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예고도 없이 갑자기 찾아온다
갑상선 암 진단, 그의 생활을 반추하다
일이 없는 날, 그와 함께 병원으로 출발했다.
임파선 전이가 의심되어 추가 검사를 하러가는 길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차에 타서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노래를 들으며 갔지만 마음 한켠은 무거웠다.
병원에 도착했다.
이제 한동안 신세져야하는 곳이구나 싶었다.
그는 자주와서인지 병원 길을 익숙하게 찾아다녔다.
핵의학과에 가서 기다리다가 그가 검사하러 들어갔다.
간호사 분께서는 "1시간 20분 정도 소요되니 밖에서 시간 보내고 와도 된다"고 내게 친절하게 말씀해주셨다.
바로 나와서 조경이 예쁘던 벤치를 찾아갔다.
날씨가 참 좋았고, 참꽃도 예쁘게 피어있었다.
가만히 앉아 주변을 돌아봤다.
머릿속이 복잡해져왔다.
갑상선 암은 완치가 된다고 해서 마음을 조금 놓았는데 임파선 전이라니..
제발 아니길 바랬다.
슬픈 감정은 예고도 없이 갑자기 찾아온다.
조용히 눈물만 흘리다 감정이 격해져서 얼굴을 가리고 훌쩍 거렸다.
정신차리고보니 주변에 있던 분들이 자리를 떠나셨다.
일부러 자리를 피해주신건지 아니면 그냥 타이밍이 그랬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배려해주신 것 같아 뭉클했다.
고개를 숙이니 예쁘게 핀 꽃이 보였다.
그래, 들꽃처럼 꿋꿋하게 살아내보자.
검사 시간이 끝날 때쯤 다시 병동으로 들어갔다.
눈물이 또 차올라 화장실로 들어가서 세수하고 있는데 그에게서 검사가 끝났다는 전화가 왔다.
거울을 보니 눈이 빨갛게 충혈이 되어있었다.
어떡하지.
그 이한테는 밝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데, 나 운거 티나겠다.
고개 숙이고 만나야하나
걸어가며 온갖 생각이 드는 중에 그와 마주쳤다.
그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도 울었는지 눈이 부어있었다.
서로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많은 말을 주고 받은 기분이었다.
그에게 너무 미안했다.
요즘 집안일 안 돕는다고 투정부린게 미안했다.
갑상선 암이면 엄청 피곤했을텐데
내가 설거지 좀 하면 되는걸.
이제는 집안일 안 돕냐고, 변했다고 투덜거린 내 모습이 떠올라 부끄러웠다.
그가 식기세척기 사자고, 로봇청소기 사자할 때
그러자 할걸.
돈 아끼겠다고 버둥거리다가 서로 감정 상하는 일만 만들었다.
그와 투닥거렸던 일들이 하나둘 떠오르면서
나 때문에 아프게 된건가, 죄책감이 들었다.
술, 담배도 하지 않고 묵묵하게 해야할 일을 하며 착실하게 살아온 그에게
30대 중반의 나이에 암 선고는 상당히 큰 충격이었다.
병은 그냥 오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그의 생활 습관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그의 건강하지 못한 생활이 눈에 들어왔다.
쉬는 날이면 밤낮이 바뀌는 생활을 하고
운동은 전혀하지 않았다.
혼자있을 때면 항상 배달 음식을 시켜먹고
패스트푸드를 즐겼다.
콜라를 물 마시듯 마셨고
밤 늦게 컵라면을 자주 먹었다.
발암 물질을 만들어낸다는 디퓨저가 집 구석 구석에 위치해있었지만 환기는 자주하지 않았다.
예민한 면도 있고,
원칙대로 해야하는 강박이 있는 성향에
과묵한 성격까지.
몸은 혹사 시키면서 스트레스는 제대로 풀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언젠가 일어날 일이라면,
차라리 회복이 빠른 젊은 나이에 발견하고
앞으로의 생활 태도를 고치는 것이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른다고 애써 위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