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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채로운 윤슬 Oct 28. 2022

왜 감정을 빼고 말하나요?

첫번째 심리상담



퇴근하고 밤만 되면 울었다.

회사 가기 싫다며, 오열을 하며 잠드는 날이 계속 되었다.


회사를 그만둘 수는 없었다.


벌써 몇 번째 회사인지, 여기서는 버텨야했다.

퇴사해도 지옥일테니까. 돈이라도 벌자 싶었다.

그리고, 부모님이. 엄마가 그렇게나 좋아하시는데, 여기를 나가면 엄마의 낙을 빼앗는 게 아닐까 싶었다.


밤마다 울었고, 아침에는 퉁퉁 부은 눈으로 회사에가서 웃으며 전화를 받았다.


점점 모든 게 버거워졌다.


업무가 밀려들 때면

숨이 턱 막히고 머릿속이 아득해지고

손이 덜덜 떨렸다.


약간의 자극만 생겨도 눈물이 흘렀고,

화장실에서 눈물 닦는 일이 잦아졌다.






하루하루가 지옥같았다.

또 우울증이 도지는 건가 싶어서 걱정이 되었다.


사내 게시판에서 보이던 심리상담 지원한다는 내용이 눈에 아른거렸다.

고민 끝에 용기내서 전화를 걸었다.

친절히 전화를 받으셨고, 공간 대여 서비스를 이용하여 회사 근처에서 보자고 하셨다.



상담 당일이 되었는데 컨디션이 상당히 좋았다.

상담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 날도 야근을 했고, 남은 몇몇 직원들이 회식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용기내어 약속있다고 말하니, 회식이 취소되었다.

눈치가 보였지만 상담이 우선이었다.



약속했던 장소에 도착했다.

낯설었지만 아기자기하면서도 따뜻한 공간이었다.


“여기.. 앉으면 되나요?” 묻고는

자리에 앉아서 인적사항을 기재했다.



"어떤 일 때문에 오셨나요?"

선생님은 부드럽게 물어보셨다.



나는 힘든 점을 두서 없이 쏟아냈다.


날 힘들게 하는 사람 없냐는 질문에 눈물이 왈칵 흘렀다.

힘들었던 부분에 대해 말하다가 괜히 멋쩍어서 “인간 관계는 다 힘들어하는 부분이죠..?”라고 했다.


선생님은 다툼이 생기면 어떻게 대처하냐는 질문하셨고

나는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잠시 그 상황을 피한다고 말했다.


친한 친구 있냐는 질문에

‘나 친구 많은데?’싶었다가 '아닌가, 진정한 친구가 몇이었지.' 생각하다가

세네명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 마저도 대화가 안 되고 오히려 최근에 알게 된 사람들과 대화가 더 잘된다고 했다. 그래서 요즘 친구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는데 오래 만났다고 친구가 아닌 거 같다고 했다.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러고는 문득 드는 생각.

난 친한 친구가 많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에게 난 무슨 존재일까.


그냥 연락오면 만나서  한끼하고 마는 사이일까

나는 진정한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는 걸까



"요즘은 최대한 감정을 빼고 불만을 말하고 있어요."

선생님은 갸우뚱하시면서 "왜 감정을 빼요?"라고 물었다.


…그러게,

난 그게 자랑이라 생각했는데.

왜 내 감정을 부정하고 억눌러왔던 걸까.



그러다가 엄마 이야기, 회사 이야기, 업무 이야기가 나오면서 내가 받는 스트레스에 대해 분석하기 시작했다.


업무가 과중했고 팀원들도 예민했고 누구에게 기댈 수 없는 구조였다. 신규 사원이 맡기에는 과중한 업무까지 덥석 덥석 받고 있었다. 작은 회사에서 일하던 습관을 여기에서도 버리지 못하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까지 등에 지고는 혼자 끙끙 앓았다. 가끔 업무가 많다고 얘기를 했지만 앞으로는 일이 더 많아질텐데 벌써부터 그러면 어떡하냐는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일을 쳐내는 것도 능력이에요. 못하겠으면 못 하겠다 말해야죠. 혼자 다 잘할 수 있으면 혼자 일하지 회사를 왜 만들고 팀을 왜 구성하겠어요."


선생님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게는 주어진 시간이란게 있는데 혼자서 다 처리하려고 했을까. 모르면 모르겠다 도움 요청을 할 줄 알아야했는데 혼자 괴로워하고 있었다.



"처음엔 누구나 실수를 해요. 처음부터 잘하려고 하는 마음이 스스로를 괴롭힌 것 같은데 잘해야한다는 생각을 놓아요. 그리고 엄마 눈치를 많이 보는 것 같은데 엄마의 인생을 살지말고, 스스로의 인생을 살아요. 내 인생이잖아요."




한 시간의 상담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컨디션이 좋은 줄 알았는데, 눈물을 한바탕 쏟고 나왔다.

그리고 심리테스트 문항지를 받고 다음주를 기약하며 나왔다.








상담 후 마음이 많이 가벼워진 것 같았는데,

상황이 달라진 것은 없었다.


업무를 하면서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데, 자꾸 까먹고

자잘한 실수를 너무 많이 하고

겨우 정신을 붙잡고 업무를 하다가 회사 메신저가 뜨면 머리가 새하얘졌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때 옆에서 사수가 불렀다.

내가 했던 업무에 문제점을 짚어주셨다.

'아, 맞다. 나 왜 이렇게 했지. 전에는 잘 했었는데, 나 왜 이렇게 병신머저리 같지' 생각이 들었다.

나 스스로가 너무 실망스러웠고, 한가지 업무에 집중할 수 없는 환경이 지독스럽게 괴로웠다.


다시 책상으로 돌아왔고,

업무를 하려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몸이 굳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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