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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이사는이야기 Dec 04. 2023

Ep.29 남미 미녀가 같이 놀자고 한 건에 대하여#1

[군함 타고 세계일주]

아름다운 여행지에서 아름다운 사람을 우연히 만나는 것. 그것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면? 이것만큼 우리를 애타게 하고 설레게 할 상황을 여행 중에 만날 수 있을까? 마치 영화 비포선라이즈(1996)처럼 말이다.


영화 비포선라이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시리즈인 비포 시리즈의 첫 영화다. 비포 시리즈는 비포선라이즈-비포선셋(2004)-비포미드나잇(2013)으로 이어지는 3부작 영화로 각각 20대, 30대, 40대의 사랑을 그려낸다. 30대 배우가 1~2년 간격으로 20대, 30대, 40대의 모습을 연기한 게 아니라 실제로 각 나이에 맞게 약 10년 정도의 텀을 두고 영화를 찍었기 때문에 더 몰입감이 있다. 그들의 모습과 대화에서 그들이 살아왔던 세월의 깊이가 느껴진다. 어느 한 남녀의 기나긴 사랑의 인연을 직관하면 이런 느낌이 들까.


나는 개인적으로 3개 시리즈 중 두 번째인 비포선셋을 가장 좋아한다. 노을이 지는 아름다운 파리의 배경, 각자의 가치관을 공유하는 대화도 이 영화를 좋아하게 된 이유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내가 30대가 되어서 이 시리즈를 만났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30대로서 삶을 대하는 자세, 사랑을 대하는 모습들에 많은 공감이 됐다. 아마 20대에 봤으면 설렘 가득하고 열정적인 비포선라이즈를 더 좋아하지 않았을까? 이런 걸 보면 나이에 맞는 사랑이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포 선셋(2004),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대화 뿐인데 왜 이리 좋을까.


다시 첫 문장으로 돌아가, “아름다운 여행지에서 아름다운 사람을 우연히 만나는 것”. 이보다 설렘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문장이 있을까? 게다가 비포선라이즈는 어느 작품보다 이 문장을 잘 표현해 낸다. 풋풋하고 열정적인 20대의 사랑의 모습으로 말이다. 아름다운 비엔나로 향하는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그들은 Before sunrise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해가 뜰 때까지 함께 한다. 해가 뜰 때까지 밤을 새워 함께 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열정적인 사랑이다. 밤을 새도 졸리지 않고, 졸리더라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앞서는 시기는 20대가 유일하지 않을까. 3, 40대도 가능하다고 버럭 하는 그대. 인정. (근데 정말 가능해?) 아니 잠깐. 제목에는 남미의 미녀를 적어놔서 설레게 만들어 놓고 구구절절 영화 소개라니. 그만하고 “얼른 남미 미녀나 내놓으라구!”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비포 선라이즈(1996)


남미의 미녀를 만난 건 페루의 수도 리마였다. 그날은 태권도시범팀 공연이 있었다. 어느 작은 광장에서의 공연은 공연장 협의 문제가 있었는지 지연이 꽤나 되어서 가장 피곤한 공연이었지만 흥이 많은 남미 사람들의 큰 호응 덕분에 기분 좋게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우리는 팬분들(?)께 사인을 해주고 얼른 관광을 떠날 준비를 했다. 이제 우리가 관객이 될 차례였다. 공연이 꽤나 지연됐기 때문에 페루에서의 시간이 더 귀해졌기 때문이다. “야, 이제 출발하자! 머 먹을까?” 하고 상륙조 넷이서 말을 나누고 있었는데 갑자기 누가 말을 걸었다.


- 저기…

- 네?

-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저희랑 같이 맛있는 거 드실래요? 저기 제 친구들 있는데 저희가 살게요!


그것이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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