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채로운 윤슬 Dec 31. 2018

스타트업에서 살아남기

여섯번째 조각; 열정만 넘치는 우당탕 사회초년생

취업 교육을 받으면서 하루 빨리 취업해서 이 갑갑한 곳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이 악물고 포트폴리오를 준비했다.

취업 포털 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리자 여기저기서 연락이 왔다.


IT업체, 무역회사, 조명회사, 한의원, 보험사 등에서 연락이 온 걸로 기억한다. 내가 지원한 곳에서는 전화 한 통 오지 않았던지라 나를 찾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해도 신기했다.


총 세군데 업체에 면접 약속을 잡았다.

신기하게도 세 군데 면접이 모두 한 날에 잡혔다.


11월 말

막 추워지기 시작한 때라 정장을 입고 덜덜 떨면서 서울로 향했다.



면접 시간은 알차게 짜여있었다.

오전 11시 이태원

오후 1시 압구정

오후 4시 구로디지털단지



모란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환승에 환승을 거쳐 이태원역에 도착했다.

화장실에서 화장을 고치고, 준비해간 면접용 구두로 갈아신고 회사로 향했다.

머지않아 그 곳을 수도 없이 걸을 것이라는 것도 모른채 이태원 오전 특유의 한산함을 느끼며 걸어갔다.



회사를 찾기 힘들거라며 회사 앞까지 마중나오신 사장님.

사장님이 직접 주시는 따뜻한 쟈스민 티.

사무실을 뛰어다니는 귀여운 강아지 두마리와 사무실 안을 가득채우는 음악은 나의 마음을 사로 잡는데 충분했다.

출퇴근시간도 정해져있지 않고

매우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일하며 자기계발에 힘쓸 수 있다는 사장님의 말씀을 들으며 참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누다가 다음 면접이 생각나 서둘러서 나왔다.


성공한 기업의 성장스토리를 들을 때면, 나도 회사를 키우는데 일조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을 때였다.

무엇보다 돈이 아닌 꿈을 그리는 크리에이티브한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그것 때문인지 합격 통보를 받은 조건 좋은 회사들보다 분위기가 참 좋았던 스타트업 무역회사가 계속 눈에 선했다.

모험인가 싶기도 했지만, 조금이라도 어릴 때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에 입사를 결정했다.





[꿈의 직장]

회사는 탄력근무제로 출퇴근시간도 정해져있지 않는 참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외국 생활을 하고 온 직원이 많아 사장님 이외에는 모두를 "누구누구씨"라고 부르는 직급없는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개업한지 1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지난 몇 년간 사업 기반을 닦아놓았던 사업이라 매출이 40억이 넘는 알짜배기 회사였다.


정.말. 꿈에 그리던 회사였다.


첫 출근을 해서 책상에 앉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길었던 취업준비 끝에 드디어 내 책상이 생기다니!


사장님께서 직접 요리하신 점심을 먹고나서 설거지 거리가 쌓여있길래 두 팔 걷어붙이고 설거지를 했다.

입사 첫 날부터 설거지냐고 사장님이 말리셨지만 잘 보여야된다는 생각뿐이라 열심히 설거지를 했다.


회사생활이 어느 정도 적응되었을 무렵, 사장님은 해외 출장을 가셨다.

내가 맡은 업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사장님이 유일했는데 자리가 비게 되니 딱히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다. 뭘해야하나 고민하다가 면접보기 전에 시대에 뒤쳐진 회사 홈페이지를 보고 충격받았던 것이 떠올랐고, 회사 홈페이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 나이에 회사에 들어가면 커피 태우기에 정신 없을텐데,

업무 지시를 받지 않고 혼자서 이것저것 찾아하니 살짝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뿌듯함이 더욱 컸었다.


회사 홈페이지를 완성하고, 면접보면서 얘기가 나왔던 해외 사이트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사장님은 곧 개발자를 뽑아서 홈페이지를 만들겠다고 말씀하셨고, 나는 영어 공부를 해가며 웹 기획부터 디자인, 프론트엔드 개발까지 하며 웹페이지를 구축을 하고 있는데 어느 날 사장님께서 자체적으로 홈페이지를 만들기에는 시기상조인 것 같다며, 외국 쇼핑몰 솔루션을 사용해서 홈페이지를 다시 만들자고 하셨다.


