그 믿음이 사실이 아니라고 그들의 가난함은 당신들 때문이라고 직격을 날린다. 


우리는 염가를 좋아하고 가격이 오르면 법석을 떤다. 빠르고 저렴하게. 이것이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소비 방식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넝마주이 같은 미국 노동자들이다. 최저가가 가능한 것은 빈곤 임금 때문이다. 빠른 서비스를 가능케 하는 것은 가차 없는 감시와 통제다.

-      미국이 만든 가난 p180


 우리가 저렴한 상품을 사기 위해 누군가가 저렴한 노동력을 제공해야 한다. 우리가 빠른 배송을 받을 때 누군가는 이를 위해 철저한 통제 속에 한치의 오차 없이 이 일을 해내야만 한다. 이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열악한 대가를 감수하며 일해야만 한다. 누구도 그들을 보호해 주지도 옹호해 주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당신은 그들이 가난한 것은 그들이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온 대로 실상을 보자면 그렇지 않다.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당신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노력하고 있다. 그들은 임대료를 대기 위해 가족들이 하루하루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8시간을 너며 12시간 이상씩 노동을 한다. 그렇지만 낮은 임금으로 인해 더 많은 시간을 일함에도 수중에 한 푼도 남기지 못하고 임대료를 제때 내지 못해 집에서 쫓겨나기도 한다. 이들은 너무 열악하고 과중한 업무에 시달린 나머지 쉬지도 못하고 일하다 건강을 해치기 일수다. 이들은 가난하지만 무기력하지도 않고 무책임하지도 않다. 미국 빈곤층 중 대부분은 국가의 보조금 혜택을 받지 않거나 또는 어떻게 받는지 파악할 여유가 없어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빈곤층에게 거부감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난한 사람들이 충분히 노력하지 않은 거라고, 복지가 장기적인 의존성을 만들어 낸다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회를 확대하는 건 사회주의와 독재로 이어지는 파멸 행위라고. 이런 선동이 계속 되풀이 되는 것은 설득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우리의 삶이 가난한 사람들의 삶과 서로 맞물려 있다는 뼈아픈 진실을 외면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      미국이 만든 가난


 미국에서 뇌에 여유 공간이 있고 목소리가 큰 일부 대중은 빈곤에서 벗어나려면 당사자들이 행동을 바꿔야 한다고 믿는 듯하다. 더 좋은 일자리를 얻어라. 아이를 그만 낳아라. 돈 문제에 대해 더 똑똑한 결정을 내려라. 하지만 실은 그와 정반대다. 더 나은 선택의 발판은 경제적 안정이다. 

-      미국이 만든 가난 


 우리는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과 어떠한 연관성도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그들은 그들의 삶을.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의 풍요는 그들의 가난과 많은 부분 연결되어 있다. 더 정확하게 더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를 하자면 우리의 풍요는 그들의 가난 덕분에 얻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 우리가 더 많은 풍요를 누리기 위해 그들을 더욱 가난으로 밀어 넣고 있다는 말이다. 




 왜 우리가 더 많은 세금을 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혜택을 몰아 줘야 하냐고 말할 수도 있다. 실제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소득이 증가할수록 세율도 증가한다. 더 많이 벌수록 더 많이 세금을 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 전체 소득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자면 별 차이가 없어진다. 가난한 사람들은 소득의 대부분을 먹고 사는데 사용하고 있고 이 모든 곳에 세금이 포함되어 있다. 부유한 사람들은 자신의 소득 중 먹고 사는데 사용하는 비중이 적고 이를 통해 내는 세금도 그만큼 적다. 결국 소득대비 세금의 비중은 비슷한 수준이 된다. 또한 국가가 빈곤층을 위해 사용하는 지원금이 국가 세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미미하다. 우리가 복지예산이라 하면 빈곤층을 위해 사용할 것처럼 생각하지만 실제 이들 대부분은 국민 모두에게 돌아가는 혜택이다. 더욱이 국가에 점점 더 많은 세금 감면을 요구하고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러한 감면의 혜택은 중산층 이상의 사람에게 가장 큰 혜택으로 돌아간다. 그러니 실제 세금의 비중은 가난한 사람들이 더 높다고도 볼 수 있다. 


 우리가 더 많은 부와 값싼 물건을 즐기려고 노동자들에게 생활 임금을 허락하지 않을 때 노동자들은 무엇을 거부당하는가? 행복, 건강, 생명 그 자체다. 

-      미국이 만든 가난 p118

 

 우리가 누리는 부유함과 기회들 이것들이 과연 모두 정당하고 내가 잘나서 얻은 것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나의 행복이 누군가의 불행을 통해 얻어질 수 밖에 없다면 그것을 기쁜 마음으로 누릴 수 있는가? 과연 우리는 빈곤한 사람들을 우리와 동등하게 존중하고 있는가? 그들은 대가를 치루고 있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가? 이제 당신도 알게 되었다. 그렇지 않다. 우리는 많은 부분 그들에게 의존하고 있다. 그들에게 부당한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니 당장 그들을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그들 앞에서 당신이 가난한 것은 당신이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은 그리고 당산의 자식 또한 똑같은 기회를 누리지 못하는 것은 모두 당신 탓이라는 말을 지껄이지는 말아야 한다. 그들은 이미 충분히 힘든 삶을 살고 있으니까.


 어떤 사람은 “인생은 불공평한 것이야.”라고 지껄일 수도 있다. 부유한 사람이 권력을 가진 자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가난한 사람은 권력이 없는 사람은 하루하루의 삶에서 인생이 불공평하다는 것을 절절히 체험하며 살고 있다. 이 말은 부유한 사람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해 주어야 하는 말이다. 그들은 한번도 인생의 불공평함에 대해 고민해 본적도 경험해 본적도 없는 사람들일 테니까.




진정한 개인의 자유는 경제적 안정과 독립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궁핍한 인간은 자유로운 인간이 아니다. 

– 프랭클린 루스벨트-

-      미국이 만든 가난 p291


 빈곤 (貧困). 가난함 (貧)으로 인해 곤란함 (困)에 처한 상황이다. 빈곤한 사람은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이다. 기회를 박탈당한 사람이다. 그로 인해 미래마저 박탈당한 사람이다. 이러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과연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그러니 우리는 그들을 우리와 같은 인간의 지위로 올릴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 장벽을 사이에 두고 돈을 던지는 행위를 그만두고 그들과 우리 사이에 놓은 장벽을 깨 부수어야 한다. 그들의 빈곤이 그들만의 문제가 아닌 것을 이제 깨닫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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