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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채로운 윤슬 May 19. 2024

의사 파업으로 늦춰진 수술


검사 결과가 나왔다.


갑상선 한쪽만 떼낸다면 약을 먹다가 끊을 수도 있지만 양쪽을 다 떼내면 평생 약을 먹어야한다고 했는데 그는 갑상선 양쪽 모두 암이 퍼진 상태였다.

다른 곳으로 전이된 건 없지만 임파선으로 전이된 부분이 많은 것 같았다.



불행 중 다행이라 생각했다.

젊은 나이에 수술하고 남은 여생 살면 되겠지, 라며 위안을 삼았는데

남자는, 특히나 젊은 남자는 암 진행 속도가 빠르다는 말을 듣고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의사 파업으로 수술 날짜 잡기 힘든 상황이라 두달 뒤가 가장 빠른 일정이었기 때문이다.

착한 암이다, 회복이 빠르다 말하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가벼운 수술로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정신 없는 와중에 여기 저기 쫓아다니며 일까지 해야해서 정신적으로 너무 지친 상태였는데 정말 고맙게도 간호사 친구가 여기저기 알아보고는 내게 연락을 해주었다.

어느 병원이 갑상선 암으로 유명한데 이미 3개월치 예약이 차있어서 초진부터 하면 더 오랜 시간 걸릴 것 같다고 했다.


속상했다.

종양을 발견했을 때 바로 병원에 갔다면, 금방 간단한 수술로 끝이 났을 것 같은데..

게다가 의사 파업도 없었을 때라 수술 일정 잡기도 좋았을텐데 왜 안 가고 그냥 시간을 흘러보낸 걸까.



"왜 그 때 병원 안 갔어?"

답답한 마음 반, 꼼한 그가 병원에가는 것을 미뤘던 이유가 있지 않을까 궁금한 마음 반을 실어 그에게 물었다.

그는 내 말이 추궁하는걸로 들렸나보다.


"지난 일가지고 그렇게 말하면 어쩌라는건데"


평소에 침착하던 그의 태도와 사뭇 달랐다.

그도 이 상황이 두렵고 지친 것 같아보였다.

속에 할 말이 한 보따리였지만 꾹 참고 집안일을 했다.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며칠 전에 만들어 둔 된장찌개와 반찬이 보였다.


인스턴트 음식 먹지말고 몸에 좋은 거 먹으라고 퇴근하고나서 피곤참아가며 만든 음식인데..

손 하나 대지 않은 걸 보고는 서운함이 밀려들었다.


싸늘하게 식은 된장찌개를 빤히 보면서

지금 내 심정을 말해야하나, 다음에 말할까 그러다가 또 욱하고 터져버리면 어떡하지 고민하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냉장고 문을 열어놓고 한참을 서 있는 나를 보고 그가 뭐하냐고 물었다.


눈물이 흘렀다.

슬픔일까, 분노일까.


"왜 내가 만든거 안 먹고 다른 거 먹고 있어?"


그는 짧게 대답했다.

"아. 깜빡했다."



서운함이 폭발했지만 싸움을 해서는 상황이었다.

그를 불편하게 만들기 싫었다.

그가 불편한 상황에 놓이면 그의 몸 안에 암 세포가 더 퍼져나갈 것만 같아 두려웠다.



"하... 진짜 너무 지친다."


나는 울먹이며 집 밖을 나갔다.

같이 있으면 속에 쌓인 수많은 말들을 날 세워서 그에게 쏟아부을 것 같았으니까.



늦은 밤, 하염없이 걸었다.

진짜 내 인생 왜 이런거지.

왜 요즘 되는 게 하나도 없는거지.

성향이 너무나도 다른 그와 평생을 살 수 있을까.

온갖 생각이 들었다.


한 시간쯤 걸었을까. 화가 누그러져서 집으로 들어갔다.

그가 얘기하자고 말을 걸어왔다.


그는 나를 만나기 전에 예민한 피부 때문에 트러블이 자주 났기에 그 것도 곧 없어지지 않을까해서 바로 병원을 가지 않았고, 나중에 동네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염증인 것 같다고 했다. 일주일간 약 먹어보고 차도가 없으면 더 큰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한다고 했다.

타지 생활을 하던 그는 회사 직원들에게 병원에 대해서 물어보고 알아보다가 가까운 대학 병원에가서 검사를 받았고, 의사 파업으로 검사와 진료를 드문드문 받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린 것이었다.


왜 이 지역 토박이인 나한테 어떤 병원이 있나 물어보지 않은건지,

갑상선으로 유명한 병원도 많은데 세히 알아보지 않고 가까운 병원을 선택했다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이 많아졌다.


옷 하나 살 때도 후기를 엄청 검색하고 찾아보는 그가, 물건을 구매할 때 약간의 하자만 있어도 바로 반품하는 그 사람이 

평생 가지고 살아야하는 몸에 대해서는 그렇게 대충 알아본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긴 얘기 끝에 병원 몇군데를 추려서 전화를 돌렸다. 수술 예약을 잡으려면 6개월이 걸린다는 답변 받았다.

2차 병원을 가면 되지 않을까 싶어 진료 기록을 들고 방문했지만 병원에는 이미 환자들이 가득했고, 병원장은 이 상태라면 대학 병원에서 수술하는 게 낫다고 진료를 주지 않았다.


생각보다 간단한 수술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하루라도 빨리 수술하고 회복하길 바랬는데 다른 대안이 없었다. 지금 잡아놓은 수술날을 기다리며, 그 동안 그의 마음을 편안히 해줘야했다.






진료 기록을 반납하러 그와 같이 대학 병원에 들렸다.

의사 파업에 관련된 안내문이 보여 정독했다.



정부는 의대 원을 폭발적으로 늘리려고 하고, 의사 협회에서는 그 인원을 수용할 상황이 아니라고 했다.


의료 개혁이 필요하다면 현재 피부과와 성형 외과로 몰리는 현상을 해소하는 것이 우선이며, 지금 상태로는 의대 정원을 늘리더라도 문제점은 개선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의사 협회와 정부가 협의를 하며 점진적인 개혁을 했다면 이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정부가 정책을 강경하게 밀어붙인 탓에 의사들의 반발심 더욱 커질 뿐이었다.



허나 정부가 아무리 터무니 없는 정책을 낸다고해도 사람의 생명이 직결된 일에 파업이라니.

예비 신랑이 그 착하다는 갑상선 암이 걸려도 피 마르는 하루하루를 보내는데

그보다 더 응급한 환자들은 얼마나 애가 탈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사람을 살려야겠다는 사명을 가진 사람들이 의사를 했다면 이 지경까지 왔을까.


사명보다는 돈과 명예를 얻기 위해 의대에 진학한 일부 의사들로인해 의료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피부과와 성형외과는 자꾸 늘어나고, 소아과는 줄줄이 문을 닫고 그나마 남아있는 소아과는 오픈런을 해야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소식을 들으며 결혼과 출산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처음으로 생겨났다.




몇년 전에 참여했던 독서 캠프 문구가 떠올랐다.


"공부해서 남을 주자"


공부해서 세상을 이롭게 만들어야하는데

공부해서 남 주냐는 어른들의 말을 듣고 자라온 세대가

나를 위해 공부하고,

나를 위해 돈을 버니

세상이 점점 악해져가는 것 같다.



평생 회사원을 꿈꾸던 내가 얼마 전부터 다른 일을 하게 되면서 참 많은 생각든다.

사회적 시선과 금전적인 보상이 아닌 나의 특성과 나의 성향을 분석하고 거기에 맞는 직업을 가지고

그 직업적 소명을 다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임을 절실히 느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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