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선배에게 연락했고, 만나서 커피 한 잔하고 같이 학교에 갔다가 어쩌다보니 회식 자리까지 참석하게하게 되었다. 회식 자리에서 오랜만에 만난 선배가 지인분이 디자이너를 구한다고했다. 나는 '일단 해보자' 생각에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포트폴리오를 챙겨들고 면접을 보러갔다.
선배 덕분에 무겁지 않은 분위기에서 면접을 봤다. 이사님께서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냐고 질문하셨고, 나는 다음달에 가능하다고 했다.
이사님은 "별로 급한 게 없나봐요?"라고 물어보셔서 나는 "마음만 먹으면 갈데는 많으니까요."라고 대답했다.
이사님은 나의 당돌함이 마음에 드신건지 이력서를 다시 훑어보시더니 빠른 시일내에 출근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몇일 고민을 하다가, 어차피 다닐 회사라면 일찍 다니는 게 나을 것 같다는 판단에 다음주 월요일부터 출근하겠다고 전화드렸다.
다시 사회 생활을 시작하려니 약간 불안했다.
아직도 예민한 구석이 남아있었고, 스트레스에 취약한 상태였다.
엄마는 세상에 다시 나가는 딸이 걱정되었던 건지, 한의원을 추천해주셨다. 나는 한의원에가서 그동안 있었던 증상들을 말했다. 전형적인 공황장애 증상이라 하셨다.
'아.. 공황장애 맞구나.'
애써 외면해오고 있었는데 뭔가 약간의 후련함이 들었다. 그리고 한약을 지어왔고 꾸준히 복용했다.
약이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매일 아침 저녁으로 먹었고, 회사 생활에 제법 적응해나갔다.
입사하고 얼마 후 워크샵이 있었다. 워크샵 세미나에 참석해 회사 업무에 대해 파악하고, 앞으로 어떤 비전을 가지고 나아가는지 들었다. 밥을 먹으며 직원들이랑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멋진 풍경을 보고 사진 찍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결이 맞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를 느꼈다. 내년에 우수사원이 되고싶다는 소소한 목표도 생겼다.
회사에 조금 적응하니 업무가 하나둘씩 쌓여갔다. 이사님께서 내가 써놓은 업무 일지를 보시더니 말씀하셨다.
"윤슬아, 업무 하나 끝내놓고 다른 거 하자. 일단 지금 하는 거 먼저 마무리해."
나는 멀티테스킹이 체질이라며, 해야할 업무가 쌓이면 조금씩 돌려가며 하는 스타일이었는데 어쩌면 이런 습관들이 나를 혼란과 근심으로 몰아넣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해야할 것을 기록했고, 첫 줄부터 하나씩 지워가며 차근차근 업무를 해나갔다.
회사에서는 아날로그 출퇴근 기록지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제껏 다닌 회사에서는 사원증을 기계에 태깅했었는데, 왠지 알바할 때 기억이나서 친숙하면서도 새로웠다. 출퇴근시간이 기록된 카드를 보면서 꾸준히하고 있음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 약간의 성취감이 들며 자존감도 차츰차츰 쌓여갔다.
퇴근을 하고 주임님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갔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배를 채운 뒤 LP바로 자리를 옮겼다. 그 곳에서 음악을 듣고 있는데 주임님이 질문을 꺼냈다.
"요즘 책을 읽고 있는데 말버릇에 대한 내용이 있더라구요, 혹시 윤슬씨 말버릇은 어떤게 있나요?"
말버릇..?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어떤 말을 자주 했더라.
문득 '귀찮다는 말은 안 하는 게 좋아'라는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맞다.
나는 '귀찮다, 피곤하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고 있었다. 매사에 열정을 쏟던 예전과 다르게 모든 것을 귀찮아했다. 그런 말이 나를 더욱 움츠러들게 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앞으로는 좋은 말을 담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 회사생활에 제법 익숙해졌고 상사에게 혼나는 일이 조금씩 늘어났다. 업무 중에 갑작스럽게 추가적인 업무가 생기면 머리가 새하얘지는 일이 또 반복되었다. 이러다가는 문제가 생길 것 같아 공황장애가 있어 약을 복용하고 있다고 이사님께 말씀드렸다. 병을 숨기고 취업을 한 것 같아서 죄송했다.
"아픈 부분 이야기해줘서 고마워."
이사님의 배려심에 사뭇 놀랐다. 그렇게 이사님은 업무 강도를 조율해주셨고, 다시 회복새로 돌아왔다.
