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신이라는 착각 - 필리프 슈테르처
사진 출처 : Image by Gerd Altmann from Pixabay
나는 징크스가 많다. 어떤 행동을 하면 불길하고 어떤 일이 일어나면 일이 잘 안 풀리고 등등.
예를 들어 중요한 보고가 있는 날에는 아침에 계란을 먹지 않는다. 깨질까봐. (정말 웃기지만 나는 꽤 진지하다.) 중요한 보고가 있는 날 입지 않는 옷도 있다. 그 옷을 입고 보고한 날은 결과가 좋지 않다. 그래서 아침에 옷을 고르며 오늘 무슨 일정이 있는지 천천히 생각한다. 물론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사고다. 그럼 왜 이처럼 이성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은 징크스 따위를 믿게 된 것일까?
우리는, 인간은 예측 기계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 뇌는 예측기계다. 어떤 것을 느낄 때, 인지할 때, 알아챘을 때 그것이 이미 가지고 있었던 상, 인식의 틀, 패턴 등에 잘 맞는지 찾아보고 예상한다.
우리는 뇌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많은 경우 중복을 피하고 예측을 하고자 한다. 이때 매우 중요한 것이 아니라면 합리성에서 조금 멀어도 그 예측을 따르는 것이 더 효용 측면에서 유리하기에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효율의 극대화로 진화하며 생긴 부작용인 것이다 모든 것을 하나하나 계산해서 따진다면 조금 더 합리적 결정을 내리겠지만 지불하는 시간과 에너지 대비 효용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일명 가성비 떨어지는 행동이라는 말이다.
결국 인간의 뇌는 예측기계라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다. 생존과 번식을 위해 극도로 발단한 컨트롤 타워인 우리 뇌는 상황을 예측하는데 최적화 되어 있다. 뇌는 반복적인 패턴을 인지하여 예측하고 이를 통해 상황을 예측하고 행동하도록 매뉴얼화 되어있다. 뇌는 예측 가능한 반복패턴은 무시할 수 있게 되었고 이를 통해 패턴화되지 않은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하거나 쓸데 없이 에너지를 쓰지 않고 효율적으로 우리를 컨트롤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인간의 뇌는 불확실한 것 즉 예측할 수 없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우리의 감각과 지각이 외부에서 들어온 정보를 예측할 수 없거나 해석할 수 없다면 이는 '불안'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우리의 뇌는 이 예측에 벗어난 정보들에 즉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패턴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 한다. 그리고 무엇인가 그럴 듯한 설명을 해 줄 수 있는 것을 찾아낸다. 비록 그것이 말도 안 되고 전혀 논리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은 것이라 해도 말이다. 그 불안을 견디기 보다는 말도 안 되는 설명을 만들어 해소하기를 원한다. 징크스와 여러 음모론은 이렇게 시작된다.
내 징크스도 이런 것 아닐까? 아침에 계란을 먹고 갔는데 상사에게 보고하다 깨졌다.
‘아! 계란 먹으면 깨진다는데 아침에 괜히 먹었네.’
다음부터는 중요한 보고가 있는 날에는 계란을 안먹는다.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의식의 흐름 아닌가? 실제 상황을 유추해 보자.
난 열심히 보고를 준비했고 그간 상사의 반응으로 보았을 때 준비한 보고가 무사히 통화하리라 ‘예측’했다. 내가 대충했으면 실망할 일도 없다. 그럴 경우 깨지는 것도 ‘예측’ 가능한 부분인 것이다. 그러나 잘 준비했는데 깨지면서 내 ‘예측’이 빗나갔다. 뭐가 문지인지 모를 때 뭔가 그럴듯한 이유를 빨리 찾아야 한다. 나는 평소처럼 했으니 뭔가 외부에 원인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때 불현듯 아침에 먹은 계란이 떠오른다. 농담처럼 와이프에게 ‘계란 먹으면 깨지는데.’라고 말했던 것도. ‘그렇네. 계란이 문제였네.’ 예측을 벗어나 생기기 시작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뭔가 나름 그럴듯한 것을 찾았다. 뇌는 느낀다.
‘휴~~ 이제 설명이 되었으니 안심이다.’
이런 것은 남들 보기에 그럴 듯 할 필요는 없다. 나만 납득하면 된다. 이를 통해 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면 되는 것이다. 진짜 원인을 찾으려면 내 안으로 깊이 들어와야 한다. 그건 번거롭기도 하고 나 자신에게 상처가 된다. 어쩌면 내 내면 깊숙한 곳 기억 저편에는 실제로 준비가 부실했다고 느낄 수도 있고 상사의 의중이 다른 곳에 있었던 여러 단서들이 있을 수도 있다. 이러면 예측의 변수들을 처음부터 다시 상정해야 한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또 불안에 시달려야 하고. 지금 당장의 불안도 견디기 힘든데 어찌 그 긴 시간을 견디겠는가? 그냥 비합리적인 원인을 찾는 것이 훨씬 좋은 것이다.
사진출처 : 교보문고
이 책에서는 조현병이라 불리는 정신 질환에 대해 많은 부분 할애한다. 우리가 보통 정신병이라고 부르는 그 병. 환청이 들리기도 하고 이상한 헛소리를 하기도 하며 남들이 생각하기에 전혀 이성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은 사고를 하는 사람들.
그런데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은 무엇일까?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존재하기는 할까?
우리는 자신이 지극히 정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에 대해서는 항상 관대한 평가를 한다는 것을 감안해서 이를 반영한다고 해도 여전히 나는 정상이라고 그리고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정신병환자도 스스로를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스스로 정상이라고 ‘확신’을 가지고 있지만 그 ‘확신’ 때문에 정신병자 취급을 받는다. 그의 ‘확신’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퍽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내 머릿속에 도청기가 있다고 주장하고 ‘확신’하는 사람에게 아무리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설득을 해도 의미가 없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조금씩 이상한 확신을 가질 수 있고 그 정도에 따라 정신병 취급을 받기도 하고 아닐 수도 있다. 누군가 귀신의 존재를 믿는다고 제 정신이 아니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 귀신이 눈에 보이고 말을 걸고 심지어 나를 조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면 정상 범위를 넘어갔다고 할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는 어쩌면 조금씩은 제정신이 아닌 부분들이 있다. 이성적이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은 생각들이 차고 넘친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기를. 그건 그냥 우리 뇌가 이 세상에 적응하는 효율적인 방법의 아주 작은 오류일 뿐이니까. 그리고 다른 사람이 황당한 이야기를 하고 또 믿고 있다고 해도 놀라거나 고쳐보겠다고 나서지 말기를. 그냥 그 사람도 우리와 똑같을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