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채로운 윤슬 Nov 05. 2019

개발자 면접에서 디자이너로 채용되다

여덟번째 조각; 취업 준비 이야기

서울에서 일을 그만두고 고향에 내려왔고

집에서 놀면 뭐하나싶어 취업교육을 듣게 되었다.


어느 날 강사 선생님께서 관공서는 직접 채용공고를 올리니

관공서 홈페이지를 자주 확인하라고 하셨고 그렇게 운 좋게 웹디자이너 채용공고가 뜬 관공서를 발견했다.

연봉은 높았지만 단순 업무에 계약직인 것이 마음에 걸렸다.


"여기는 어떨까요?"라고 강사님께 여쭤봤다.

"ㅇㅇ씨가 나온 학교 학과 교수님께서 여기 근무하신 경력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교수님 찾아 뵙고 정보 얻어보면 좋을 거 같은데요?"


강사님의 말씀에 오랜만에 교수님께 연락을 드리고 면담 약속을 잡고 학교에 갔다.


교수님을 뵙고 퇴사를 하고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말씀드리니까

'일하다가 안 하면 정말 답답하죠'라고 위로해주셨다.

공감해주시는 한 마디가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는지 모른다.


건강도 좋지 않았고,

백수 생활이 지겹고 답답해서 어떤 일이든 상관없으니

어디든 취업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교수님께서는 괜찮은 취업 자리가 있으면 연락주신다고 하셨다.

면담을 마치면서 나는 개발자도 상관없다고, 그냥 어디선가 일만 하면 된다고 말씀드리고 나왔다.


며칠 뒤 교수님께 연락이 왔다.

취업 포털에 올라가있는 IT회사가 있는데 꽤나 튼실한 중소기업이라면서

개발자 채용에 지원해보라고 하셨다.

물불 가릴 때가 아니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해서 지원을 했다.


그리고 얼마 뒤,

다른 공기관에도 개발자 자리가 났다고 교수님께 연락이 와서 지원 서류를 제출하러 갔다.

잔뜩 단장하고 포트폴리오를 들고 면접을 갔는데,

알고 보니 면접 자리가 아니라 서류 제출하는 자리였다.

실무와 관련된 간단한 질문 몇 가지를 하고 나오니 5분도 채 지나지 않았다.

본사에서 2차 면접이 있으니 연락을 따로 하겠다고 하셨다.


뭔가 허탈한 기분이었다.

입고 간 세미 정장도 마음에 걸렸다.


2차 면접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공기관에서 보는 면접이니 평범한 정장을 마련해야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정장을 사면 간절함이 더해져서

하늘이 더 많은 기회를 주지 않을까 하는 실날같은 희망이라도 잡고 싶었다.


정장을 사러 갔다.

둘러보는데 적은 돈이 아니었다.

살까 말까 고민하는 중에 문자 한 통이 왔다.

서류 합격자 발표 났으니 확인하라는 문자였다.

바로 메일을 확인해봤지만, 역시나 탈락 통보였다.


'나는 사회에 쓸모가 없는 존재인가...'

정장을 입으면서 겨우 우울했던 마음을 달래고 있었는데 한층 더 우울해졌다.


엄마한테 전화해서 정장 사러왔는데 살까 고민중이라 말하니 걱정 말고 사라고 하셨다.

고마운 마음 반, 미안한 마음 반에 괜히 대기업 서류 탈락했다고,

또 불합격이라고 투덜거렸다.

다음에 또 기회가 있을거라고 엄마가 달래주셨다.

엄마의 다정한 한 마디에 마음이 한결 놓였다.

엄마가 보내주신 돈으로 결제를 하고 정장을 사 들고 나오니

취업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간 기분이었다.



취업 박람회도 들리고,

취업 상담도 받으러 다니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은 다 해봤다.

이렇게 자꾸 발품을 팔아야 하늘이 감동하고,

내게 취업의 기회를 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한시도 집에 가만히 있지 않았다.