영어로 잔뜩 적힌 홈페이지를 살펴보고, 메뉴얼을 찾아서 해석해가면서 익혀나갔다. 전자상거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 같아서 퇴근 후에는 비즈니스 관련 독서모임을 다녔고, 매주 저자 특강을 들으러 다녔다. 확실히 서울에는 지방보다 강연, 전시가 많아서 누릴 수 있는 건 최대한 누리려고 노력했었다.

서울에서 지내고 있는 학교 선배에게 연락해서 스터디도 시작했다. 나는 선배에게 반응형 웹에 대해 알려줬고, 선배는 내게 신기술이나 업계 동향에 대해 설명하면서 서로의 안목을 넓혀나갔다. 퇴근하면 공부하러 다녔고, 집에 오면 화이트보드 벽지에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잔뜩 적어두고 어떻게 하면 좋은 쇼핑몰을 만들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했었다.



입사하고 몇 주가 되지 않아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생긴 것만해도 기분 좋았던 나는 크리스마스 이브날 평소보다 일찍 출근해서 베이커리에 들렸다. 쿠키를 사고 포장지를 따로 받아왔다.

회사 근처 카페에 들러 포장지 위에 수정액으로 'Merry Christmas'를 써서 하나씩 정성껏 포장했다.

출근해서 아무도 오지 않은 책상에 쿠키를 하나씩 올려놓는데 기분이 좋았다.

한명씩 출근해서 왠 쿠키냐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참 뿌듯했다.



회사에는 야근도 없었다.

퇴근 후에 집에서 혼자 적적하게 있는 것이 싫어서 일부러 늦게 퇴근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면 가끔 사장님과 저녁을 먹었고, 사장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세상이 넓다는 것을 배워갔다.

그 당시 사회초년생이었던 나는

회사에 들어가서 월급을 받고, 프리랜서로 돈을 벌고, 훗날에는 디자인 회사를 차려서 돈 벌어야겠다는 생각만 하던 때였는데, 사장님께서는 세상에 돈 버는 방법은 정말 다양하니까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거듭 강조하셨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알아야한다'고 말씀하셨지만, 그 당시에는 내게 그렇다 할 신념이나 가치관이 없었던 때라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가슴으로 이해할 수 없어서 이야기를 흘려들었었다. 몇 년이 지난 후에야 사장님께서 하셨던 많은 말씀들이 떠올랐고, 철 없던 말단 사원을 키우려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던 사장님의 노고가 이제서야 보인다.




[쇼핑몰 구축 4개월만에 1억원을 벌다]

외국 쇼핑몰 솔루션으로 작업한지 한 달이 지났을까, 사장님께서 일단 한국 시장을 우선적으로 해야할 것 같다면서 하던 것을 접어두고 다른 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합류하게 된 팀은 국내 판매를 전담하고 있었다. 마케팅에 힘써보자는 의견이나와 SNS 마케팅을 시작하게 되었고, 모바일에서 바로 결제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쇼핑몰을 만들게 되었다.


마케팅과 쇼핑몰 구축에 관련된 잔업을 혼자 맡다보니 공부할 것 투성이었다. 

'차근차근 일을 알려주는 사수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정말 많이 했었던 것 같다.

쇼핑몰 구축에 필요한 것들을 찾아보고 보증보험에 가입하고, PG업체에 대해 정리해서 보고하면서 다양한 업종들이 참 많다는 것을 느끼며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차츰차츰 알아갔다. 관련 교육이 있으면 신청해서 들으러가는 등 할 수 있는 일에는 최선을 다했다.

쇼핑몰 운영을 시작하니 정신없이 바빠졌다. 정산 쪽에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오배송이 생기거나 클레임이 들어왔고, 한 번씩 정산으로 문제가 발생하면 홈페이지를 몇일 닫게 되는 다이나믹한 하루하루를 보냈었다.


