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채로운 윤슬 Mar 01. 2020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아홉번째 조각; 이게 내가 진정 원하던 꿈이었을까

출근길은 한 시간 정도 된다.

지하철 타고 있는 시간은 30분 정도.


그 시간 동안 책을 읽는다.

너무 졸릴 경우 꾸벅꾸벅 졸기도 하지만 대개 책을 읽으며 출퇴근 시간을 의미있게 보내려고 노력한다.

책을 읽으며 마음에 드는 문장을 발견하면 책 모서리 부분을 접어둔다.


지하철에 내려 20분정도 걸어서 회사에 도착한다.

오자마자 창문을 모두 열어놓고 전날에 있던 꿉꿉한 공기를 밖으로 보낸다.

탕비실에 가서 텀블러에 물을 가득채우고 티백을 넣어 녹차를 우려내고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켠다.


얼마 전 '실행은 답이다' 책을 읽고 힌트를 얻어 인터넷 시작화면을 디비컷 사이트(디자인 커뮤니티 포탈)로 설정해두었다. 덕분에 인터넷을 켜자마자 최근에 업데이트 된 웹사이트를 둘러보면서 디자인 트랜드를 살펴보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그 후, 회사 인트라넷에 접속해서 확인하지 않은 메일을 체크한 후에 블로그에 접속한다.

전날에 어떤 검색유입이 있었는지 살펴본다.


그리고는 출근길에 접어두었던 책을 꺼내어 마음에 들었던 문장을 하나하나 타이핑하고 블로그에 포스팅한다.

나중에 좋은 글을 쉽게 찾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시작한 포스팅인데, 블로그내 검색은 생각보다 유연하지 못하다. 어떤 책을 읽었구나 정도로 쓰이고 있다.


모든 게 정리 되었다싶으면 오늘 할일을 체크하고 업무를 시작한다.


디자인 업무가 있을 때는 포토샵을 하루종일 켜놓고 있고

퍼블리싱 업무가 있을 때는 에디트플러스를 하루종일 켜 놓고 있다.

11시 쯤 되면 곧 점심시간이 다가온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다니는 회사 근처에는 관공서가 많이 들어선 신도시라그런지 지방임에도 불구하고 강남 물가를 방불케한다. 요즘에는 돈을 조금이라도 아껴볼 심산에 전자렌지에 돌려먹는 볶음밥을 단체로 주문해서 먹고 있다.


그리고 여섯시가 되면 퇴근 준비를 한다.

약속있는 경우 여섯시 땡하면 퇴근한다. 개인적인 분위기의 사무실이라 눈치보며 퇴근 못 하는 일은 없다.

해야할 일이 있으면 시간내로 맞춰하기 때문에 야근하는 경우 또한 거의 없다.


퇴근을 하면 지하철역까지 주변을 둘러보면서 걸어간다.

신도시라 거리가 참 이쁘다.

저녁노을 지는 하늘보면서 감상에 젖기도 한다. 



집에 가기 전에 헬스장에 들린다.

매일은 못가더라도 일주일에 2, 3번 정도 간다.

헬스장을 들리지 않으면 자기 전에 꼭 스트레칭을 20분간 하고 잔다.

직업병으로 얻은 척추협착증이 있어서 운동을 꾸준히하지 않으면 다음 날에 고생이 심하다.

내일을 살기 위해서는 운동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씻고 출근을 하고,

금요일에 퇴근을 하면 친구들을 만나 술 한잔을 기울이고

토, 일요일이면 취미생활을 즐기고

그렇게 주말을 보낸 후 

월요일이 되면 또 출근을 하고..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모니터만 보고 앉아있으니 

점점 쳇바퀴 같은 생활이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주말에 친구들과 만나 술 한잔하는 것까지 다람쥐 쳇바퀴 도는 느낌이었다.


이런 삶의 끝에는 뭐가 있을까


개인적인 사무실 분위기는 점점 나를 지치게 만들었고,

회사에서 하루에 한두마디만 하고 오는 날도 점차 늘어갔다.


말이 줄어들 수록 

생각은 많아졌고

회사 옥상에 올라가서 하늘을 보며 한 숨 쉬는 일이 부쩍 늘어갔다.


점심 식사 후에 카페에 앉아 멍 때리며

"퇴근하고 싶다"라는 말만 번복하는 직장 동료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난 여기에 왜 있는 건가 생각도 많이 들었고,

이렇게 답답한 생활을 하는 것보다

나의 재능을 마음 껏 펼칠 수 있는, 내가 주체적으로 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 하고 싶어졌다.


회사 일 말고는 모든 것이 다 재미있어보였다.





생각이 현실이라 했던가.


일하기 싫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퇴사할 이유만 찾게 된다.


SNS에서 다른 사람들 살아가는 이야기를 접할 때면

어쩜 저렇게 일을 즐길 수가 있나, 나도 그 일을 하면 즐길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긴다.

나도 내 일을 즐겨봐야지 마음먹지만 쉽지만은 않다.