운 좋게도 취업박람회에서 웹 퍼블리셔를 찾는 인쇄 업체 부스에서 간단한 면접을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시큰둥한 반응이었는데,

준비했던 포트폴리오를 보여드리니 관심을 가져주시고

나중에 연락 주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시간이 흐르자 여기 저기에서 1차 합격 발표가 들려왔고,

최종 합격만 남겨둔 회사도 있어서 그곳에 가려고 마음을 먹고 있을 때쯤,

예전에 지원했던 IT회사에서 면접 보자는 연락이 왔다.

평소 같으면 '취업했습니다'라고 말하고 끊었을텐데

입에서는 생각과는 다른 말이 튀어나갔다.

"'네, 내일 면접 몇 시까지 가면 되나요?"

말을 이렇게 뱉은 순간,

'에이 뭐, 면접 보는 것도 경험이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다음 날 개발자 면접을 보러 갔다.


"디자이너 경력 있네요?"라고 내게 관심을 보이셨다.

그래서 나는 웹 디자이너로 일해도 된다고 말했고,

면접 끝에 마지막으로 할 말 있냐는 질문에

나는 디자이너 채용 계획 따로 없으시냐고 물었다.


면접관은 당황하신 것 같았고

분위기가 썩 좋지 않았다.


괜한 질문을 했나 자책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합격여부를 5시에 전화로 통보해준다고 했는데 5시가 넘었는데 전화 한 통 오지 않았다.

'또 떨어졌네.. 뭐 다른데 가면 돼'라고 마음을 달래고 있는데 문자 한 통이 왔다.


합격 문자였다.




회사 첫 출근 날.


출근했더니 프로그래밍 책을 나눠주시면서 자리 배정받기 전까지 공부하고 있으라고 말씀하셨다.

입사 동기들과 함께 조용히 프로그래밍 책만 뒤적였다.

프로그래밍 언어를 보니 '개발자를 해야하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너무 마음이 무거워졌다.


대학생 때, 코딩 동아리에 있으면서 '내 생에 다시는 코딩할 일 없을 거야' 생각했었는데

취업이 얼마나 절박했으면 개발자 면접을 봤을까..


그렇게 얼굴에 수심을 가득한 채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직원들과 식사를 하면서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나를 개발자가 아닌 디자이너로 채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갑자기 마음 속에 있던 먹구름이 싹 걷히고 빛이 보이는 기분이었다.


공기관 계약직에 지원할까 싶어 교수님을 찾아 뵈었고,

그러다 교수님께서 추천해주신 회사에 지원했고,

개발자 면접을 보러 갔다가 정규직 웹 디자이너로 채용되었다.

내 뜻대로 되는 것 같지 않았는데, 결국 내가 원하던 일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매일 출퇴근을 하면서 하루에 한 시간씩 걷게 되었고,

매일 걸었던 덕에 안 좋았던 건강까지 되찾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파견 갔던 선배 디자이너가 돌아왔고

디자이너가 하나 둘 늘면서 디자인 팀도 만들어져서 일할 때 외롭지 않게 되었다.



회사 생활에 적응할 때쯤, 교수님께서 연락 오셨다.

학교에서 후배들을 위한 멘토링 행사가 있는데 협조 가능한지 물어보셨다.

큰 강의실 앞에 선다는 게 부담스러웠는데

동아리 선배, 동기도 행사에 참석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용기를 냈다.


후배들이 몇 백명 앉아있는 강의실 앞에서

선배님들과 함께 앉아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를 하는데

감회가 새로웠다.


학교 다닐 때 학과 생활은 커녕 학교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취업 나간 선배들을 부러워하며

밥벌이나 제대로 하고 살 수 있을까 고민만 하던 내가,


꿈을 꾸게 되면서

목표가 생기고

책을 읽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원하던 곳에 취업을 해서

후배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리에 왔다는 게 신기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내가 꿈꾸던 것이 하나하나 천천히 이뤄졌다.

결코 원하는 것들이 로또처럼 터지는 게 아니었다.


생활을 하다가 문득문득 느끼게 되었다.

'어, 이건 내가 꿈꾸던 건데'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는 과정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전 04화 스타트업에서 살아남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