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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채로운 윤슬 Feb 17. 2021

퇴사, 그 후

열번째 조각; 프리랜서 인생이 시작되다




퇴사하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해외여행도 가고

평생 못 갈 줄만 알았던 내일로 여행도 가서 잊지 못할 추억들도 만들고

학원을 다니며 영상 편집을 배워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간 관심있었던 인테리어 디자인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관련 자격증도 취득하며 알찬 시간을 만들어갔다.





가고 싶었던 대학원에 진학했고

새로운 길이 펼쳐질까 싶어 포부를 가득 안고 열심히 생활을 했지만

너무 가까이에서 봤던 탓일까,

꿈꿔왔던 일에 대한 환상만 점차 사라질 뿐이었다.




프리랜서의 장점: 출근이 없다
프리랜서의 단점: 퇴근도 없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다양한 일들을 했다.


오래 전부터 막연하게 꿈꿨던 고수익 프리랜서 업무를 따내서

주말 없이 매일 14시간 이상  하기도 하고,

외국 회사와 함께 일하며 웹 디자인부터 인테리어 디자인까지 참여해보기도 하고

디자인 관련 수업도 진행했고

쇼핑몰 관련 아르바이트, SNS 마케팅,

현수막/명함/청첩장/ppt 제작 등등의 소일거리도 가리지 않고 했다.


매달 꼬박꼬박 나오던 월급을 받아쓰다가

스스로 돈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다보니

남 밑에서 일하는 게 가장 쉬운 일이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꿈에 그리던 일을 하고

배우고 싶었던 것들을 배웠지만

행복한 순간은 찰나였다.


성취감은 잠시,

그 뒤에 따라오는 현실에 더욱 막막해지고 회의감만 몰려들 뿐이었다.











내가 꿈꿨던 일들이

나를 괴롭히는 일이 된다는 것을 느끼고,

꿈꾸는 것조차 두려워졌고.


지금 돌이켜보면 우울증에 빠졌던 것 같다.


참, 아이러니하지.


행복하려고 퇴사했는데

오히려 회사 다닐 때보다 더 힘든 시간을 보냈다.



일이라는 것은 생계를 위한 수단, 자아실현, 성취감을 위해서 하는 거라 생각했었는데


글쎄,

내게 있어서 일이라는 건

무의미한 일상을 조금이라도 더 버티게 해주는,

삶을 살아가게 해주는 하나의 시스템이었구나를 느꼈다.



세상은 어둡게만 보이고

항상 가슴이 답답했고

머릿속에는 미래에 대한 걱정만 가득했고

희망이라는 것이 비집고 들어갈 틈조차 없었다.


그토록 좋아하던

자기계발에 지쳤고, 불신까지 생겼다.

책과도 점점 멀어졌었다.


하루하루 겨우 버티며 지내고 있다가

지인의 조언을 듣고

마음 속에 품고 있던 마지막 버킷리스트를 이루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퇴사할 때 뭐할거냐는 직원들의 물음에 "미국가서 영어 공부해서 구글갈거다"고 농담섞인 말을 하면서도 '미국에 갈수나 있을까' 생각을 했었는데, 어찌어찌 가게 되었다.


퇴사하고 마지막 버킷리스트가 미국행이라 그런지

미국 가는게 너무 두려웠었다.

내게 남은 마지막 희망을 열어보고 또 실망할 것 같아서.

그 후엔 정말 삶을 살아가는 의미가 사라질 것만 같아서 가기가 두려웠는데

어떻게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도 한동안 우울해하면서

'일을 하고 싶다.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람 사는 건 지구 반대편도 똑같구나'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래도 환경이 바뀌면 만나는 사람들도 바뀌고 생각도 조금씩 바뀌게 되어 그런지

그곳에서 친구들을 하나둘씩 사귀게 되면서

삶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가지게 되었다.



Enjoy this moment.



이 말을 귀에 딱지 앉을 만큼 들었다.

내가 얼마나 미래에 대해 걱정이 많았고 한숨이 많았으면.

고리타분했던 내가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매우 혼란스러웠지만 몇개월동안 현재를 사는 법을 익히려 무진장 애썼었다.




미국에서 만난 친구들은 정말이지 욜로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었다.

주말에는 세상이 끝날 것처럼 신나게 클럽 다니면서 파티를 즐기고

평일에는 자기가 하는 일이 천직이라면서 일을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저게 진짜 욜로라이프구나. 싶었다.


미국에는 야근이 없는 줄 알았는데

밤 늦게까지 일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주말에 출근을 해도

직장에 대해 불만가진 모습을 볼 수 없었다.


"This is my job."

이라며 오히려 본인의 직업에 자부심을 느끼는 걸 보고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기하게도 여행을 출발할 땐 직업적 고민을 가지고 출발하는데

항상 여행의 끝엔 ‘디자인 계속하자’는 결론이 내려진다.


“넌 뭘해도 잘 될거야.”

“I believe in you.”라고 말하며

세상은 넓다고 기회를 잡으라 말해줬던,

내 디자인 작업물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친구들 덕에.




미국에서 혼자있는 시간을 가지면서

많은 사색을 했고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항상 환경탓 남탓만 했었는데

나를 괴롭혔던 모든 일들이, 나로 인해 생긴 일이었음을 깨닫고는

나의 부족함으로 그런 일들이 생겼구나 반성하게 되면서

앞으로는 남을 비난하는 일은 절대 만들지 않아야겠다 다짐했다.





한 동안 자기계발이 혐오스러웠는데

지금 깨달은 건

모든 것이 균형이 맞춰져야한다는 것.


목표만을 향해 달려가는 것도 지양해야하고

그렇다고 무기력하게 쳐져있는 것도 위험하고.


무기력하다 싶을 땐 자기계발서를 읽던 강의를 들을 필요가 있고

그렇게하다가 너무 과하다 싶으면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예전에는 목표만 보고 그 과정 중에 견뎌야할 고통에 괴로워했는데

끝내 이룬 목표도 날 행복하게 만들어주진 못했다.


이제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그 과정을 즐기려고 노력한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 하다보면

결국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앞으로는 내가 원하는 길이 펼쳐지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않으려고 한다.

언젠가는 하고 말테니까.

시기가 맞지 않아 늦춰진 것일 뿐이니까,

가장 완벽한 때에 가장 완벽한 것으로 내게 찾아올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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