바쁘긴 했지만 처음으로 고생해서 만든 쇼핑몰이라 회원이 한 명 한 명 늘어나는 것이 감사하고 신기했다. 출근하면 전 날에 가입한 회원들을 체크하고 몇 명이 늘었는지, 어떤 검색어로 유입했는지를 꼼꼼히 분석/정리했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난 그 시간이 행복했다. 그렇게 겨우 모은 회원들의 의견 한 마디 한 마디가 정말 소중하고 감사했다. 하지만 '좋은 상품을 저렴하게 제공하니까 고객이 우리한테 감사해야하지'라는 마인드를 가진 사장님과 상사 밑에서 점점 스트레스가 늘어갔다.


수평적 조직문화를 추구한다지만 회사에 상하구조가 없을 수가 없었다.

사장님이나 상사가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듣고 해당 업무에 대해 파악을 하고 있으면 수동적으로 일한다는 소리를 듣기 일쑤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상사가 반대하고, 아이디어를 내지 않으면 사장님께 주인 정신이 없다는 소리를 하루에도 몇 번씩 들어야했다.


일을 한참 배우고 싶었던 신입이었지만 물어볼 사람 없었고 혼자 몸으로 부딪히면서 하나하나를 해결해야만 했다. 포토샵으로 단순한 편집 디자인만 하는 내 모습을 보고있자면 그간 고생하며 배웠던 프로그래밍과 웹퍼블리싱은 무슨 소용일까, 웹디자이너에게 정보처리기사 자격증이 있으면 경쟁력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몇 개월간 도서관 들락거리면서, 아침에 눈뜨자마자 인터넷 강의를 보면서 겨우 취득한 정보처리기사 자격증이 빛을 볼 수 없는건가, 나의 가치를 몰라주는 곳에 있는 것이 아닌가 고민이 많이 되었다.

적은 급여에, 햇빛도 들지 않는 지하 사무실에, 혼자 타지 생활을 하는 외로움까지 겹쳐서 점차 지쳐갔다.

하루에도 수십번 그만둘까라는 생각만 했다.


사장님께서 언성 높이며 혼낼 때면 그간 쌓인 모든 서러움이 몰려들어 눈물부터 났다.

그런 일이 몇 번이고 반복이 되니 나도 나를 어찌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장님께 울면서 모든 이야기를 다 쏟아부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던 사장님께서는 단순 업무를 위해 나를 채용한게 아니라며, 적정 시기가 되면 약속했던 사업을 시작하겠다면서, 사무실은 계약이 끝나면 햇볕이 잘 드는 곳으로 옮길 계획이고, 바로 다음 달부터 인상된 연봉으로 급여를 지급하겠다고 약속하셨다.


내가 기획을 좋아한다는 걸 파악하신 사장님은 내게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회의를 주도하라고 하셨다. 회의 전 날이면 일주일간 정리한 쇼핑몰 유입정보, 최신 트랜드, 회원수 증감률, 매출 등을 정리해 파워포인트 자료를 만들었다.


환경이 조금씩 바뀌자 숨통이 트이나 싶었는데 그것은 오산이었다.

회의하는 날마다 거의 처참히 깨졌다.


하루하루 한 숨만 늘어갔지만 신기하게도 매출은 하루하루 늘어갔다.

늘어나는 회원수와 매출이 나를 버티게 했다.

그렇게 4개월이 지났을까.

쇼핑몰이 총 매출액 1억원을 찍었다.

원래 매출이 높았던 회사라 1억원이 큰 이슈거리는 아니었지만 다들 동기부여가 된 듯했다.

매출 하루 천만원 찍으면 소원들어주기, 해외여행가기 등 여러 이야기가 나오며 화기애애해졌다.



그렇게 마음 다시 잡고 열심히 일한지 얼마가 지났을까, 디자인 이야기하다가 또 의견충돌이 일어났다. 반대 의견이 나오면 상당히 방어적으로 나오는 나의 태도 때문에 언성은 점차 높아져 갔고, 사장님께서는 이런 식으로 하면 같이 일 못한다고 역정을 내셨다.

머리가 새하얘진다. 또 눈물이 흐른다. 이제는 대답보다 한 숨이 먼저 나온다.

울먹이며 상황을 설명했다.

사장님께서는 미안하다면서 너무 흥분했다면서 나가서 바람 쐬고 오라하신다.

이런 일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 같아서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장님께 면담 신청을 했다.



이전 03화 결핍은 성공의 열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