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의 감정수업
사진 출처 : Image by Karolina Grabowska from Pixabay
큰아들은 운동을 좋아하기도 하고 잘한다. 몸 쓰는 것에 재능이 없는 나나 와이프에게서 저 정도 운동신경을 가진 아들이 태어났다니 기적 같은 일이다. 물론 운동신경이 아주 뛰어나서 선수를 할 정도 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어떤 운동이든 곧 잘할 수 있을 정도, 즐길 수 있는 정도는 된다는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고 운동신경도 엉망이라서 제대로 할 줄 아는 운동이 없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운동을 싫어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것이 싫기도 했고 건강하지 못한 나와 달리 아들들은 건강한 삶을 누렸으면 하는 희망에 어려서부터 이것 저것 운동을 배우게 했다. 남들 공부 시킬 때 몸 쓰는 운동을 더 꾸준히 시켰으니 조금 남다른 부모였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공부 뺑뺑이를 돌리는 부모들 보다 내가 더 나은 부모라는 이상한 자부심도 있었다. 나는 다른 부모들처럼 자신의 욕망을 자식에게 투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내 아버지는 그 시대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가난 때문에 배움의 기회를 박탈당했다. 그래서 당신의 자식들은 절대 그렇게 살게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실제로 그렇게 키우셨다. 난 어린 시절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 아버지께 자주 혼났었다. 아버지는 당신이 누리지 못한 기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데 따라 주지 않는 내가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당신께서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 공부를 그토록 갖고자 욕망했던 공부의 기회를 가볍게 여기다니. 그런 어린 시절을 보낸 만큼 나는 내 아들에게 공부를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못해본 운동을 하고 건강한 신체를 갖기를 바랐다. 다른 부모처럼 공부를 강요하지도 않고 얼마나 좋은 아빠란 말인가?
하지만 어느 순간 과연 그럴까 하는 회의가 들었다. 나도 내 아버지가 나에게 한 것처럼 내 아들에게 내 어린 시절 누리지 못한 해소되지 못한 욕망들을 투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결국 내 아들들의 삶은 내 삶의 ‘안티테제’ 인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티테제’는 ‘테제’가 아니다. 말 그대로 ‘안티’ 그냥 반대일 뿐이다. 테제의 반대. 그것은 테제의 그림자일 뿐 테제가 아니다. 그림자는 본체가 사라지면 함께 사라질 뿐 본체가 될 수 없는 존재이다.
사진 출처 : 예스24
난 내 욕망을 가지고 내 욕망대로 살지 못한 내 과거가 안타까웠다. 그런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은 내 아들 또한 자신의 욕망 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내가 진정 원한 것은 내 아들이 운동을 좋아했으면 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달리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살기를 바랐던 것이 아닐까? 내 욕망이 투사된 삶이 아니라.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아들을 이끌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을 노예의 삶을 살도록 만들 뻔했다. 정말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다면 아들의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살도록 도와야 했다. 아들의 욕망은 무엇일까? 아들은 무엇을 욕망할까? 나는 모른다. 아들은 알고 있을까? 만약 아들이 알고 있다면 나는 지금까지 내 욕망을 투사해 아들의 욕망을 대체했었다는 말이다. 아들의 욕망 대신. 아들도 아직 모른다면 아직 기회는 남아 있다. 먼저 자신이 무엇을 욕망하는지 알아가는 과정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조금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내가 그랬던 것 처럼. 그래도 조금이라도 일찍 주인의 삶을 살았으면 한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