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 타고 세계일주]
한 번 생각해 보자. 다른 사람의 눈을 제대로 쳐다본 적이 있는지. 전인미답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 세상에서 신기하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만 눈이란 존재는 더욱 신기하고 신비한 존재다. 우리는 눈이라는 감각기관을 통해서 세상의 모든 것들을 본다. 지금 내 눈앞에 펼쳐져 있는 풍경 또한 마찬가지다. 개미들이 줄지어 지나가는 모습, 성모상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는 노부부 그리고 핸드폰 속 만화 주인공에 영혼까지 내어줄 정도로 빠져있는 꼬마까지. 우리들 모두는 각자만의 시선으로 세상의 전부를 본다. 내 눈에 들어온 것. 그것이 그 순간 세상의 전부일지도.
이렇게 세상의 전부를 담는 눈이 가지는 가장 아이러니한 속성은 자신을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다는 눈이 스스로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은 역설적이면서도 참 인간답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들의 고민은 잘 해결해 주지만 자신의 고민에 대한 해답은 잘 찾지 못하는 우리 인간을 닮아서 정이 간다. 강한 사람도 때로는 약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눈도 약점이 있는 셈이다. 그래서 우리 인간들은 필연적으로 나와 함께 해줄 사람을 찾는다. 꼭 사랑하는 연인이 아니더라도 나와 시간을 보내줄 친구들,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들이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눈의 시선에서는 ‘내 눈을 바라봐줄 사람이 필요하다’로 표현될 수 있겠다.
올리비아 핫세는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라는 어느 한 기자의 질문을 받았을 때 답변 대신 기자의 눈을 갑자기 가린 뒤 자신의 눈색깔이 뭔지 물어봤다. 당황한 기자가 답을 하지 못 하자 핫세는 그제야 답을 주었다. “지금의 남편은 내 눈이 초록색인 것을 알아본 유일한 남자“였어요. 나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고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알아채고 공감해 주는 사람. 나의 눈동자 색깔이 어떤지 기억해 주는 사람. 내가 바라볼 수 없는 나를 바라봐주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그 존재가 소중한 이유는 다른 사람의 눈을 바라보는 것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사람의 눈을 바라본다는 것, 즉 그 사람을 기꺼이 알아가려고 한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고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것이 우리가 다른 사람의 눈을 바라본 적이 있냐는 질문에 쉽사리 답을 못 하는 이유일 것이다.
의미 있는 경험은 의도되지 않을 때 마주하는 경우가 많다. LA 세리토스에서의 태권도 공연 역시 마찬가지였다. 동기들은 디즈니랜드, 유니버셜 스튜디오 그리고 할리우드같이 화려한 곳을 구경하고 있을 때 우리 바보들의 합창단은 한적한 도시 세리토스로 향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을 위해 공연하기 위함이었다. 부끄럽게도 자랑스럽기보다는 아쉬움이 컸는데 여행할 시간을 빼앗겼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새하얀 제복에 선글라스를 쓰고 마치 연예인처럼 할리우드 이곳저곳을 누벼야 할 시간에 공연 대기장 구석에서 새하얀 도복을 입고 시간을 때우는 게 아쉬웠다.
그래도 첫 공연이라는 사실이 괜스레 기대되고 떨리긴 했다. 게다가 군악대, 의장대와 함께 하는 공연에서 우리가 피날레를 맡는다는 사실이 좀 부담이 됐다. 우리 실력은 그 정도가 아닌데 괜히 비웃음만 사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런 긴장과 우려를 가지고 우리는 무대에 올랐다.
무대에서는 관객석이 보이지 않았다. 무대를 비추는 강렬한 조명 때문이었지만 떨리는 것도 한몫했다. 내가 지금 태권무를 추고 있는 건지 허우적거리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고, 격파를 잘했는지는커녕 공연을 어떻게 끝냈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어찌어찌해서 공연을 끝내고 가쁜 숨을 가다듬고 있을 때 어둠 속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제야 관객석이 우리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는 우리를 향해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시는 나이 지긋한 참전용사 분들이 계셨다. 그때였다. 눈물이 글썽이는 푸른 눈과 마주쳤던 것이.
눈물과 미소가 공존하는 그 푸른 눈에서 나는 그들의 벅찬 감정이 느껴졌다. ‘어딘지도 몰랐던 한국이라는 곳에서 내 소중한 전우들을 떠나보내고 나 스스로도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까지 지키려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네요. 그 아무것도 없던 나라가 미국에 찾아와 공연까지 해줄 정도로 성장했네요. 내 젊은 시절의 참전이 의미가 있었네요.’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 벅찬 감정은 나에게도 다가와서 ‘감사합니다. 아무런 상관도 없는 머나먼 곳의 우리들을 위해 목숨 바쳐 나라를 지켜주셔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눈을 볼 수 없지만 그분들께서 내 눈에서 그 감정들을 읽을 수 있으셨길 빌어본다.
서로의 눈을 바라본다는 것은 상대의 존재를 인식한다는 것을 넘어 나의 존재도 인지하는 행위다. 한없이 가볍게 느껴졌던 내 삶이 조금은 무게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인생이란 것, 꽤 잘 살아야 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