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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채로운 윤슬 Nov 08. 2022

버티는 게 능사가 아니었음을

두번째 심리 상담

두번째 심리상담이 시작되었다.

선생님은 "일주일간 어땠어요?"라고 부드럽게 물어보셨다.


나는 일주일간 회사를 출근하지 못 했다고 답했고, 곧 사직원을 작성할 것 같다고 했다.







공황 증상이 심해져서 일주일간 출근을 하지 못 했다.



일주일간 나 스스로도 이해되지 않는 일이 많았다.


출근길에 지하철 역사에서 사람들이 무서워서 주저 앉아서 울었다.

뒤에서 수십개의 칼날을 들고 나한테 다가오는 기분었다.


햇빛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 들어가면 불안해졌다.

조금이라도 신경 거슬리는 소리가 들리면 짜증이 확 올라오면서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사람 많은 곳이 싫었고, 무서웠다.


그래도 이 두려움을 마주해야할 것 같아서 저녁 8시 모두가 퇴근했을 법한 시간에 회사를 갔다.

예상했던 대로, 로비에서부터 덜덜덜 떨면서 눈물이 흘렀다.

사원증을 찍고 들어가서 엘리베이터를 타니 과호흡이 시작되었고 쿵쾅대는 마음을 겨우 진정시키며 사무실에 들어갔다.


야근 중이던 사수를 만났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아 사수 다리를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는 웅크린 채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한참을 있었다.



나는 정신이 반 쯤 나가서 해야되는 업무를 주절주절 말했다.


지금 하는 프로젝트 마무리를 하고 싶다고,

그게 안되면 지금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계약만이라도 할 수 있게 재택근무를 제안했지만 사수는 건강 먼저 챙기는 게 좋지 않겠냐고 했다. (다음 날 팀장님께서도 전화로 업무 특성상 재택은 힘들다고 하셨다.)


이런 상태로면 회사에 출근할 수 없을 것 같았고, 다른 사람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너무나도 싫었다.

어쩌면, 지금 회사에 들어오는 것이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충 짐을 싸들고 나왔다.


회사에서 나오는 길에 보안 검색대에서 잡혔다.

회사 로비에서 짐을 다 펼쳐놓고 수색을 받았다.


하...

매번 멀끔하게 옷 입고 당당하게 걸어가던 그 곳인데 헝클어진 머리에, 울어서 부은 얼굴에 대충 걸쳐 입은 옷까지. 그 상황이 지독하게 느껴졌다. 수치스러웠다.



지난 세월을 보상받는 기분이 든지 몇개월이 되지 않은 순간, 모든 것을 다 잃은 기분이었다.


'나 진짜 열심히 살아왔는데.. 내가 뭘 잘 못한거지'

일상 생활까지 버거워지니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생긴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부정적인 생각이 하루에 수십번도 더 떠올랐다.

모두가 본가에 가서 쉬라했지만 철저히 혼자이고 싶었다.


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게 너무 지치는 일이었고

그대로 돌아가면 당장은 힘든 부분이 덜어지겠지만 성장하지 못하고 계속 그대로의 나로 머물러 있을 것 같았다.


일주일동안 정신 추스리는데 시간을 보냈다.

하루에 10km, 15km를 걸으며 부정적인 생각을 떨치려 무던히 애썼다.







일주일 간의 이야기를 듣던 선생님은

감정을 꾹꾹 눌러담다가 이제는 화라는 감정도 잘 못 느끼는 내가

이 화가 어떻게 분출될지 두려워서 불안에 떠는 것 같다고 했다.



평생을 쌓아왔던 스트레스가 여기에서 터진거라고 했다.


대인 관계에서 스트레스 받는 일이 생기면 회피하는 성격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던 걱정과 불안으로 언젠가는 마주할 일이었다.


하루라도 젊을 때 이 일을 겪고 회복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께서는 적성 검사를 한 결과지를 보여주면서 나는 새로운 것에 대한 자극추구가 심한 사람이라고 했다.

자극 추구가 심한 사람은 반복적인 업무를 하는 회사와 맞지 않는다고 했다. 하기 싫은 일을 꾸역꾸역하면서 참다가 이런 상황이 왔다고 했다.


앞으로는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하라고 하셨다.

세상은 내게 하기 싫은 일도 참으라고 했는데...



정규직만 따져도 벌써 네번째 회사였다.

이것도 적응 못하면 세상에서 손가락질 받을 것 같아서  OJT하면서도 회사가 맞지 않다고 느끼면서도 외면하고 참아왔던 게 떠올랐다.

나 스스로를 실패자라고 생각하며 좌절했었는데, 쓸데 없이 타인과 비교를 하며 스스로를 괴롭히며 살아왔었다.


테스트 결과지를 보니 유능감도 많이 낮은 상태였고, 건망증이 심해서 약을 복용해야할 상태라고 했다.

그정도 심각한 줄 몰랐는데 뇌가 과한 스트레스로 셧다운 한거라 설명해주셨다.

업무가 하고 싶었지만 업무를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선생님과 상담을 통해서 잊고 있었던 과거의 아팠던 기억들까지 꺼내게 되었다.

내가 지금 아픈 이유가, 오랫동안 축적되어왔었구나, ..



숨이 붙어있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주일을 보냈었는데

상담이 끝나고, 선생님은 기분이 어떠냐 물으셨다.


나는 속이 후련하다고 했다.

그리고 이 시간이 성장의 시간이 될거 같다고 말하고 미소를 지었다.


선생님은 인자하게 웃으시면서

맞다고,

하지만 상처가 낫기 위해서는 상처를 씻어내고, 살을 찢어 고름을 빼내야한다고

그 과정은 참 힘들거라 하셨다.



그리고 고향에 내려가기 전에 마지막 상담 날짜를 잡고 두번째 상담을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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