정규직만 다섯번째, 프리랜서 포함 비정규직으로 몸 담은 회사까지 치면 10군데는 경험해봤지만 이렇게 사람이 좋은 회사는 처음이었다. 직원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성실히 일했고, 그런 직원들을 배려해주는 상사가 있었다. 회사에 장기근속자가 많은 이유를 체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회사에서도 버티기 힘든 컨디션이었다. 업무는 계속 생겼고 일러스트 작업을 하는 중에 파일 용량이 커서 컴퓨터가 멈추는 바람에 하루에도 몇 번씩 껐다 켜면서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커피는 마시지 못하니 녹차와 홍차를 엄청 마셔댔다.(녹차와 홍차에도 카페인이 소량있기에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땐 그마저도 먹지 않아야한다고 의사선생님이 나중에 말씀해주셨다)
나는 소음에 점점 더 예민해져갔고, 뒷자리에서 들리는 "아씨..."하는 소리에 몸이 움츠러들었다.
하루하루가 다시금 벅찼다.
답답한 마음에 사무실에 나와있는데 다시 들어갈 용기가 안 났다.
들어가면 또 숨이 멎어버릴 것 같았다.
'또 시작이네..' 너무 절망스러웠다. 이사님께 전화드리고 회사 근처에 있는 정신의학과에 방문했다. 양약은 내성이 생겨서 좋지 않을거라고, 진료 기록에 남아 나중에 발목 잡히지 않을까 우려되어 부모님께서 반대하셨던 병원에 아무 생각없이 들어갔다. 일단 살고 봐야할 것 같았다.
병원 대기실에서는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여기가 뭐라고 그렇게 오기가 힘들었던 걸까. 약간의 기대감을 가지고 진료실에 들어갔다. 의사 선생님은 내가 익히 알고 있는 공황장애에 대해 설명하며 나의 하소연에 기계적으로 대답하셨고, 심각한 수준이 아닌 것 같다는 진단을 받고 약 두알을 처방 받고 병원을 나왔다.
하나는 세르토닌을 나오게 하는 약이니 자기 전에 복용하고, 나머지 하나는 응급시 먹으라고 하셨다. 응급시 먹으면 30분 뒤에 약효가 나타난다고 했다. 약을 먹지 않아도 그 상황에서 벗어나서 30분이지나면 안정을 찾았는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약을 먹었고, 나른해지는 기분이었다.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월요일 아침, 혼자서 회사 청소를 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청소겠구나'
몇 시간 뒤, 오전에 외부 업체 미팅이 있었고 사무실이 소란스러워지면서 큰 소리가 오갔다.
큰 소리가 듣기 싫었다. 머릿속이 아득해져온다.
과호흡이 시작되었다. 약을 먹으려고했는데 몸이 굳어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으아아아악!"
나는 비명을 지르면서 온몸을 웅크렸다.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사장님이 오셔서 괜찮냐고 등을 두드려주셨다.
몸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렸다.
"가만히 둬 주세요."
덜덜 떨면서 말을 겨우 뱉었다.
사장님은 바닥에 떨어져있는 정신과 약을 주워 책상에 올려주셨고,
나는 주임님의 부축을 받아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비상계단에 앉았다. 주임님이 가져온 약을 삼켰다.
30분 뒤면 괜찮아지겠지.
주임님이 괜찮냐고 조심스레 물어왔다.
"이러는 모습보일까봐 전에는 회사 출근도 못 했었는데.. 바닥을 본 것 같아서 오히려 후련하네요."
"다들 말하지 못한 아픔을 가지고 있나봐요."라고 주임님은 대답했다.
몸이 조금 풀렸을 때 건물 밖으로나가 내가 좋아하는 조용한 공간으로 갔다. 밖에서 햇볕 받으며 바람쐬고 있다보니 약효가 돌았는지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벚꽃이 만개해있었다. 주임님은 떨어지는 벚꽃을 보다가 손을 뻗었다. 벚꽃 잎 하나가 주임님 손에 떨어졌다. 주임님은 활짝 웃으며 기뻐했다.
그 모습을 보니 뭔가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작년에 처음 발작 증상을 겪었을 때는 자책만 했었는데, 이제는 공황장애가 어쩌면 나와 평생 함께해야하는 친구일지도 모른다 싶었다. 그냥 이 친구를 잘 달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임님은 사무실에 들어가서 상황 보고를 하고 내 짐을 들고 나왔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었다. 이렇게 살고 싶지도 않았다. 뭔가 변화를 줘야할 것 같아 집에 도착하자마자 심리상담 센터를 알아보고 예약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