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결혼식하지말자."
"결혼을 하지 말자구?"
"아니, 식을 하지말자구. 전에 윤슬이가 말했던 것처럼 가족들만 식사하는걸로. 작게 하고 싶어."
그는 생각이 많아보였다.
결혼 준비로 예약했던 모든 것들을 취소해야했다.
어차피 의사 파업으로 수술 일정이 늦어져서 결혼식날에 컨디션이 돌아올지도 의문스러웠다.
웨딩 플래너가 있어 다행이었다. 혼자서 정리하려면 진이 다 빠졌을텐데 플래너가 있어 든든했다.
다행히도 결혼식 딱 두달 전이었다. 다음주에 취소했다면 위약금이 훨씬 더 불었을 것이다.
왜 하필 이 타이밍이었을까, 하늘이 내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 걸까
수도 없이 생각했지만 정답은 없었다.
그저,
웨딩촬영을 즐겁게 해서 예쁜 사진이 남았다는 것.
청첩장 만들기 직전이었다는 것.
내가 공황 증상이 많이 줄어 일상 생활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
어쩌면 지금이 적기였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스트레스 받던 형식적인 결혼 준비를 안해도 된다는 생각에 홀가분한 마음이 들었다.
답답한 마음 풀 곳 없나 싶었는데 문득 친구가 떠올라 연락했다. 잘 지내냐는 친구의 질문에 결혼도 미뤄지고 엉망진창이라고 대답했다.
예비 신랑이 갑상선 암이라고 말하니, 간호사인 그 친구는 어떻게 해결해나가면 좋을지 가이드를 잡아주었다.
"얼마나 잘 살게 하려고 시작도 전에 이렇게 큰 액땜을 하게 하는거냐.."
친구의 푸념 섞인 말이 왠지 위로가 되었다.
'아, 앞으로 우리 잘 살 수 있겠다. 잘 이겨내야지' 다짐했다.
그 동안 '완치율 높은 착한 암이니까 걱정마라', '금방 회복할거다'라는 위로를 받았지만, 별 말 없이 같이 아파해주는 친구에게 더 큰 위안을 받은 것 같다.
혼자 있을 때면 한숨이 푹푹 새어나왔다.
울적해보이는 그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오히려 밝은 척하며 그에게 힘을 주려했다.
평소에 앓던 소리 잘 안 하던 그 이였는데, 움직일 때마다 "어휴" 소리를 내길래 문득 얼마 전에 본 박위&송지은 커플의 일상이 떠올랐다.
그들은 힘을 내야할 때 한숨 대신에 "으쌰"라고 기합을 외쳤다.
말버릇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 한마디에도 힘이 실린다는 걸 항상 염두하며 살아서인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그가 용기를 얻기 바라면서 영상을 함께 봤다.
집에 있으면 부정적인 생각이 자꾸 떠올라 틈만 나면 그와 함께 나가서 산책을 했다.
늘 나 혼자 다니던 뒷산에 같이 갔다.
새소리를 들으며 풀내음을 맡으니 기분이 상쾌해졌다.
예전에는 그와 팔짱을 끼고다녔는데, 요즘은 그와 손 잡고 체온을 나누며 걸어가는 게 좋다.
"오빠, 우리 앞으로 잘 살 거 같아."
"응."
그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이 새삼 감사했다.
울적한 기분이 싫어서 별 일 아닌데도 하하하 소리내어 웃다보면 둘이 키득거리며 찐텐으로 웃고 있었다. 이게 웃음 치료이겠거니하며 그가 마음 편히 지낼 수 있게 노력했다.
평소에 따로 연락하지 않으시던 예비 시어머니께서 전화가 오셨다.
"슬아~ 고맙다. 그 애가 무뎌서 너 아니었으면 몇년 뒤에 발견했을 거 같은데, 정말 너무 고맙다.
힘들겠지만 무거운 일 일수록 가볍게 생각해야해."
참 멋진 말인 것 같았다.
가벼운 일도 무겁게 만들며 살아온 나였기에
내게 꼭 필요한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