일하기 싫어증을 극복하기 위해서 유튜브에 있는 동기부여 강의를 몇 개 들으면서 작업을 한다.

정말 도움이 많이 된다.

그렇게 겨우 마음 잡고 일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상사의 호통과

클라이언트의 갑질에 

이 일이 맞는 걸까부터 시작해서 내게 디자인 감각이 있는걸까 

이 일이 진정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인건가 수 많은 의심이 머릿속을 어지럽혀 놓는다.



많은 고민을 하다가, 또 월급날이 되면 

'이렇게 돈이라도 모아야지' 생각에 잠시 퇴사 생각을 접어두고

'직장생활은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라며 어떻게든 더 버텨보려했지만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내 꿈을 찾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나기 시작한다.


만족스런 급여를 받고, 칼퇴근 후에는 운동을 하고, 

주말에는 문화 생활도 하면서 내가 꿈꾸던 삶을 살고 있었지만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다.


학창시절에 꿨던 꿈들을 다 실현했는데, 왜 행복하지 않을까. 

행복은 커녕 오히려 더 답답한 이유를 생각해보니 

내가 지금 이룬 모든 것들이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내가 학창시절부터 꿔왔던 꿈은 사회에서 말하는 "학습된 욕망"이었다.


내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내가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저 사회로부터 내려와 스며든 욕망이 내 욕망인 줄 알고, 착각하고, 그렇게 추구해왔다가

그 꿈을 이루고 나서야 '아. 이게 아닌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웹디자이너를 하려고 했을까 스스로에게 매일매일 질문을 던졌다.

포토샵이 좋았고, 무언가 내가 디자인 한 것이 실물로 나타날 때 뿌듯함을 느꼈었고, 여자가 아이를 키우면서 하는 일로 웹디자인 만한게 없다 생각해서 7년동안 웹디자인만 보고 달려왔다.


그런데 현업에서는 디자인이라는게 참 애매했다. 사람마다 보는 눈이 너무나도 달랐고, 내가 마음에 들어도 상사의 눈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소용이 없었고 고객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소용이 없었다. 점점 창작욕구는 없어지기 시작했고 근본적인 질문으로 들어갔다.


아이를 키우면서 일하기에 좋아서 웹디자인을 선택했다라....

난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고 아이는 언제 생길지도 모른다.

그 먼 미래를 위해서,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위해서 지금 나의 청춘을 희생하고 있다는게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굳이 이 길로만 살 필요가 없음을 느낄 때 쯤엔 나는 일에 대한 열정은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저 시간을 때우면 돈이 나오는데라는 안일한 생각에 하루하루를 연명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남들의 시선에 맞춰 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미래에 저당잡혀서 현재를 살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온전히 내가 가진 달란트를 잘 활용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계속 '나 자신'을 알아가는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나라는 사람의 성향에 대해서 알면 알 수록 '여기와는 맞지 않다'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나에 대해 알아가고,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몇 개월동안 고민을 거듭한 후에

'이 길은 아니다' 생각이 들었고,

남은 20대에 공부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때쯤,

공교롭게도 사내 정치에 조금씩 치이기 시작했고

나는 이 정치의 수혜자가 되긴 커녕 계속 부딪힐게 보여 미련 없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퇴사하는 이유를 꼽으라면 너무나도 많았지만 이 많은 이야기를 다 할 순 없었다.

많은 상사들과의 많은 면담을 거치면서 상대를 설득할 수 있는 이유를 골라서 말해야한다는 걸 느꼈다.

우여곡절 끝에 마지막 출근일이 정해졌다.


퇴사 전날.

디자인팀끼리 조촐하게 식사 자리를 하려고 했는데 직원 한 둘 모이더니 파견 간 직원들까지 모여서 퇴사를 축하해줬다. 같은 부서도 아닌데 먼 길까지 와서 인사해주시는 분들께 너무 감사했다.

특출나게 잘 한 것도 없고, 주위사람들을 그렇게 챙겨주지도 못 한 것 같았는데 이렇게 모인 걸 보니 그래도 직장 생활 못 했던 건 아니었구나 싶어 감회가 새로웠다.



마지막 출근날에는 함께 일했던 상사분들과 저녁을 먹으러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작별 인사를 하는데 이젠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괜히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렁그렁한 내 눈을 보고 당황하신 부장님은 얼른 마무리를 해주셨다. 다음에 프리랜서 일 있으면 연락하겠다고 전화 안 받으면 안 된다며 부장님께서 웃으며 말씀해주셔서 참 감사했다.



재취업하기 위해 마음 고생이 심했었고,

우여곡절 끝에 이 회사에 들어와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사회생활이 어떤 것인지 배울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앞으로 어떤 길이 펼쳐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내가 여태 하고 싶었던 걸 하나씩 이룰 거며, 그 여정이 내가 계획했던 대로 되지 않을지라도 그 순간순간을 즐길 것이며, 결국에는 내가 원하던 곳에 도착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전 05화 개발자 면접에서 디자이너로 채용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