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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채로운 윤슬 Feb 22. 2023

공황장애로 퇴사했다.

세번째 심리상담


사직서를 쓰기 위해 회사가는 길에 이미 불안 증세가 다시 심해지기 시작했다.


숨이 막혀왔고, 손이 떨렸다.

길을 걸어가다가 어지러워서 한참을 쪼그려 앉아있다가 회사 옆 카페로 들어갔다. 몸이 굳어서 한참을 가만히 앉아있었다. 팀장님과 선임님이 오셨고, 나는 말도 잘 안 나와서 인사를 하는둥 마는둥했다. 팀장님께서는 업무 때문에 바쁘신지 노트북 모니터를 주시하시면서 사직서를 작성해달라고 하셨다.



사직원을 보자마자 눈물이 흘렀다. 나는 퇴사하기 싫다고 말하며 한참을 울었다.

팀장님께서는 사직서를 옆으로 치우시고 차를 건네주셨다.

카페에 사람들도 많았지만, 비련의 주인공인 된 것마냥 울었다.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쓰는 나였지만 개의치 않았다. 여기까지 오려고 얼마나 애썼는데, 지난 10년간의 고생들이 물거품이 되는 기분이었다.



회사 가기 싫다고 생각했었는데 회사가 너무 가고 싶었나보다.

일이 너무 힘들었는데 일이 너무 좋았었구나 싶었다.


애쓰다보니 힘이 너무 들어갔었던 것 같다.

입사 한달이 채 되지 않았는데 야근을 자처했고 휴가를 가서도 회사 메일을 체크하며 돌아가서 해야할 업무들을 정리했다.

중요한 업무보다 급한 일을 하기에 바빴고, 시간에 맞춰해야하는 일들을 제시간에 끝내기보다 완벽하게 하려고 계속 붙들고 있었다. 혼자 처리하기 힘든 일은 도움을 요청하면 되었는데 알량한 책임감에 혼자 끙끙 앓았던 것이었다.


책임감 강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는데 하나도 책임지지 못하고 나왔다.


사직원을 작성하고, 팀장님께서 챙겨주신 집기들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서 고향으로 내려갈 준비를 했다.

몇년간 지낼 줄 알았던 원룸을 부동산에 다시 내놓았고 마지막 심리 상담 날짜를 잡았다.



참 힘든 시간을 보냈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나, 주변의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숨쉬는 것조차 괴로우니 모든 걸 끝내버리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

정말, 그대로 사라지고 싶었다.


처음으로 느꼈던 것 같다.

의지로 되지 않는 게 있다는 것을.






상담 선생님을 뵙고 그간 정리했던 생각들을 줄줄 나열했다.


더 이상은 타인에게 과한 친절을 베풀지않겠노라

앞으로는 엄마를 위해 사는 게 아니라 내 삶을 살것이라고.

미래를 걱정하며 살기 대신에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이 될 것이고.

힘든 일이 있으면 더 이상 쌓아두지 않고 표현을 하겠다고하니 선생님은 미소를 지으셨다.



나는 도파민 중독자였다.

에너지도 아껴쓸 줄 알아야했는데 너무 몰아쳐서 써버렸다. 성공을 위해 달려가고, 그 성공을 이루고는 '내가 진정 원한 게 아니라 세상이 요구하던 것'임을 깨닫고 무너지길 반복해왔었다.


상담 선생님께서는 고향에가서도 상담을 받는 것을 추천하셨다. 상태가 썩 좋지 않아 상담을 받아야한다고 하셨다.

모은 돈 하나 없이 일을 그만두게 되는 바람에 주기적으로 상담받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나는 불편한 마음을 꺼내기 싫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상담을 좋게 마무리하고 싶었다.

마치 영화의 해피앤딩처럼.





퇴사하고나서 타부서 직원들이 연락이 왔고 퇴사 선물을 들고 집으로 찾아왔다.

만나자마자 줄 게 있다며 눈 감으라더니 꽃다발을 내게 건넸다. 그리고는 퇴사축하송을 길거리에서 크게 불러줬다.

‘퇴사가 축하할 일인가.. 앞으로 먹고 살게 막막한데’ 싶었지만, 꽃다발 색상을 보고 내가 생각났다는 말이 참 예쁘게 느껴졌다.


그 친구는 작은 원룸에 들어오자마자

너무 아늑하다고, 교회 언니 집에 온 거 같다고 하더니 기도를 하자고 했다.

그러고는 “사원님 미래에 축복을 더해달라”고 기도를 했다.


이 힘든 순간조차 예비하신 길이라면, 앞으로 어떤 큰 선물을 주실까 기대감이 생겼다.


희망이 얼마나 중요한지,

희망 하나로 힘든 순간을 버텨냈고 한층 단단해질 수 있었다.








어느정도 기력을 회복하고나서 고향에 내려가 한 동안 푹 쉬면서 속에 쌓아뒀던 온갖 감정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눈물이 나면 울었고, 화가 나면 화를 냈다. 그동안 감정을 억눌렀기에 화라는 감정조차 오랜만에 느껴져서 요동치는 감정을 주체하는 것이 힘듷어 속상했지만 그저 감정이 느껴진다는 것에 감사하려고 했다.


나 스스로도 감당하기 힘든 순간이었기에, 본의아니게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이게 아닌데' 싶었지만 속에 있는 감정을 지금 꺼내놓지 않으면 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살기 위해서 발악을 했던 순간이었다. 그렇게 못난 내 모습을 보면서도 옆에서 붙잡아주던 가족과 지인들에게 너무 고맙고 미안했다.



어느정도 감정이 추스려졌을 땐 도시를 떠나 자연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참 많이 들어서 아빠를 따라 시골 농장을 종종 들렸다. 그 곳에서 멍하니 하늘을 보고, 풀벌레 소리를 듣고, 냄비밥을 하고, 풀을 베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는 작은 성취감을 느끼기 위해서 다양한 소일거리들을 찾았다.

나노 블럭을 하고, 보석 십자수를 하고, 자이언트 얀 뜨개질로 가방도 만들고, 꽃시장에 들려 꽃을 한아름 사들고와 집에서 꽃꽂이도 하고, 베이킹도 했다.

그렇게 하나하나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내면서 나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힘을 얻기 시작했다.



작은 물 한 컵을 들고 있는 것은 크게 힘든 일이 아니다.

하지만 물 컵을 한 시간 들고 있어야한다면?

이 물컵을 하루동안 들고있어야한다면 팔이 저려오기 마련이다.


걱정 또한 그런 것이었다.

지금은 아주 작고 사소한 걱정이겠지만, 떨쳐버리지 않으면 무게가 더해진다.



앞으로는 걱정 대신 준비를, 그리고 미래를 집중하기보다 지금 주어진 현실에 충실하기를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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