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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채로운 윤슬 Jun 03. 2024

사랑한다는 것은

그와 함께 카페에서 책을 읽었다.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고즈넉한 공간에서

그는 그가 좋아하는 경제책을, 나는 내가 좋아하는 철학책을 읽으며

커피를 마시는 순간이 참 소중하게 다가왔다.

꿈에 그리던 데이트를 하는 이 순간, 모든 걸 다 가진 것 같았다.


그리고 며칠 후,

그가 갑상선 암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엄마가 밥 사주고싶다고 이번주 토요일에 시간되냐고 하시네"

그가 내게 휴대폰 메시지를 보여주며 말했다.


'할말 있으신가, 그냥 밥 먹자는 건가'

걱정이 많은 성격 덕분에 그의 암을 발견했지만,

괜한 생각도 많았다.



주말 아침에 그와 함께 예비 시부모님을 뵙기 위해서 나섰다.

시골길을 달리며 도착해서 시부모님을 뵙고 인사드리니 걱정은 어느새 잊혀지고 반가운 마음만 들었다.


손님이 가득한 식당에서 건강한 식사를 하고

근처 공원에 들려 산책을 했다.

예쁘게 핀 꽃들을 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사진도 찍고 평화로운 시간을 즐겼다.

그는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참 편안해보였다.

오랜만에 그런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



공원을 한 바퀴돌고 근처에 있는 카페에 가서 깊게 하지 못 했던 이야기를 마저 나누었다.

시어머니께서는 표현하지 않으셨지만

아들이 걱정되는 마음에 눈물을 훔치신 날이 많으셨던 것 같았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시어머니의 눈가가 붉어지셨다.

그간의 마음고생이 느껴져 나도 눈물이 차올랐다.


아픔을 나누는 게 이런거구나 싶었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그의 아픔을 같이 짊어지고 있었기에

그가 지금까지 그나마 버텨온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전보다는 표정이 많이 밝아진 것 같아요.

마음이 조금은 괜찮아진 것 같은데.. 아닌가? 그냥 티를 안 낸건가?"


무거워진 분위기를 풀고 싶어 그에게 물었는데

그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 했다.


한숨만 쉬던 그 때보단 많이 털어낸 것 같아보였는데,

아직도 마음 속 깊은 곳에 힘든 마음을 억누르고 있나보다.




"윤슬이가 있어서 얼마나 든든한지 모르겠다. 정말 고마워"

시어머니께서는 계속 내게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시간이 꽤 흘러 나갈 채비를 했다.

어제 책장 정리하며 나온 책을 팔러 중고서점에 들릴거라고 말씀드렸다. 중고서점을 애용하다보니 절판된 책을 구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특히나 법정 스님의 무소유 책을 구할 수 있어 좋았다고.


어머니께서는 내게 그 책을 살 수 있냐고 미소를 지으시며 물으셨다.

나는 무슨 돈이냐며 다음에 뵐 때 드리겠다고 대답했다.



중고 서점에 들려 책을 팔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책장을 살폈고, 무소유 책을 집어들었다.

시어머니께서 말씀하지 않았다면 몇 년을 더 존재감 없이 책장에 가만히 있었을까.

책을 선물로 드리기 전에 다시 한 번 더 읽어봐야할 것 같아서 몇 년만에 다시 책장을 넘겼다.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처음 읽는 듯한 느낌이들었다.

문장 하나하나가 와닿았다.


좋은 책은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고, 오랫동안 사유하게 되는 책이라던데

그 말이 참 잘 어울리는 책이다.



업무 스트레스로 며칠동안 편두통에 시달렸는데

법정 스님의 글을 읽으니 머리가 한결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문득, 이렇게 따뜻한 분이 타계하셨다는 사실이 가슴을 저릿하게 했다.



사랑한다는 것은
함께 나누어 짊어진다는 뜻이다




글 한 문장, 한 문장을 음미하며 책을 읽는데 사랑에 관한 글이 나왔다.

오늘 느꼈던 감정이라 더 와닿았던 문장이었다.


살다보면 버텨내기 힘든 순간들을 맞닥뜨리는데

그럴 때 짐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삶을 살아가는 큰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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